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퍼 Dec 27. 2022

어떡하지. 일이 노잼이다. 어떡하긴. 극복해야지

주니어 노잼시기 극복법


이전 브런치 글에서 주니어에게 닥친 다양한 노잼시기 사례에 대해 다뤘었다.

https://brunch.co.kr/@2hopper/49


이전 글 말미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번 글에서는 업무 노잼시기 극복법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주니어의 업무 노잼시기 극복하기




01 의미없는 연차 내고 나만의 시간 가지기

가끔은 의미없는 연차를 내보자. 병원을 가기 위해, 은행을 가기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한 연차 말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연차' 말이다. 물론 아까울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이 '무언가를 하기 위한 연차'가 아니라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연차'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을 것. (몇몇 회사에서는 조직원들의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해 3년 근속 후 한 달 안식휴가를 주는 시스템이 있다.)


파워J인 나는 오히려 아무 계획하지 않았을 때 자유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날 하루만큼은 파워 P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주니어들은 매일 투두리스트를 관리하면서 '억지J 상태의 페르소나'로 회사생활을 한다. (파워 J인 나도 버거울 정도로..) 그러니 한번쯤은 계획도 없고 대책도 없이 파워P가 되어보자.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노트북을 챙겨가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그리고 그 사실을 한 번 깨닫고 나면 일이 주는 중압감이 조금 줄어든다.


지인이 알려준 강릉의 한 해변. 평일에 돗자리를 펴고 광합성하며 책을 읽으니 일과 아주 멀리 떨어진 기분이었다.

일 안 하는 평일마다 가는 자신만의 아지트 장소가 있으면 더 좋다. 현재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는 한 지인이 알려준 강릉의 해변에 다녀왔는데, 일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강릉바다 앞에 누워있던 나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솟구친다. 평일의 내가 일에만 묶여있지 않고 언제든 나를 돌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일을 위해 평일을 소모하는' 게 아니라 '평일에는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02 나를 둘러싼 업무 환경 바꿔보기

업무 노잼시기가 단순히 인생 노잼시기와 겹친 게 아니라 외부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면(이전 아티클의 1,2번에 해당) 업무하는 환경을 바꿔보자. 여기서 업무 환경이라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나를 둘러싼 '일하는 상태 그 자체' 바꾸기

나는 입사 이후 꾸준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홈오피스의 인테리어를 자주 바꾸는 편이다. 재택근무를 하다보면 업무의 강도와 별개로 내가 체감하는 외부환경의 변화가 아주 미미해서 일상이 굉장히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이럴수록 자주 사소한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대개 홈오피스에 있거나 / 출근을 하거나 / 워케이션을 떠나면서 끊임없이 업무 환경에 변조를 줬다

저멀리 혼자 훌쩍 워케이션을 떠나거나, 나와 관련된 업계의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간단하게 홈오피스를 꾸며볼 수도 있다. 나는 매일 점심을 먹고 식물에게 햇빛을 쬐이고 물을 주는 것에서 환기를 하곤 한다. 식물을 돌보는 행위지만 곧 내가 나를 돌보는 루틴이기도 하다. (워케이션에 대해 궁금하다면 '오피스 해방일지' 매거진을 참고하길 바란다.)


둘째, 사내 조직 바꾸기

내부 조직 바꾸기는 대개 회사에 비해 유독 우리팀(혹은 파트)만 일을 비합리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고민해볼 수 있는 선택지다. (회사를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우리팀은 잘못 되었다는 걸 느끼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에 비해 나만 뒤쳐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거나, 일은 많은데 옆팀에 비해 제대로 된 아웃풋이 없다거나, 내가 원하는 커리어의 방향성이 팀의 역할과 다른다고 여겨질 때 내부적으로 조직을 바꿔볼 수 있다. 조직장과의 티타임을 통해 조직을 이동하거나 공식 지원 루트로 조직 간 이동이 가능한 회사들이 있으니, 이런 사내 제도를 잘 이용해보는 걸 추천한다.

사내 조직을 이동할 정도의 컨센서스가 아니라면, 팀 내에서 내 업무를 조금 줄이거나 변경해 볼 수도 있다. 열린 분위기의 조직이라면 조직장님이 충분히 의견을 경청해주실 것이다. (열린 분위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지레 겁먹고 입을 다물진 말자. 혹시 모르잖나!)


셋째, 몸 담고 있는 조직 바꾸기

이전 아티클에서 다뤘던 것처럼, 내가 속한 팀/파트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라면 빠르게 그 조직을 탈출하는 것 역시 답이 될 수 있다. 물론 나도 잘 못하지만..

현재 업무에 만족도가 낮은 주니어들은 대개 2-3년차에 상세 직무를 바꾸거나 자신의 스페셜리스트를 키울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지금이 그런 시기일 수 있으니!



03 커리어 로드맵 짜기

일이 노잼인데 커리어 로드맵을 짜라고? 이게 뭔말인가 싶지만...

한 2-3년 정도 일단 주어지는 일들을 열심히 수행하다 보면, 숲보다 나무를 봐야 하는 일이 잦아진다. 이럴 경우 자칫 잘못하면 타성에 젖어 초심을 잃기 마련인데, 잃어버린 초심을 찾기 위해 긴 호흡으로 커리어 로드맵을 짜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

조금 더 장기적인 계획을 짜기에 적합한 방법 중 하나로 '피자파이' 만들기가 있는데, 믿고 일하는 동기 양새별의 <늦지 않았어요. 나와 하는 새해 7가지 약속> 아티클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니 추천한다.



04 외부에서 영감 채우기

03과 비슷하게, 외부에서 이런 영감을 채워볼 수도 있다.

마케터인 나는 다른 마케터들이 여는 팝업스토어나 프로모션을 보면 '잘한다'는 생각과 함께 질투가 몰려온다. 이런 긍정적인 질투를 유발하는 환경에 나를 자주 노출시키는 것 역시 마케터의 일 중 하나이자, 꾸준히 일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순서대로) 2023 트렌드 컨퍼런스 티콘 / 서울퍼블리셔스테이블 2022 / 강릉 감자유원지

나는 이렇게 꾸준히 모은 영감들을 날아가지 않게 레퍼창고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가끔 아이디어 구상을 해야할 때 이렇게 모아둔 레퍼창고 계정이 톡톡히 도움이 되더라. 일에서 벗어나 영감을 얻고자 한 일이 오히려 일에 도움이 되다니.

마케터가 아니라도 자신과 몸 담은 업계의 다른 사례들을 구경하러 다니는 건 유의미하다. 개발자들이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여하거나, 음식점 하는 분들이 맛집을 탐방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05 일과 다른 영역에서 나 스스로에게 성취감 주기

삶은 다각형이다. 일에서 스탯 100을 찍어도 다른 영역에서 부족함을 느낀다면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워라밸이든 워라하든 삶의 밸런스를 회복하는 측면에서 나라는 한 인간의 개인적 성취는 중요하다.

나는 일과 전혀 다른 일들로 나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 도장들을 찍어주며 사소한 성취를 주는 편이다. 아침마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아주 쉬운 수학 방정식들을 푼다거나, 명상을 한다거나, 러닝을 한다거나... 머리를 쓰는 사람이라면 손 쓰는 일을 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반대로 손이나 몸을 마구 쓰는 직업의 주니어라면 몸을 최대한 릴렉싱하게 해줄 수 있는 취미를 추천한다. (동기 중 한 명은 꾸준히 뜨개질로 뭔가를 만들던데 좋아보이더라.)


아래는 몇 개월 동안 꾸준히 수학 문제를 풀면서 느낀 점을 썼던 일기 중 일부다.

구몬 수학을 시작한 지 여섯 달이 지나자 수학적 근육이 꽤 붙은 것 같은 근사한 느낌이 든다. 아주 단순히 풀 수 있는 중학 수학부터 그래프 그리기, 방정식, 인수분해, 도형… 조금씩 증량하며 차근히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이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아무튼 저녁을 먹고 난 후 뉴스를 보면서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은 일상의 소소한 방공호가 되었다. 당연할 정도로 인생의 여집합이라 생각했던 숫자들을 계산하고 분석하는 건, 내가 가진 다각형 어딘가에 위치한 가장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는 것만 같다. 살면서 발견하지 못했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지 모를 내 숨겨진 꼭짓점 중 하나를 주욱- 늘려나가는.

숫자가 가진 이 명확함과 회복 탄력성이 사랑스러워! 그것들이 내 속 어딘가에 고요하게 자리 잡길 바란다. 그렇다고 너무 수학적인 인간이 되는 건 싫지만

이처럼 무언가 일과 다른 영역의 근육을 쌓아간다고 생각하면 좋다. 가볍게 시간을 소비하는 넷플릭스, 유튜브도 취미로 나쁘지 않지만 그것이 곧 성취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천하진 않는다.

혹시나 자신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요즘은 취미 플랫폼들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며 내 취향을 찾아가보자. 너무 재밌지 않은가. 죽을 때까지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게!



06 나 자신을 돌보는 아주 사소한 루틴 만들기

04와 비슷하지만 05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수학문제 풀기'보다 더더더 사소한 루틴을 말한다. '무언가 취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나 자신을 더 둥가둥가해주는 시간 가지기' 정도랄까. 04처럼 거창할 필요도 없다. 무엇이든 나를 돌보는 루틴이 있다는 것은 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제대로 일을 했는데도 객관적으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 때, 내가 애쓴 시간보다 실패한 결과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 스스로 나를 깎아내리는 데에만 집중하게 될 수도 있다. 실패의 결과가 쌓여 회고가 되면 좋지만, 실패의 결과가 쌓여 내 몸 안에 서서히 우울감으로 퇴적되지 않도록 제대로 회고하고 꾸준히 나 스스로를 칭찬하자.


업무 회고를 위해서 보통은 TIL(Today I Learned)를 작성하지만, 노잼시기에 빠진 주니어에게는 그보다 조금 더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칭찬 일기'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이 형식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모에화시키기만 하는 칭찬일기는 유효하지 않다. 잘한 일을 잘했다고 짚고 넘어가는 것이 목적이다. 세부적으로는 칭찬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것이 첫번째고 이후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두번째다. 무엇보다 일이 내게 주는 실패감과 속상함을 내 인생에 완벽히 치환시키지 말자.


칭찬 일기 작성법 예시
<오늘의 칭찬 일기>
- 처음으로 함께 일하는 시니어분께 용기내서 데이터 추출과 분석에 대해 물어봤다.
> 아직 완벽히 분석하진 못하지만 로우데이터를 뽑아서 발라보는 법을 대략적으로 알겠다. 나는 데이터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일 뿐이었음!
>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취직한 것도 아닌데 데이터에 관심 갖고 주도적으로 일한 나 칭찬함!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를 찾자. 일에는 우수답변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07 뭐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 버리기

일에서 오는 우울감이 일상의 우울감으로 옮겨갔다면, 단순한 노잼시기가 아닌 번아웃이나 무기력증일 수 있다. 일이 아닌 인생의 노잼시기가 도래했다면 그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 영상)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와 잣대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사람은 무기력해지곤 한다. 내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평균치를 찾아 나서보자. 모든 것에 힘을 주고 살면 힘을 줘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힘이 빠지기도 하니까!

 

완벽주의자들은 일에 대한 실수가 내 인생에 대한 실패라고 여기기도 한다.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가 과중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조직장님께 티타임을 요청해봐도 되고, 평소 같았으면 거절하지 않았을 일도 거절해보자. 하늘이 두쪽날 것 같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좋은 동료들과 일하고 있다면 오히려 업무 분배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해결방법을 모색하려 할 것이다.



08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환경에 나를 내던지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꾸준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살아가는데, 하루 8시간(혹은 그 이상) 평일 5일 내내 업무로 부대끼는 조직원들만 만나다 보면 이 사람들이 곧 내 세계의 전부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좋은 분들이지만 '사람/사교가 목적인 모임'과는 이해관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상처받기도 하고 서운하거나 기죽기도 하니...

그럴 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자. 성과 달성이 목적이 아닌 단순한 관계의 사람들 말이다. 오랫동안 못 만났던 학창시절 친구를 만나거나,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에 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공동으로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없거나 서로에 대한 기대가 없는 군집일수록 더 좋다.



09 '사실 나는 ~한 사람인데 회사를 다니는 거임' 되도 않는 상상하기

별로 도움은 안되지만 극한의 상황에 치닫을 때 가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예1) 나 사실 회장님의 비공개 딸이라서 회사 안 다녀도 되는데 자기계발을 위해서 다니는거임.. 이정도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 암...
예2) 나 사실 고양인데 인간 트레이닝 하는거임. 
예3) 지금 조직장이 날 너무 괴롭히는데 이거 사실은 귀여운 거 못 견디는 귀염광공인 거임.. 그래서 자꾸 나 괴롭힘.. 내가 너무 귀여워서 그런거임..

물론 이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를 단순화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더라. (그냥 단순해지자는거다!)


이런 사고방식도 은근히 도움이 된다



10 이도 저도 안되겠다면... 퇴사하세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일이 노잼인 게 아니라 회사가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 거라면? 퇴사가 더 좋은 솔루션일 수도 있다. 쉬었다가 돌아간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을테니...

이런 분들을 위해서는 이전 아티클 중 하나인 <신입 커리어를 망치는 회사들>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을 때는 김호영의 잔소리 영상을 한 번 보라. 노잼시기를 극복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뭔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일수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lmvAImSu38



이전 14화 주니어에게 닥쳐온 노잼시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