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윈(월렘 대포)은 자살한 벨라(엠마 스톤)를 의학 실험으로 되살린다. 신생아의 뇌를 이식하게되면서 새로운 인격체로 탄생하는벨라.그녀는육체와 정신의 부조화를이겨내고놀라운 성장력을 보여준다.
벨라의일상은 호기심과즐거움으로가득하다. 갓윈은벨라의 일상을 관찰하기 위해 의대생 맥스(라마 유세프)를 조수로 기용한다. 맥스는 순수하고 엉뚱한 벨라에게애정을 느끼지만,변호사 덩컨(마크 러팔로)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바람둥이 덩컨은 벨라에게 여행을 제안하고, 호기심 많은 그녀는동행을 결심한다.
벨라는사람들을 만나며색다른 경험을 하지만,여행비충당을 위해프랑스매음굴에 정착한다. 얼마 후 갓윈이 위중하다는맥스의편지를 받고 영국으로돌아온다.
가여운 것들의 향연
<가여운 것들>은 말 그대로 '가여운 것들의 향연'이다. 창조자 갓윈은 심리적 결핍에 시달리는인물로,아버지로부터 학대와 폭력을 버티며 살아왔다.조각난 피부와신체적 외상은불행한어린 시절의증거다. 그는 과학자의 권위를 위해실험에 몰두하고, 아름다운 육체에 순수한 정신을 가진벨라를 통해 내적 결핍을 채워나간다.
던컨은 의뢰인의 딸을 유혹해 세계일주를 떠날 만큼 충동적이다.벨라의 솔직하고 엉뚱한 매력에 끌리면서 쾌락을 추구하며 산다. 술, 도박 등 원초적 자극에 집착하던 던컨은 벨라의 삶을 관섭하기 시작한다.애정을 갈구하던 덩컨은 벨라의 무관심을 견디지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전 남편알피는모든 존재를 도구로 인식한다. 가족과 하인을 소유물로 여기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권위를 높인다. 욕구 충족에 방해가 되면, 총기로 위협하는 등난폭한 행동을일삼는다. 독단과이기주의에 심취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만드는독재자나다름없다.
갓윈은 의학적 재능을 빌미로 생체 실험을 자행한 뒤창조자의 위치에 자신을 놓는다. 덩컨은 내적 공허함을 술, 도박, 여자로 충족하며 대상 중독에 빠진다. 알피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소유하며 무너진 자존감을 세운다.이를 종합해 보면'가여운 것들'은 존재의 근거를 찾지 못한 채, 내적 결핍에 허우적대는 인간을 가리킨다. 대상을 소유하면서내적허망함(애정)을 채우려는 인물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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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사랑, 그리고 해방
<가여운 것들>은욕망과 사랑, 해방이라는 굵직한 주제를 다룬다.먼저본 작품에서 주의 깊게 본 것은 사랑이다.갓윈의 사랑은 관조적이다.벨라에게감정적으로동요하지 않은 채상징계 기표(과학자, 아버지)를 획득하려 한다. 맥스의 사랑은 신사적이다.벨라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는 동시에 관습적 질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 던컨의 사랑은 집착에 가깝다. 결혼을 방해하는 해방꾼으로 등장하면서, 치졸한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랑을 원했을까.
당시 여성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잔혹했다. 히스테리 여성에게 가한 의학적 고문(음핵수술)은 성에 대한 불합리한 사고에서 비롯된다. 성욕에 대한 절제가 미덕인 사회 속에서 벨라의 파격적 행보는 놀라움 그 자체다. 욕망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매음굴에 들어가는 벨라. 그녀는 매춘의 질서와 규율을 바꾸거나, 놀이 방식으로 성행위를즐긴다.행위하는 주체로서 몸의 해방을 이끌어가는 벨라, 그녀는 지적 호기심과 성적 욕망을추구하며 상징계의 질서를 뒤흔든다. 사회적 관습과 계층적 질서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원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충적 기법
19세기 의학과 과학은 근대 사회의 초관심사였다.이성적 사고를 통해 생명 연장뿐 아니라 기술 발전, 경제적 번영이 목적이었다. 이는 이성과 감성,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과 같은 이분법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우월과 열등의 대립을 가져왔다. 이러한 정신적 폐허 위에 개인의 감성과 주관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문화 사조가 등장하면서, 개성과 자유를 인정하는 문화적 흐름이 일어났다. 그 뒤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정치 경체 문화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가여운 것들>의 미장센은 신비하고 다채롭다. 영화 속 배경이나 의상은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는다. 보편적 계급 체계를 의심하면서 개성, 창조, 다양성, 절충성 등의 문화적 특징을 되살린다. 이성보다는 감성,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문화적 흐름을 수용하여 초현실적공간으로 묘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색채의 대비로, 갓윈의 실험실은 진보와 발전을 중시하는 이성적 공간, 벨라의 여정은 감각과 본능을 중시하는 욕망의 공간으로 표현한다. 스크린을 흑백과 컬러로 대비하여 표현한다는 점, 건축과 의상을 주로 혼합적 양식으로연출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욕망의 주체로 사는 건 단지절제와 규제를 파괴하는 삶이 아니다. 욕망의 원리를 알며 헛된 환상에 휘둘리지 않는 것, 즉 행위의 주체가 되는 삶을 말한다.벨라는 던컨과의 관계에서 본능을 알게 되고, 크루즈에서철학의 의미를 깨우친다. 그 뒤 매음굴 사장으로부터 '연민의 감정 뒤, 경멸과 분노를 일 것이고, 그 뒤에 지혜를 깨우친다'라는 삶의 통찰을 얻는다. 결국 그녀는 누군가의 창조물이 아닌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이를 종합해 본다면 카메라의 시선은 다의적 의미를 품는다.'유희를 향한 관음의 눈, 존재에 대한 연민의 시선, 지혜를 품은 철학자의 사색'이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