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젤리가 있기에 세상 살맛나
아주 어릴 적을 제외하고 내 돈을 주고 젤리를 사 먹은 일이 없었다. 실제로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교실에서 굳이 젤리를 먹는 친구는 기억나지 않는다. 성인이 젤리를 먹는 건 더욱 생경했다.
그런 젤리를 전면적으로 다시 만난 건 처음 떠난 유럽 여행에서였다. 체력은 낭비했지만 돈은 아껴 썼던 언니와 나는 빵 쪼가리만 들고 무작정 모든 관광지를 찍고 돌아다녔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배고프잖아. 슈퍼가 일찍 문을 닫는 유럽 마을에 질린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지라곤 숙소에 있던 하리보 자판기뿐이었다. 그 많은 군것질거리를 놔두고 젤리라니! 억지로 뽑아 먹은 콜라 하리보는 예상외로 맛있어서 점점 주저 없이 뽑아먹게 되었다.
어학연수를 떠나 생활용품을 사러 처음 생활잡화점에 간 날, 벽면 한쪽 전체가 하리보 젤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종류가 많았어? 이걸 많이들 사 먹어? 마침 그날은 어느 아저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젤리를 골랐다. 처음 아저씨를 발견하곤 아저씨가 젤리에 진지하기도 하다고 넘어갔지만 생활잡화점을 몇 바퀴 도는데도 망부석처럼 젤리를 고르는 모습은 사뭇 숭고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주목하자 친구는 골드베렌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그날 이후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골드베렌을 많이도 먹었다. 그냥도 씹고 색깔별로도 씹고 그라데이션도 맞춰보고 여하튼 씹고 또 씹고..
골드베렌 이후로 여러 하리보를 시도했지만 골드베렌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정 상품인지 스머프 하리보가 나왔는데, 유레카! 골드베렌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하고 달달한데 또 너무 달지 않은 그 맛이 천상계의 젤리라 할 만했다. 아주 잠깐 비슷한 맛의 미니언즈 하리보도 나왔다가 사라졌는데, 미니언즈가 사라져도 스머프가 있어 아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만 스머프를 좋아했던 것일까, 어느 날부터 스머프 하리보는 희귀템이 되어버렸다.
귀국하며 스머프를 몇 봉 사 왔지만 금세 동이 났다. 나는 내내 스머프 하리보를 그리워하다 유럽 여행을 가는 지인이 생기면 스머프를 보는 즉시 사다 달라 부탁했다. 몇 번의 부탁 끝에 회사 동기가 다섯 봉을 구해주었는데, 그 역시 마트가 아닌 생활잡화점 어디 구석에서 찾았노라고 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딱 한 개씩만 아껴가며 먹었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어. 그 이후로는 스머프 하리보를 볼 수 없었다.
이제 한국에서 스타믹스나 골드베렌 하리보를 찾아보기는 아주 쉬워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전만큼 골드베렌에 환호하지 않는다. 오늘은 하리보 생각을 아주 오래간만에 했다. 네이버에서 하리보 일가의 뚝심 있는 가족 경영 이야기를 읽었다. 돈을 좀 모았다면 당연히 서울로 올 텐데, 100년을 고향에 그대로 남아있는 하리보 일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332774
뭐든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법이지만, 스머프 하리보만큼은 그렇지 않아서 나는 그들에게 제발 한국에 스머프 하리보를 수출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골드베렌 말고 스머프! 스머프를 준다면 골드베렌을 빼앗아가도 됩니다! (자매품 미니언즈도 좋아요!) 한국의 젤리 시장도 멋지게 성장해서 죠스바 젤리가 우수하긴 하지만, 그래도 스머프 젤리가 필요하다. 진지하게.
*부제를 보고 후루룩짭짭 후루루룩짭짭 맛좋은 라면을 떠올린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내본다.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