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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Jun 19. 2024

기형적 부성애가 낳은 비극

추창민의 <7년의 밤>


[ 사진 출처: 네이버 ]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세령 관리팀장으로 부임한 현수(류승룡) 가족들과 지낼 집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선. 그날 밤 그는 어린 소녀를 차로 친 뒤 시신을 강 유기한다. 소녀의 아버지 영제(장동건)는 딸의 실종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며 범인을 뒤쫓는. 시신으로 돌아온 딸을 보며 자식을 잃은 고통을 되갚아줄 거라 다짐하는 영제.


현수는 죄책감과 불안 이상 행동으로 표출한다. 맨발로 캄캄한 숲길을 걷는가 하면, 호수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피운다. 영제는 그런 현수를 범인으로 지목하, 그의 아들을 인질로 삼는다. 그러나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타인을 희생양으로 만드 현수. 결국 그는 소녀를 죽이고 시신을 유기한 죄, 마을을 지옥으로 빠뜨린 죄를 심판받고 감옥에 갇힌다. 7년이 흐른 어느 날, 죽은 줄만 알았던 영제가 다시 돌아온다.


[ 사진 출처: 네이버 ]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배


영제는 폭력과 억압의 방식으가족을 대하는 폭군이다. 부인과 딸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며, 폭력과 학대일삼는다. 사고 당일에도 매질을 당하던 딸은 영제로부터 도망치다 변을 당한. 과연 영제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맞을. 그의 복수를 온전히 부성애로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딸을 잃은 고통보다 자신의 소유물을 빼앗긴 데 분노한 게 아닐지.


현수는 어떤가. 부성애가 낳은 참혹한 비극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현수의 무의식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 즉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이 내재돼 있다. 과거 상의군인으로 전역했던 아버지는 외상 후스트레스에 시달려 가족들을 괴롭혔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감당할 수 없어 자살했고, 아버지는 우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실현되자,  죄책감을 내면 깊이 억압했다.


[ 사진 출처: 네이버 ]
기형적 부성애가 낳은 비극


현수는 기형적 부성애의 끝을 보여준다. 이상적인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들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광기로 변하면 마을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수몰된 마을은 뒤틀린 부성애가 만든 결과물이다. "왜 날 구했냐"는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니까"라고 답하는 현수. 그는 죽은 줄만 알았던 영제가 나타나 자신의 아들을 노린 데 불안감을 느낀다. 결국 그 아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 없어 목숨을 끊, 영제는 허망함을 이기지 못해 생을 마감한다.

  

국내에는 유독 모성(부성)에 관한 영화가 많다. <마더>나 <희생부활자>에서도 모성 끝을 보여주는데, 이들 모두 아들을 지키려다 도리어 비극을 가져왔. 자식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한정 베푸는 데 있지 다. 사회 속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데 있. 만약 현수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더라면, 영제가 사랑의 손길로 가족을 대했다면 참혹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7년의 밤>은 정유정의 장편 소설을 영화화한 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소설의 세밀한 감정선을 따라가기엔 영화 제약이 너무 많다. 큰 줄기를 한 번에 담아내지 못한 채 조각조각을 이어 붙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 또한 원작의 내용을 압축하다 보니,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않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이 될 수 있다는 선 굵은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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