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간편소설 쓰는 남자
May 18. 2021
지인들 중에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한 보일러공이 있었어요. 현실적으로 짝이 되기 어려운 조건인데도 어찌어찌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멋들어진 저택에서 알콩달콩 살았다죠. 근데 결혼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그만 사달이 났지 뭐예요. 부부가 실종되어 버린 겁니다. 부잣집에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종적을 감춘 딸과 사위를 찾아내진 못했어요. 저택의 일꾼들도 실종 사건이 있기 훨씬 전에 전부 일을 그만둔 터라 경찰 수사에 별 도움이 안 되었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갖 소문이 돌 수밖에요. 돈을 노리고 납치를 시도한 일당과 싸우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둥, 문화 수준이며 취향이며 성격 차이로 서로 갈등하다가 남편이 아내를 죽여서 매장하고 잠적했다는 둥, 결혼 후에도 사위를 탐탁잖아 한 부잣집의 횡포 때문에 멀리 도피했다는 둥 말들이 많았죠. 늘 그렇듯 거품처럼 끓어오르던 소문들은 오래잖아 가라앉았어요. 사건에 관한 기억도 흐르는 시간 속에서 덧없이 지워졌고요.
그런 가운데 한 세대가 지나도록 주인 없이 방치되었던 저택은 시청 소유로 넘어가게 되었죠. 그리고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공사가 벌어졌는데…… 세상에나, 지하 보일러실 벽을 뜯던 중에 비밀스런 공간이 드러난 거예요. 그 안에선 백골 시신 두 구가 나왔고요. 시신들이 걸친 옷은 실종된 주인 부부의 것으로 밝혀졌고, 시신들이 나란히 누워 있던 침대 아래에선 독약 병이 발견되었답니다.
남편이 아내를 죽여 지하 방에 감추고 저도 음독자살했다는 소문이 좀비처럼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던 와중에 사건의 진상을 짐작케 해주는 한 노인의 증언이 나왔죠. 결혼 후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무시와 질시 때문에 위축되고 불안해진 남편이 당시 정신과 의사였던 자신에게 은밀히 찾아와 보일러 소리를 들어야 겨우 잠들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는 겁니다.
결국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했습니다. [남편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돌면 집에서 당장 두 사람을 떼어놓을 게 뻔한 터라 아내는 일꾼들을 모두 내보냈다, 남편은 보일러실 옆 공간을 개인 침실로 개조했다, 지하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남편의 건강이 나빠졌다, 그런데도 선뜻 의사를 불러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급격한 병세 악화로 남편이 숨을 거두자 절망한 아내도 뒤따라 죽었다.] 이런 추론에 날개를 달아준 건 아내 쪽 백골의 치아에서 검출된 독성분이었죠. 이로써 보일러공과 부잣집 외동딸의 사랑은 좀비 같은 소문으로부터 지켜질 수 있었답니다. 비극적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