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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편소설 쓰는 남자 May 31. 2021

열다섯째 날의 대물 낚시

간편소설 스물둘

“이번엔 걸려들 것 같소?”


“예, 감이 나쁘진 않은데…… 모르겠네요.”


김 사장이 곁으로 다가온 초로의 사내와 얘기를 주고받았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양복 차림을 한 사내는 이곳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운 첫날부터 안면을 익혀온 터였다. 활처럼 휘는 낚싯대를 붙잡고 낑낑대다가 발을 헛디뎌 온몸을 흠뻑 적신 날, 그러니까 물 위로 크고 시커먼 것이 첨벙대다가 사라진 보름 전 그날 이후로 김 사장은 호수의 단골 낚시꾼이 되었고, 사내는 그런 낚시꾼의 단골 말벗이 되었다.


“부디 대물을 낚아야 할 텐데요.”


“그리만 된다면 소원이 없지요.”


첨벙대다가 사라진, 크고 시커먼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대물은 첫날 빼곤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낚싯대가 또다시 활처럼 휜 적은 두 번 있었는데, 모두 중간에 줄이 터져버렸다. 속 터질 노릇이었다.


대물과 벌이는 보름간의 숨바꼭질을 조용히 지켜본 달이 말간 빛을 호수에 풀어놓았다. 멀리서 밤새가 울고, 건듯 불어온 바람이 잔잔한 수면에 주름을 새겼다. 바로 그때였다. 줄이 당겨지면서 낚싯대가 휘기 시작했다. 김 사장도 사내도 몸을 벌떡 일으켰다.


“진정, 진정! 급하게 당기지 말고 천천히!”


“예, 압니다. 천천히……천천히…….”


김 사장은 낚싯대를 올렸다 내리면서 줄을 감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반복했다. 묵직한 저항감이 크게 휘어지는 낚싯대를 타고 대물의 손맛을 전해왔다. 익숙하고도 벅찬 그 느낌에 제동이 걸린 건 잠시 뒤였다. 마치 수초나 암초에라도 낀 것처럼 꿈쩍도 않는 대물을 김 사장은 어르고 달래듯 우로 강약을 달리하면서 끌어당겼다. 이처럼 유연하고 끈덕진 대처가 보상을 얻는 순간이 다가왔다. 크고 시커먼 것이 마침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소원을…… 이뤘습니다.”


김 사장이 감회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말간 달빛을 받고 있는 대물은 보름 전 아내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친정으로 나들이 간 사이, 지하철과 버스로 예까지 왔다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물에 빠져 첨벙대던, 그러다 끝내 낚싯대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진 자신의 몸뚱이였다.


“저 대물은 산 사람들한테 맡기고, 우린 이제 가볼까요?”


사내는 김 사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빙긋이 미소 짓는 얼굴과 말쑥한 양복에선 어둡고 먼 길을 가야 할 영혼의 안내자답게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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