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7
연습실 아지트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진짜 아지트를 찾아 나서기 위해 걸음을 떼는 일만 남아있었다. 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연습실 임대를 반대했던 회원도 상가를 임대하는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자 아지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모임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지트를 원하게 되었다.
음악이 좋아 모임을 시작했고, 이제는 부동산 앱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점점 커지는 스케일. 다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만이 있었다. 여까지 왔는데 우야노 정신이라 해야할까, 살면서 여기까지 올 일이 다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앞장에서 언급했듯, 합주실을 아지트로 한 달간 사용한 경험을 토대로 얻은 교훈은, 음악 모임의 아지트라면 자유롭게 음악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만이 아니라 담소를 나누거나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안락한 모임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자유로움과 안락함,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서 월세는 비싸면 안 됐다. 바라는건 많은데 돈을 많이 쓸 수는 없는 상태였다. 건물주에게는 강도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뭐 어쨌거나 모임 입장에서 의적이라면 상관없었다.
앞에서 말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공간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반지하나 지하를 위주로 봤다. 지상층보다는 저렴하고, 맘껏 소음을 낼 수 있을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해가 들지 않아 퀘퀘한 느낌이 들겠지만, 인테리어적 요소, 또는 좋은 향을 내는 물건으로 반지하의 꿉꿉한 느낌을 덮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 예상은 틀렸다. 반지하나 지하 매물은 생각보다 더 허름했으며, 생각만큼 저렴하지도 않았다. 도저히 사람이 상주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도 몇십만원의 월세가 매겨진 걸 보니 기가 차면서도, 그래도 우리처럼 저렴한 공간이나마 필요한 누군가는 이 공간에 입주를 해야 하니 배짱 가격을 매겨놓은 것이겠지, 생각하니 씁쓸했다.
다행인 것은 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지난 달처럼 공연이 잡혀 아지트를 얼른 구해야 하는 제약 같은 것이 없었다. 성급하게 행동해서 허름한 공간, 혹은 너무 비싼 월세를 지불해야 하는 공간에 들어간다면 계약기간 내내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원하는 가격과 컨디션의 매물이 나올 때까지 장기전을 하기로 했다.
만약 허름한 것과 너무 비싼 것,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허름한 쪽이 나을 것 같았다. 허름한 것은 앞에서 말했듯 향이나 인테리어 등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상주하며 살림이나 영업을 할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길어봤자 몇 시간의 모임 활동동안만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허름함이면 괜찮을 것 같았다. 비싼 월세는 회비로 충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월세액이 커지면 모임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보증금을 더 내서라도 월세를 덜 낼 수 있는 공간을 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기준으로 정한 금액 이상의 월세라면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월세는 거의 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하한선이었던 것 같다는 것이지만. 거듭 말했듯 조급할 이유는 없어서, 내가 설정한 월세 선에 맞는 매물이 나타나지 않아도 무리해서 그 이상의 것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앱에 알림이 뜨면 매물을 보러 다니고, 그렇게 두어달을 보냈다. 그 기간을 지나며 얻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경험들을 공유해보겠다. 만약 저렴한 월세를 부담하며 공간을 구하고 싶다면, 죽은 상권의 고층을 꼭 찾아보길 바란다. 상식대로라면 지하가 지상보다는 저렴해야 하는데, 오히려 앞에서 말한 조건의 고층이 지하만큼, 혹은 지하보다 더 저렴한 경우가 많았다. 상가나 업장은 고객이 찾아와야 하기 때문에 고층은 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4층 이상부터는 월세가 많이 저렴해졌다. 하지만 모임 아지트는 모임원들만 드나들면 되니 고층이어도 문제될건 없다. 반지하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월세를 조건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빛이 드는 고층 쪽이 무조건 좋았다. 엘리베이터는 없는 편이 낫다. 아지트 임대료는 무조건 저렴해야 한다. 다리가 아프고 보증금을 안 내는 편이 낫다. 사업장처럼 비품이나 물건을 수시로 옮겨야 할 일도 없으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고층을 무조건 노리는것이 좋다. 또 한가지 사소하게 느낀 점은, 임대인이나 전 임차인이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협상에 불리해진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니 더 호의적일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연습공간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까지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꽤나 진심이라는 것을 더 잘 알기 마련이다. 그래서 종일 오롯이 쓰지도 못하는 연습실에 터무니없는 대여료를 제시하고, 일반적인 부동산의 상식에서는 철거와 원상복구까지 해야하는 짐덩이에 불과한 방음부스를 비싼 가격으로 넘기려고 하는 일이 발생한다. 음악을 위한 공간은 필연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부동산이나 임대인에게는 무조건 음악 연습실로 쓰려고 계약을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임차인의 목적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임대인이나 전 임차인이 음악을 아는 사람이면,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다는 기대는 접는것이 좋다. 직접적인 썰들을 구구절절 이야기해주면 좋겠지만, 결국은 타인의 험담처럼 될 것 같아 그러지는 않으려 한다. 어쨌든 모임장의 입장에서 저렴한 아지트를 구하려 하는 내 마음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값을 더 받으려고 하는 마음이나, 사실은 같은 것이다. 그저 그런 이들과 협상에 임하게 되면 불리해질 뿐이다. 해결책은? 음악을 하지 않는 이에게는 가치없는 공간을 저렴한 가격으로 들어가, 가치를 창출해내면 되는 것이다. 다음 장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겠다. 본격적인 아지트 개척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