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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Sep 05. 2022

주저앉을 내게 주는 작은 선물

뭐 내가 좋아하는 여름날의 작은 의지 한 조각이 나를 붙잡았다지만, 그렇다 해도 당장 해결되는 건 없었다. 불면과 우울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무력감과 압박감, 불안감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이전보다 밥은 더 먹으려 했다. 잘 안 들어가도 한 숟갈 더 떴고, 반찬도 1개 더 늘려서 먹었다. 케케묵은 집은 환기를 시켰다. 오랜만에 집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구석진 곳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청소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했다. 거실 블라인드를 걷었다. 해가 쨍쨍할 때는 빨래를 했고 화장실 청소도 깨끗이 했다. 여전히 잠은 잘 못 잤지만 그래도 자기 전에 유튜브에서 우울증을 찾아보는 건 그만두었다. 대신 읽고 싶었던 책들을 꺼내 들었다.


엉망으로 떨어진 체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에 걸렸다. 아무래도 면역이 떨어진 탓이겠거니 했다. 확진자와 여러 번 밥을 먹고 확진자들과 같은 곳에서 교육을 받고 술을 먹었지만 단 한 번도 확진이 되지 않았다. 가족들 통틀어서 단 한 명도 확진자가 없을 정도로 유전적으로 건강체질일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건강해도 스스로 망친 몸에는 축복도 다시 거둬가는 모양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휴식이 필요했던 시기에, 의도치 않게 격리가 되어 몸 건강을 잃고 정신 건강을 얻었다. 거둬간 축복 대신 작은 선물을 준 건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오늘, 격리도 끝이 났다. 7일 간 집에서 반강제 묵언수행을 하며 글을 썼다. 누군가는 자신을 돌볼 때 요리를 했고, 누군가는 옷을 사 입혔고, 누군가는 바람을 쐬어주었다. 나의 경우는 글을 쓰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의 시작이었다. 


실은 상담센터를 찾아갔었다. 재작년쯤 내가 처했던 상황으로 힘들어했을 무렵,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찾아간 곳이었다. 현재를 살아내려고 방문했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아서 어느 순간 센터를 찾지 않게 되었었다. 당시의 상담사 선생님이 센터를 나와 개업한 상담소를 찾아갔다.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반겨주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차분하지도 않게 내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일종의 트라우마와, 죄책감과, 고립감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누군가 자신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는 것, 그걸 근거로 나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듯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 이면에 그만큼 어두운 모습이 있다는 걸 이해받길 원했다. 온전한 나를 평가나 판단 없이 받아들여주길 바랬다. 내가 타인을 볼 때 평가하지 않으려 노력했듯이 타인도 나를 볼 때 그러하길 원했지만 대다수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지금껏 나를 지나간 소중했던 사람들이 굉장히 귀하고 특별한 소수였던 것이다. 내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라는 사람 그 자체도, 나를 둘러싼 타인들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 역시 외면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세상 모든 것들이 변해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내 기억 속의 과거는 결국 나를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어 나를 세상에 발붙이게 할 것이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움에 지쳐도, 살아있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눈앞의 현실이 처절하게 괴로워도 주저앉은 나를 잡아주는 건 결국 내가 걸어온 길이 될 것이다. 5년 전의 여름이 올해의 여름을 만들어주었듯, 올해의 여름이 5년 뒤의 여름을 지켜주는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사실 '외면하고 싶은 현실' 매거진은 격리 첫째 날에 95%를 썼다. 5편을 연이어 써놓고 깊게 잠이 들었다.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자니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써놓고 보니까 별 거 아니었다!(아니다 별 거였다.) 아무 말 대잔치인 별 이야기를 읽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2022.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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