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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를 우리로 채워나가기

챕터 10

by 이이육

사람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살아가는 매 순간 느낀다. 지금 이 책을 쓰면서도 핸드폰 사진첩을 몇 번을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정리하고 가꾼 공간, 그 안을 채운 비품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그 비품을 언제 구매했는지 확인하려 또 사진첩을 들여다봤다.

비품은 렌탈 프리 기간에 구매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도배와 청소를 하던 와중에 비품도 같이 주문한 것이다. 아마 벽지와 걸레받이 등을 구매하면서, 책상이나 조명 등도 같이 구매한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도배를 하면서 이미 마련된 책상 위에 공구를 두거나, 의자를 딛고 올라가 벽지를 붙이거나 했던 기억이 드디어 났다.

가구를 구매하기 전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해야 했다. 거실 하나와 방 두 개. 거실은 모임 공간 겸 로비로 쓰고, 각각의 방은 연습실로 구성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회원이 아주 많아지지 않는 한 두 개의 방을 동시에 쓸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 더 작은 방은 창고 겸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결국은 의자와 책상이 필요했다. 로비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보드게임을 할 때 필요한 의자와 책상. 연습실은 딱히 가구라고 할만한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앉아서 연습을 해야 한다면 로비에 있는 책상을 들고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우선 110*70 책상 두 개를 주문했다. 두 개를 이어 붙이면 주위에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기에도 좋고, 필요하면 따로 떼어서 쓸 수도 있으니. 책상을 시킬 때 조명도 몇 개 같이 시켰다. 주문은 이케아에서 했다. 싸고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브랜드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생각해 보니 구매한 가구는 책상 두 개와 조명 몇 개가 전부다. 나머지는? 다 당근 중고거래나 나눔을 통해 데려왔다. 앞에서 말했듯, 선지출한 비용은 결국 회비로 정산해야 하는 법이다. 아낄 수 있다면 최대한 아껴야 했다. 창고방의 책상은 도배를 하기로 한 날 다른 운영진 둘이 나눔으로 얻어왔다. 도배를 할 때 공구들을 올려두는 데 요긴하게 썼다. 어린이용 나무 의자 두 개도 나눔으로 가져왔다. 딛고 올라 도배를 할 수 있어 유용했다. 지금은 간이 의자가 필요할 때 틈틈이 쓰고 있다. 벤치 의자 네 개, 동그란 의자 네댓 개는 폐업 예정인 술집에서 얻어왔다. 무료로 나눔을 한다고 해서 처음 한 차례 가지고 오고, 며칠을 지켜봐도 나눔 물건이 남아있길래 마저 몇 개를 더 챙겨 왔다. 연습실 공간 벽에 붙여 물건을 두거나 여럿이 앉기도 하고, 로비의 탁자에 둘러앉을 때 가져와서 사용하기도 해서 요긴하다. 지금은 버스킹 앰프와 마이크 등을 올려놓은 3단 선반도 나눔으로 데려왔다. 입구의 신발장도, 작은 보조테이블도 당근에서 데려왔는데, 이 둘은 비대면 거래라고 해서 갔더니 부품이 빠져있거나, 어디 한 군데가 부서져있거나 했다. 그래도 깨끗하게 닦고 고쳐서 지금은 요긴하게 쓰고 있다. 비 오는 어느 날은 운영진 셋이 정말 저렴하게 올라온 냉장고를 가지러 갔다. 학생이냐는 기분 좋은 질문과 함께 올린 가격에서 더 깎아주셔서 90도로 인사를 하고 데려왔다. 저렴한 것이든 나눔이든, 어쨌든 운영진 차를 끌고 가서 싣고 왔고, 남는 시간을 빼서 가지고 온 것이니 수고가 들어가기는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실질적으로 회비에서 나가야 하는 돈은 없었다. 운영진이라고 해서 별다른 혜택은 없지만, 손익을 따지지 않고 세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게 큰 힘이 됐다. 또 나눔을 받으러 다닌 과정들을 돌이켜보면 물건 하나하나가 추억을 품고 있는 것 같아 한결 더 소중하다.

모임 공간을 채워야 하는 물건이라면, 한 이 주 간은 당근에 잠복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깨끗한 물건이 저렴하게, 혹은 나눔으로 올라오곤 한다. 다만 큰 책상 같은 것은 택배를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인 중 누군가 트럭을 가지고 있거나, 운반을 도와줄 여러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낄 수 있는 체력은 아끼는 것이 즐거운 모임생활을 향한 길이다. 아니면 음악 모임 아지트를 마련하다가 기침감기에 걸려 몇 달간 노래를 못 한 내 신세가 되고 말 테니...

그 외에는 방 한 켠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던 건반이나, 굳이 쓸 데가 없어 접어두었던 3단 기타 스탠드 같은 물건들을 아지트에 가져다 뒀다. 방치된 채로 쓰이지 않던 물건들이 누군가의 손을 타고 소소한 쓰임이 되는 것이 좋았다.

지금은 이런저런 물건들이 아지트에 있다. 꽤 값비싼 전자드럼도,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조금은 맞지 않는 소리의 통기타도, 에어플레이가 지원되는 단단한 사운드의 블루투스 스피커도. 오롯이 모임 소유의 공간이 생기자, 아지트에서 사용할, 그리고 다른 이에게 나눌 물건들을 옹기종기 가져다 둔 광경을 보면 이따금 마음이 몽글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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