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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it Nov 24. 2024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한잔 하자고

똑똑하지만 꽤 장난이 심해 골치를 섞였던 오래전 제자에게 연락이 왔다. 반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다 참견하고 다툼이 있고 무언가 소란스러운 일이 있을 적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녀석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코드가 잘 맞아서 결국 그 해를 즐겁게 보낸 기억이 있다는 거다. 그 아이(서른이라는데?)와 나는 공공의 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역사에 대해 관심도 많고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했는데 역사 인물 중 조선의 선조와 인조를 극히 싫어했었다. 이 녀석은 초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대해 방대한 지식과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던 학생이었다.


이렇게 종종 연락이 오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자신이 하고자 했던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특징이기도 하지만 학생 때 그 아이들만이 가진 공통점이 있었다. 이건 개인적인 견해이니 그리 객관성은 없다. 그저 20년 이상 직접 가르친 아이들 중에 나타난 특징일 뿐이다.


첫 번째는 집요함이다. 아이에 따라서 다르기는 한데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방대한 상식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점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제자 같은 경우 각 시대별 주요 인물과 왕뿐만 아니라 역사에 크게 나오지 않았던 대군(왕자)과 공주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또 과학고를 거쳐 아이비리그 대학에 갔던 아이의 경우, 시간 활용에 대해 집요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려 초등학생인 아이 스스로


두 번째는 읽기와 쓰기이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이 읽을 수는 있지만 자신이 읽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읽는다고 할 수가 없다. 그저 읽을뿐....... 읽고 나서 중요한 단어나 문장, 핵심 내용을 찾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이야기할 수 있는 학생은 극히 일부였다. 특히 성공한(?) 학생인 경우 그저 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왜 이 책이나 글을 읽고 있는지 이유(목적성)를 알고 있었다. 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성인들도 읽는 이를 고려한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음에도 이 아이들은 주제에 맞는 논리를 펼칠 수 있는 쓰기 능력이 뛰어났다.


세 번째는 윤리의식과 공감능력이다. 이것이 성공에 어떤 능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리의식과 공감 능력이 있는 아이가 행복하다는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 종종 연락이 오는 아이들 대부분 또래집단의 리더였고 친구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친구들을 돕고자 노력했고 때때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들을 따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행복하게 공부하거나 일하기 위해서는 결국 똑똑한 관계 맺기가 필요한데 이들이 가진 공감능력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질문하는 습관이다. 반에서 제일 똑똑한 학생이었음에도 교사인 나를 비롯해 많은 친구들에게 질문과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똑똑하다고 모든 걸 잘할 수 없기에 자신이 모르거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거리김 없이 물어보고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옛말에 '싹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랜 시간 동안 선생을 하며 이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좋은 싹을 보였던 아이들보다 걱정했던 제자가 밥벌이하며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가 더 행복해지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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