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편소설 쓰는 남자 May 24. 2021

인지부조화-금산을 찾아서

간편소설 스물하나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각각 금산 돌산으로 통하는 길이었는데, 어느 길로 가야 금산에 닿는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저 누군가 금산에 닿아 부자가 되었다거나 또 누군가 돌산에서 억장이 무너져 죽었다는 풍문만 들려올 따름이었습니다.


바야흐로 김은 한 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근거나 확신이 아닌, ‘어·느·길·로·가·야·하·는·지·알·아·맞·혀·봅·시·다’로 정한 길이었습니다. 한참 길을 가다가 산딸기 밭을 보았습니다.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면서 김은 이 길로 들어서길 잘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시 길을 가다가 이번에는 독사에게 물려 죽은 사내를 보았습니다. 김은 사내를 묻어주고 그의 나귀를 챙겼습니다. 김의 마음에는 이 길이 금산으로 통하는 게 분명하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산딸기와 나귀 같은 일련의 행운들이 믿음의 나침반 구실을 했습니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숲에서 곰을 만나 나귀가 죽고 김은 나무 위로 피신해 겨우 살았습니다. 나귀야 원래 남의 거라 손해는 안 봤다고 자위하면서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자 눈앞에 급류가 보였습니다. 목을 축인 다음 급류를 건너던 김은 발을 헛디뎠습니다. 곧장 물살에 휩쓸렸고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갔습니다. 설상가상 폭포까지 만나 곤두박질쳤는데, 다행히도 찰과상만 입었습니다.


김은 폭포 아래쪽 급류를 따라 또 떠내려가다가 겨우 물가로 나왔습니다. 그 후 기운을 차리고 폭포 옆 벼랑을 마주한 건 반나절이 지나서였습니다. 깎아지른 넘사벽의 장애물조차 금산을 향한 열망의 높이를 압도하지 못했습니다. 기어이 벼랑을 올라 금산으로 통하는 길에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가다가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이 길은 금산으로 통하지 않소. 좀 더 가면 황무지가 나올 거요. 재물을 빼앗고 목숨까지 노리는 도적도 출몰한다오.”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여행자의 말을 김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도적이 무서워 저런다고, 비겁하게 물러서는 게 부끄러워 거짓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은 여행자와 헤어진 후에 황무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도적도 만나 돈주머니를 빼앗겼습니다. 다행히 도적이 목숨까지 노리진 않았으니 이 길이 금산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말도 틀릴 거라고 되뇌었습니다.


김은 계속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산을 만났습니다. 그토록 열망하던 금산이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으면 좋으련만, 시야를 막아선 건 보기 흉한 돌산이었습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아온 피로감이 김을 주저앉혔습니다.


때마침 서편으로 주저앉은 태양도 긴 팔을 뻗어 맞은편의 돌산을 황혼의 빛으로 채색했습니다. 잔뜩 코가 빠져 있던 김은 거짓말처럼 아름답게 변신하는 산을 쳐다보면서, 자신이 처음부터 찾았던 건 금산이 아니라 금빛 산인 듯도 싶은 착각슬슬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 10화 보일러공의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