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회사 그만 둘게!

무모한 도전

by 퓨처에이전트

4년 반 정도의 직장생활 기간 동안 운좋게도 영업 현장부터 전략기획실까지 고속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조직을 이해하고 많은 선배들과 상사를 지켜 볼수록 퇴사에 대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져만 갔다. 취업을 할 때만 해도 가능하면 임원이나 CEO 까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조직의 상사들과 임원들, CEO마저도 내 눈엔 꼭두각시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들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주인의식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외치지만 내가 그들(오너가족)의 진짜 가족이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출처 : 불개미상회

또 하나 내가 조직을 떠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서른이 넘으면서 그냥 이제는 좀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늘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말썽 한번 안 피우고 살았다. 군에서도 두번의 직장에서도 통제된 환경이지만 늘 잘 적응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낯선 이들과 큰 문제없이 잘 어울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냥 내 생각과 나의 삶을 컨트롤하는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결심했다.


학창시절 인상깊게 읽었던 어느 책 제목처럼 이제부터 내 인생은 내가 만들기로 말이다. 지금은 정말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으로 잘 살고 있어서 행복하다.

고등학생 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두권의 책

그런데 평소에 롤러코스터도 타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은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생활을 끝낼 수 있었던 가장 큰 동기는 바로 아이의 탄생이었다. 아내의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아빠이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다. 고심한 결과 내 아버지같은 모습도 아니었고 직장의 많은 선배와 상사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즉 그들과는 달라야 했다. 행복한 아빠가 되고 아이와 어릴 때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른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10살 정도 되어서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해 할 때쯤 내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닥 맘에 들지 않았고 그렇게 자랑스러워 할 만한 아빠는 아닐 것 같았다. 퇴사해서 10년이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모습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돈도 벌고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낼 수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럴려면 하루라도 일찍 회사를 나와서 홀로서기에 도전해야 했다. 그리고 내 아이도 그런 나를 보고 자라면서 자유로운 삶을 꿈꿨으면 했다. 물론 지금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티브잡스의 명언

문제는 이미 결혼도 했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 예비아빠로서 아무리 내가 자유롭고 싶고 딸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혼자서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더욱이 이런 나를 이해해 줄 가족들은 거의 없을 게 확실했는데 역시나 퇴사를 결정하고 가족들에게 알리자 너도나도 말리기 시작했다. 설득한다고 설득될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내 결정은 변함이 없음을 재차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어차피 나는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고 내가 설득해야 할 사람은 사실 딱 한 사람 바로 아내뿐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내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게 결혼 전부터 여자지만 나보다 더 대담하고 배포가 있었다.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해도 시원하게 오케이해 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를 출산하고 3개월 육아휴직 후 처가에서 올라 온 아내가 첫 출근을 한 그날 밤 퇴근한 아내를 향해 나는 겁도 없이 이렇게 내뱉었다. (물론 나는 3개월동안 혼자서 심사숙고를 한 상태였다.)


"여보! 나 회사 그만 둘께, 나 하고 싶은 게 생겼어!"


그리고 잠시 나를 쳐다보던 아내로부터 돌아온 답은 이랬다.


"그래~ 해 봐라! 안 되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뭐!"


어라 뭐지? 허락해 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쉽게 해 주다니 뭔가 일이 술술 잘 풀리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내가 그렇게 믿고 허락을 해 주니 더욱 자신감이 생겨 나의 퇴사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아내는 당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기는 하고 싶은 게 뭔지도 여전히 잘 모르겠는데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는 내가 부러웠다고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잘 안 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었단다. 나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으로 한 말이었는데...어쨌든 내가 사람은 잘 본 것 같다.


아 그리고 다행이도 한번의 이직을 하면서 조직내 동료들에게 이직이나 퇴사를 상담하면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만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퇴사를 준비해서 큰 장애물은 없었다. 물론 사직서를 낸 후 팀장님과 임원과의 상담과정은 있었지만 사실 내 인생을 진심으로 걱정해서라기 보다는 한명이 퇴사하면 다른 직원들이 피곤해지니 나가지 말라는 느낌만 받았다.


그리고 당시 임원이었던 분이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교육(강의)쪽으로 갈 생각이라고 하니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서 쉽지 않을 거라며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래서 더 '그럼 제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라며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퇴사하고 1년 만에 직장때 연봉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그 분께 너무 감사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은행에서 일만 하다 결국 조직에서 버림받은 아버지를 보면서 취업을 해도 반드시 내가 필요할 때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나오겠다고 각오했던 나였는데 정말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여러분은 혹시 아는지 모르겠다. 내가 직접 쓴 사직서를 던지며 내 발로 걸어서 회사를 나오는 그 쾌감을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그만큼 큰 쾌감은 없었던 것 같은데 특히 정말 열심히 회사 잘 다닐 것 같은 사람이 사표를 냈을 때 주변의 반응을 보는 쾌감은 더욱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물론 동료들에게 살짝 미안할 수는 있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뭘 하겠다고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운 것일까? 도대체 무슨 근자감으로 회사를 나가서도 먹고 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걸까? 그것도 딸아이 태어난 지 3개월차에 말이다. 사실 난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된 놈이었다. 단지 실행으로 옮길 타이밍이 왔고 나는 내 가슴이 시키는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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