챕터 6
처음 아지트를 구하던 당시에는 상가를 임대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보증금으로 목돈이 나가야 하고, 매달 월세를 내기 위해서는 회비도 걷어야만 할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모임이 와해되면, 매 달 돈을 내야하는 아지트는 커다란 골칫거리로 남을 것이었다. 계약기간이 있는 월세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가능하면 적은 비용, 짧은 계약기간으로 가능한 공간을 구하고 싶었다.
현실적으로는 큰 녹음실이나 합주실을 정기 대여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보통 그런 공간은 단기 임대가 가능하고, 보증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지트로 괜찮은 연습실을 알아보았지만, 한 칸을 24시간 365일 빌리는 조건은 거의 없었다. 방 하나로 여러 사람에게 임대료를 받는것이 이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통으로 빌릴 수 있는 매물들 중 내가 원하는 가격대에 맞는 물건은 너무 허름했다.
차선책은 일부 요일, 일부 시간대를 빌리는 조건이었다. 원하는 가격대에 맞으면서 어느 정도 깔끔한 아지트를 얻으려면 그런 조건 뿐이었다. 이런저런 조건을 고민하던 중 페이공연 제안이 들어왔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한 연습실이 필요해진 상황이어서, 회원들의 동의를 얻고 아지트 계약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 발생. 회원 중 한 명의 반대가 있었다.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공간을 아지트로 삼으면 알 수 없는 타인과 공간을 공유하게 되니 우리 모임만의 아지트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꽤 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행사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었고, 언제까지고 딱 맞는 조건을 기다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명의 합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차선을 선택하게 됐다. 모임을 하다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게 된다. 꼭 최선만을 선택할 수 없는 아이러니. 차선인지 차악인지 알 수 없는 선택지라도 집어들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
앞에서 언급했던 공연 이야기를 잠깐 짚고 넘어가는게 좋을 것 같다. 모임이 시작된 실용음악학원에서 감사하게도 페이 공연을 우리 모임쪽으로 주선해주셨다. 여럿이 나눠 가지면 기름값도 안 될 정도로 적은 돈이었지만, 그것마저도 감지덕지였다. 다가올 공연 준비를 하며 아지트를 알뜰살뜰 사용했다. 거의 매일 번갈아가면서 아지트를 사용하며 임대료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에 더해, 공간을 사용함으로서 얻는 경험은 덤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덤이 본 목적보다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 경험으로 인한 교훈은 모임의 아지트로는 공용 합주실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방음은 나 자신보다는 타인을 염두에 둔 장치 같다. 내가 발생할 수 있는 소음이 타인에게 가 닿는것을 방지하는 장치인 것이다. 방음이 된 연습실을 아지트로 삼는다면, 노래를 맘대로 부르거나 크게 틀어도, 소리를 아무리 내도 민원이 들어오지 않으니 자유로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연습실 아지트에서는 음악적인 활동 외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빛 한 점 안 들어오고,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런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뭔가를 나눠먹거나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일상적인 활동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가격이 저렴하면 참고 사용할텐데,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24시간 365일 사용하지도 못하는 공간의 사용료로, 잘 하면 어지간한 상가 하나를 임대해서 월세를 낼 수 있을것도 같았다. 심지어 이 연습실도 찾고 찾아서 계약한 것이라는 사실. 구할 수 있는 연습실의 대부분은 이것보다 비싸거나, 더 열악할 것이었다.
버스킹을 마치고, 소기의 목적을 다했기 때문에 연습실은 계약 연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네달간은 연습실 사장님으로부터 언제든 다시 돌아와달라는 이런저런 문자를 받았다. 우리 모임에 정말 좋은 인상을 받아서 그럴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렇게 연락을 보낼 정도로 모임의 존재가 사업주 입장에서는 괜찮은 수익원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럴거면 더 합리적인 비용을 맞춰 주셨으면 어땠을지... 낭만을 위해 음악 모임을 운영하는 입장이지만,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게 될 때면 서로 닳고 닳은 사회인이라는 현실로 매번 툭 떨어지는것만 같았다.
어쨌거나, 얻은 결론. 비록 음악 모임의 아지트일지라도, 음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함께 머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습실을 아지트로 쓰기에는 다양한 활동에 적합하지 않았고, 불편을 감수하자니 비용이 저렴하지도 않았다. 애써 외면했던 상가 임대 쪽을 자꾸 바라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