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앞에서 엄마와 싸우던 날
그날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사소한 성향 차이로 인한 다툼에서 시작되어 어느새 서로를 향한 언성이 높아지고 만 엄마와 나.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과 자존심까지 어쩜 이렇게 똑같은 지 기어코 둘은 서로를 이겨내야만 했다. 의미 없는 메아리만 오가던 둘의 대화가 1대 1이 아닌 2대 1이 된 순간이 있었다. 엄마와 나의 싸움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나를 향해 내뱉은 한 마디 때문이었다.
'너이 엄마 괴롭히지 마라. 엄마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는 줄 아느냐'
철석같이 내 편이라 믿었던 할머니가 엄마 편에서 나를 질타하는 게 그렇게 서러웠던 지 울컥하는 마음에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싸움에 있어서 나는 할머니 때문에 완벽히 패배했다. 방으로 돌아와 혼자 서러운 마음을 달래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할머니는 엄마 편이었을까. 분명 엄마가 잘못한 게 맞는데, 왜 내 편을 안 들어준 걸까.
답은 하나였다. 할머니는 엄마의 든든한 빽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는 엄마가 있었다. 나에게도 든든한 빽인 엄마가 있었지만 그 엄마는 나와 싸우고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2대 1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항상 하던 '너도 니 자식 낳아봐라'에는 혹시 '니가 니 자식이랑 싸우면 나도 니 편을 들어줄 거야'라는 암묵적인 의미가 있진 않을까 하고 희망 회로를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