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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발견한 둥지

챕터 8

by 이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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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간, 주말마다 나를 포함한 모임원 두세 명의 임장 크루가 계속됐다. 앞에서처럼 부딪혀가며 좋은 매물에 조금씩 가까워져 가다 보니, 어느새 상가 한 곳을 계약하기 직전까지 구두 협의가 되었다. 권리금 같은 자잘한 조건만 조율하고 나면 드디어 계약이었다. 다만 제시한 조건에 대한 상대방의 답장이 느려서 아직 계약 합의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그런 상태였다.

마음에 드는 조건의 물건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버티자는 각오를 했지만, 두어 달 일정을 빼며 시간을 계속 들이다 보니, 임장 동호회를 운영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매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당한 매물 중 하나를 계약하기 직전까지 가게 된 것이다.

계약을 앞두게 되니, 이 결정이 잘한 것인지 의구심과 함께 못 미더운 마음이 자꾸 들었다. 애써 모른척하려는 그 마음이 삐져나오는 것처럼, 부동산 앱들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자꾸만 앱을 기웃거리는 일을 그만하고 싶어 타협할만한 적당한 매물을 계약하기로 한 것일 텐데, 그 매물이 못 미더운 부분이 있어 자꾸만 다른 매물을 기웃거리다니. 계약이 이뤄지고 나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사실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교통은 나쁘지 않고, 상권은 죽은 동네에 위치한 건물의 3층. 월세도 딱 원하는 범위 내에 있었다. 이미 다른 매물의 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던 터라 굳이 연락해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모임원들은 시간이 안 돼 혼자 갈 형편이었는데, 마침 공인중개사인 친구에게서 그날 점심을 같이 먹자며 연락이 왔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 함께 가 보자, 친구에게 말을 하니 재미있겠다며 흔쾌히 수락했다. 수고비로 점심을 사기로 하고, 매물 앞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허름한 상권의 사거리 모퉁이 근처의 건물을, 친구와 나는 공인중개사 아저씨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3층에 도착해 문을 여니, 꽤 괜찮은 공간이 나타났다. 사실 지금까지 보러 다닌 공간들 중 가장 괜찮은 공간이었다. 15평 남짓 되는 큰 공간. 바닥은 타일로 되어 있어 청소하기 편할 것 같았고, 외부가 잘 보이게 창이 컸다. 보일러실 같은 공간도 나 있어 창고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간을 잘 꾸며두면 연습실로도, 행사 공간으로 쓰기에도 쾌적할 것 같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간 분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아지트를 얻게 되면 가벽까지 세울 각오가 있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조금 수고를 들이면 쓸모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계약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공인중개사 친구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친구는 별 말이 없었다. 공간을 다 보고 건물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공인중개사 아저씨가 맨 위층도 한번 보겠냐고 말했다. 위층은 더 저렴하냐 물었더니 그런 것은 아니라 해서 그럼 가겠다고 하려고 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보고 가자는 친구의 말에 4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문을 연 공간은 독특했다. 아래와 같은 평수인데, 공간이 나뉘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과 부엌을 합쳐놓은 것 같은 공간이 있었고, 방이 두 개가 있었다. 화장실도 따로 나 있었다. 조금 허름하긴 했지만,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싱크대도 있고, 화장실도 따로 있는 공간. 그러니까, 지금까지 본 공간들 중 아지트로서는 최고였다. 가벽까지 세울 각오가 되어있었는데, 콘크리트 벽에 문까지 있어 이미 공간이 나뉘어있는 공간에 들어간다면 굳이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거실에는 싱크대가 있으니 간단하게는 설거지부터, 나중에는 음식을 먹고 치우는 것도 가능할 것이었다. 먼저 보고 온 아래층 매물은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이 매물은 화장실이 공간 안에 같이 있었다. 모임의 아지트로는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공간. 즐거운 감정을 애써 숨기며 친구를 보았다. 친구는 표정 하나 안 변한 채로 공간을 훑어보고 있었다.

별말 없이 우리는 공인중개사 아저씨와 같이 1층으로 내려왔다. 길가에 서서,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생각해 보고 연락을 달라고 하시고 가실 채비를 하셨다. 그때 친구가 아저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계약을 하면 동호회 공간으로 쓸 테니 사람이 자주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들끼리 회비를 모아 월세를 낼 것이라 월세는 꼬박꼬박 납부할 것이다. 여러모로 건물주 입장에선 좋을 것 같다. 그런데 4층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공간도 애매한 것 같은데, 월세를 조금 깎아줄 있겠는가?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건물주에게 이야기해 보겠다는 말을 하고 떠나셨다.

근처 국숫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모임을 하는 입장에서는 마지막에 본 매물이 최고일 것 같다. 그런데 건물주 입장에서는 저 매물은 절대 안 나갈 것이라 골치 아픈 매물이다.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니 1층 빼고는 건물이 다 비어있었다. 한 칸이라도 계약을 빼야 하는 상황에서, 제일 안 나갈 것 같은 곳에 들어간다고 하면 건물주 입장에선 혹할 것이다. 사람이 상주하지 않으면 공간이 덜 상하니 임대인 입장에서는 훨씬 나을 것이다. 동호회비를 걷으니 월세도 꼬박꼬박 들어올 환경이다. 종합하면 건물주는 어떻게든 계약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월세를 깎아본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팁을 주었다. 확실히 업계 종사자가 같은 편이니 든든했다.

식사 중에 아까 매물을 같이 보았던 공인중개사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월세는 깎아줄 수 있다. 계약하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해라, 그런 이야기였다. 우선 알겠다 말하고, 모임원들과 한번 더 매물을 보고 나서 계약을 결정하기로 했다.

앞에서 말한 팁에 모두 해당하는 매물을 드디어 찾고야 만 것이다. 너무 급하지 않다면, 원하는 조건이 나올 때까지 두세 달은 기다리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모임의 목적은 계속 모임을 해 나가는 것이다. 모든 선택은 장기적인 입장에서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굳이 손해를 감수하며 섣불리 선택하기보다는, 정말 좋은 조건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최대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아무튼, 마침내 지금의 아지트를 발견하기까지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이제 다음으로는, 그렇게 얻게 된 아지트를 어떻게 지금의 아지트로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아지트 계약만 하고 나면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지트를 구한 것은 절반의 시작에 불과했다. 아니, 35% 정도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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