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드디어 독립을 선언하다!

홀로 서기

by 퓨처에이전트

식품회사에서 편의점 회사, 그리고 월급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마지막으로 소속되었던 교육회사까지 4년 반이라는 조직생활을 끝내고 2010년 6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독립을 위해 마지막 회사에서도 퇴사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것이 교육회사에서 나오던 마지막 날 독립근로자이자 1인지식기업이지만 마케팅 좀 배웠다고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었던 마음에 급하게 BizTrend라는 브랜드명을 정하고 도메인도 구입했었다.


그리고 경영학을 공부한 만큼 BizTrend 만의 미션, 비전, 가치는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정확하게 2010.6.1 당시 운영하던 네이버 카페에 기록을 해 두기도 했다. 그날 저녁 편의점에서 구입한 돼지고기 편육과 막걸리 한잔을 올리면서 아내와 나는 둘만의 고사도 지냈다. 뒤돌아 보면 참 별짓 다 했다.

그러나 당장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나 불러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맨땅에 헤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믿을 건 대학시절 대학생 축구대회 스폰서 따러 다니던 무대뽀 정신과 편의점 운영과 식품회사 영업을 하면서 물건 팔던 실력 그리고 군에서 행정병을 하고 직장에서 기획업무 하면서 나름 한 번에 OK 받는 기획제안서 작성 능력뿐인데 당장은 강의 커리어가 너무 적어서 어디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당장은 아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생활비는 벌고 있으니 강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 무료 강의라도 해야겠다고 말이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자원이 바로 아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직장 다닐 때 MD가 되기 위해 다녔던 학원이 생각나서 바로 이메일을 보내 무료 강의도 좋으니 내 경험을 살려 후배 MD들을 위한 트렌드 리딩력 강의를 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고 결국 얼마 뒤 무료특강을 할 기회를 얻었다. 역시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2010년 7월 MD아카데미 유통교육원 무료특강 모습

내가 정말 자신 있는 트렌드 리딩 강의였고 같은 학원 후배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라 편하게 할 수 있어서 나름 반응이 괜찮았다. 이후에도 몇 번 무료특강을 한 후 원장님의 제안으로 학원에서 정식으로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원장님이 진행하는 각종 유통 컨설팅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하면서 딸아이 분유값 정도의 수입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수많은 교육업체에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강의 경력이 필요했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은 내가 직접 공개강좌를 열어서 사람들을 모아 보자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브랜드는 거짓 없는 포장이라고 생각한다. 양성식 강사라는 퍼스널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일단 그게 무료 강의든 공개강의든 온라인 원격강의든 강의를 했다는 거짓 없는 사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직접 강남역에 스터디룸을 대여해서 네이버 카페와 수많은 사이트에 공개강좌를 홍보했고 강의장 대여비에 해당하는 인당 5천 원에 유료 강의를 시작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첫 번째 강의 때 모습이다. 그때 알았다. 내가 관심 있는 어떤 것이든 다른 누군가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여러분도 용기를 내 보기 바란다.

2010년 7월 인당 5천원 받고 열었던 첫 유료공개강의

공개강좌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시간에도 놀고 있을 수 없어서 최근 코로나 19 때문에 원격화상강의가 이슈지만 이미 10여 년 전에 나는 원격화상강의를 활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의경력을 쌓기 위해 노력했었다. 거짓말 아니고 당시에 원격화상강의가 태동할 때였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에서 전국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원격화상강의를 진행했는데 당시 롯데마트에서 통큰치킨 같은 마케팅을 할 때라 강의명도 통큰강의(클릭)였고 100% 지식재능기부로 진행했었다.

2011년 원격화상강의를 하던 모습

한 번은 업체에서 강의에 필요한 스피커 등 장비를 무상 대여해 주기까지 했고 회사 측에서 공개강좌를 열어 사람들을 모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10여년 전이니 아직은 시기상조였는지 플랫폼이 지속되진 못했고 회사가 수익을 내지 못해 결국 사업을 접고 말았다. 그래도 당시의 경험이 최근 코로나 19로 원격화상강의를 진행하곤 할 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래도 조직을 완전히 떠나 독립근로자이자 1인지식기업가에 도전한 첫 해에 손가락 빨며 굶고 살 줄 알았는데 조금씩 수입도 생기고 운 좋게 시대의 흐름을 타서 저렴한 비용(스터디룸 유행 초기)으로 공개강좌도 열고 무료 원격화상강의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SNS가 막 서비스되고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될 때여서 퍼스널 브랜드를 만들고 사무실 없이도 스마트워킹이 가능해진 것도 독립근로자이자 1인지식기업인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독립을 선언하고 내가 투입한 자금은 70만 원짜리 조립 PC 한대와 할부로 구입한 스마트폰 한대가 전부였으니 수입은 이전 회사 연봉에 한참 못 미쳤지만 크게 손해 볼 건 없는 장사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조건 강의경력을 늘려야 한다는 욕심에 검증되지 않은 신생 교육 에이전트 회사와 강의를 진행했고 강의료가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믿고 계속 진행하다 600만 원 상당의 강의료(당시 시간당 5만원를 받기로 하고 2010~2011년 강의 진행)를 떼이고 말았던 것이다. 안 그래도 딸아이 분유값도 겨우 버는 아빠였는데 강의료도 못 받아 오는 남편을 아내는 얼마나 한심하게 봤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웠던 순간이다.


사실 강의료만 못 받았으니 손해는 없을 것 같지만 지방 강의를 갈 때는 교통비며 숙박비를 사비로 선결제해야 했기에 결국 강의료 그 이상의 손해를 본 셈이다. 당시 그 회사는 사회복지법인이었고 대표도 사회복지를 전공했으며 대표의 아버지도 사회복지사업가 출신이라 정말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도 강의료는 적었지만 1인지식기업으로서 빠르게 강의경력을 확보할 생각에 무리를 했던 것 같다.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한다고 사람들이 다 선한 건 아니라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결국 그 회사는 다음 해 폐업을 했고 이후에 찾아가 보니 버젓이 같은 장소에서 대표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몇 번을 찾아가서 강의료 지급을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어렵다는 얘기만 되풀이했고 다행히도 그 일 이후에 계속 강의 기회가 생기면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리고 완전히 포기한 이유는 600만 원 받겠다고 내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느니 앞으로 그 이상 벌면 된다고 생각했고 훗날 분명히 자산이 될 거라고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는 사회복지 쪽 강의는 쳐다도 안 보려고 했는데 몇 년 뒤에 카페와 블로그 등에 올려 둔 사회복지 강의 경력을 보고 곳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실제로 못 받은 강의료 그 이상을 벌 수 있었다.

어떤 경험이든 당시에는 힘들고 실패로 여겨질 지라도 반드시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수많은 점들이 연결되어 선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1인지식기업가 10여 년간 결국 내가 해 온 일들은 그렇게 조직을 떠난 첫해에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기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동안 쌓아 온 네트워크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때로 돌아가도 그 이상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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