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호퍼 Feb 13. 2024

이제 워케이션 1등은 남해라고 할랍니다

'소도읖 남해'가 너무 좋았다는 후기입니다


근무제도가 바뀌기 전에는 리모트 워크 제도를 그 누구보다 알뜰살뜰히 활용했던 나. 재택근무가 종료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서 오랜만에 주말-휴가를 반납하고 남해까지 달려가 리모트 워크를 하고 돌아왔다.



01 리모트 워크를 했던 곳들

강릉 더웨이브 아무도 없는, 강릉 바닷가에서 일하기

통영 디어먼데이 고요하고 안온한 통영, 그리고 일


02 리모트 워크에 대한 아티클들

재택 시대의 주니어로 살아남기

회사는 왜 재택근무를 선택했을까?

워케이션, 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휴양지에서 일이 돼?

워케이션 떠나기 전 투두리스트

리모트 워커를 꿈꾼다면





워케이션 장소는 소도읖 남해(@we.are.sodope). 얼마 전 완공한 따끈따끈한 공간이다.

이 곳의 터를 다듬고 뼈대를 세우는 과정부터 인스타그램으로 지켜보고 응원했던 곳이라, 언젠가 꼭 오고 말리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소도읖 측에서 초대해주셨다. (한 마디로 성덕...)

*그렇지만 브런치 포스팅은 그 어떠한 댓가도 받지 않았음을 알린다.



(필름 사진의 일자가 죄다 잘못 찍혔다..)


서울 경기권 사람들에게 남해라는 도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로써는 남해가 썩 낯설지만은 않다. 조용한 바다와 고요한 파도소리, 친절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경쟁이나 스트레스보다는 낮잠과 독서가 더 잘 어울리는 동네.





주말과 휴가를 걸쳐서 간 것이니만큼, 일부러 회사 일은 하지 않았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독서 위주로 시간을 구성한 탓에 조금 더 여유로웠다.


따지고 보면, 내게 워라밸은 '일을 얼마나 적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진 않는다. '워크=회사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스펙트럼을 확장해서, '마케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워크'에 해당한다. 결국 평일 뿐 아니라 주말까지도 마케터로 살기 위해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싫지 않다. 회사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워크타임이 내 라이프 밸런스를 잡아주거든. 삶에서 일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떼어놓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일에서 오는 성취와 보람이 인생의 큰 축이라서.)





다시 돌아가서, 소도읖 남해를 살펴보자.

사실 구구절절 좋은 점을 열거하면 너무 홍보글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긴 했지만. 좋은 걸 어쩌나.

어떤 게 그렇게 좋았냐면...


01 사무동과 휴식공간이 철저히 분리된다

사무동과 휴식공간(룸)은 도보로 고작 1분이다. (아니 어쩌면 30초였을지도..)

나는 이중적인 사람이라, 재택근무를 원하면서도 사무공간과 휴식공간은 분리되었으면 하는 니즈가 늘 있었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휴식공간의 중력이 높았고, 풀 출근 제도로 일할 때는 휴식공간이 제로라 가슴이 답답했었다면, 소도읖 남해에서는 이 둘의 적절한 밸런스를 잡았다.

일에 몰입하다가도 쉬고 싶을 땐 100보 안으로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수많은 다른 워케이션을 다녀왔지만 이처럼 설계가 만족스러운 공간은 처음이었다.





02 내외부 공간의 밀도가 낮아서 의도적으로 시청각적 자극이 줄어든다

남해라는 공간을 상상해보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솔직히, 시래기밭과 항구가 떠오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래기밭과 항구의 공통점은 하나다. 시청각적 자극이 적다는 것. 더 쉽게 말하면 '여유롭다'의 관념에 가깝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자극과 도파민에 절여진 채로 살아간다. 나 역시 하루 8시간을 꽉 채워서 업무를 하다 집에 돌아와도 꼭 숏츠나 릴스를 보며 내 1시간을 잘게 쪼개서 쓰는 편인데, 그럴수록 알 수 없는 답답함과 공허함이 생기더라. (인생을 매번 1.5배로 빨리감기 하는 기분이랄까.)

시간 뿐 아니라 공간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고작 1평도 안 되는 내 사무공간에 가습기도 놓고, 듀얼모니터도 놓고, 핸드크림에, 충전기에... 이것저것 놓고 나면 데스크가 꽉 차서 답답하게 느껴진다.


내가 워케이션을 떠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의도적으로 내 삶의 밀도를 낮추는 데'에 있다. 매일같이 숏츠를 보다가 하루 딱 끊고 책을 읽을 때의 그 성취감. 그 감정이 내 삶에 스며들 잉여시간을 잠깐 마련해주고 싶었다.

시골에서 워케이션을 하다 보면 탁 트인 창 앞에 펼쳐진 밭을 바라보며 일을 하다보니 일은 1.25배 속도로, 삶은 0.85배 속도로 흘러가는 신기한 기분이 든다.





03 자신에게 맞는 업무공간 스타일을 A/B test 해볼 수 있다

나는 서울에 그 흔한 자가 하나 없는 평범(?)한 주니어 직장인이다. 그래서 사실 공간에 대한 여러 선택지를 테스트 해보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는 뭘 하든 다 돈이거든.) 재택근무를 활발히 하던 시절에도, 돈이 아까워서 공유오피스 정액권을 끊지 못했던 게 나다. 이제껏 (워케이션이 아닌 방식으로) 내가 경험해 본 업무 공간은 고작 집 앞 카페, 집 안 책상 위 정도가 다였다.


소도읖 남해는 나같은 사람을 고려한 건지...

적어도 3가지 이상의 업무 공간이 준비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경험해 볼 수 있다.

1) 숙소(침대) 앞 작은 개인 사무공간
(*자다 일어나서 초췌한 몸가짐으로 영감이 마구 떠올랐을때 바로 앉아서 몰입할 수 있는 책상이 있다니!)

2) 사무동 내 개인 미니 오피스 공간
(*게다가 여기는 파티션이 아닌 공간 자체의 분리가 되어있어서, 1인 CEO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3) 세미나실/폰부스 공간
(*조금 더 프라이빗하게 업무를 하거나, 미팅을 하기에 좋다.)

4) 미팅룸
(*사진에는 없으나, 4~6인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

5)오픈된 사무공간
(*이 또한 사진에는 없으나.. 마치 실리콘밸리의 회의 테이블 같은 느낌이다. 단차가 조금 높은 (스탠딩에 가까운) 책상과 의자가 있어서 짧게 일처리하기에 좋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결정하는 일을 망설이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건 '무지'와 '두려움'에서 오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젊을 때 자유여행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패키지를 고집하는 것처럼. 한 번도 몰입의 공간을 바꿔보지 않았던 사람은 몰입의 다른 얼굴을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비단 서비스, 브랜드, 배너 소재에만 A/B test가 필요한 건 아니다. 내가 일을 함에 있어서 몰입하는 방식에도 A/B test를 도입해보자. 적어도 난 한 번 후킹했다가 끄는 배너가 아니잖나?




04 일하지 않아도 할 게 많다.

나는 이번 워케이션을 특이하게 금토일월(3박4일)으로 다녀왔다. 그마저도 금요일은 회사 쉬는 날, 월요일은 휴가를 냈다. 이 얘기를 들으면 몇몇 사람들은 '왜 일하러 가는데 평일에 안 가고 주말을 소모해?'라고 하는데, 내게 '워케이션=워크와 라이프의 어느 적정선을 찾아나가는 일 중 하나'라고 대답하고 싶다.


많이들 '워케이션=일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치만 워케이션을 떠나보면 생각보다 갭이어를 가지기 위해 온 사람들을 왕왕 볼 수 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그냥 멍 때리며 해변에서 캠핑을 즐기거나, 사무공간에서 독서를 하거나, 시골 밭에서 취미 릴스를 찍거나, 남해에서 핫하다는 카페를 가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즐긴다. 그리고 그 속에 일이 있다.한마디로, 이 곳에 온 사람들은 '일을 너무 사랑하는 것'보다는 '삶을 너무 사랑하는 것'에 조금 더 수렴한다. 그래서 일을 더 좋은 환경에서 몰입하고 싶거나, 일이 아닌 시간에도 나 자신에게 몰입의 경험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혹시나 워케이션에 대해 아직 망설이고 있다면 (특히 업무 효율 측면에서) 간단히 여행 형식으로 워크가 10% 내외로 가미된 '베케이션'을 먼저 떠나보자.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곧 새로운 일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05 시골살이를 맛볼 수 있다

안식년/갭이어 등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나는 나고 자란 친가/외가가 모두 시골이라, 시골에 대한 로망이 크진 않지만... 가끔 시골이 주는 적당한 군내를 사랑하는 편이다. 마음도 굉장히 평화로워지고.

'언젠가 시골에 집을 짓겠다' '귀농하고 싶다' '일년에 한 번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 등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꼭 남해로 와보길 바란다. 시내가 있는 앵간한 시골과는 다른 찐시골을 맛볼 수 있다.



06 혼자 와도 좋다

이제껏 나는 대부분의 워케이션을 혼자 다녀온 편이고, 얼마 전에는 짧은 안식월을 보내러 혼자 프라하를 여행했다. 혼자 어딘가에 뚝 떨어졌을 때의 적적함은 사실 금방 지루함으로 치환되기 마련인데, 남해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일과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고, 늘 상주하는 스탭분들이 환하게 맞아주시며, 적당히 느슨한 네트워킹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공용주방에서 요리를 하기에도 좋고, 요리를 하면서 슬쩍 옆방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봐도 좋다. 그도 싫으면 방에 콕 쳐박혀서 책만 읽어대도 괜찮다.

'혼자임의 기분'을 오롯이 만끽하기에도, 적당한 온도로 사람들과 이어지기에도 좋은 곳.




이런 웰메이드 공간을 만날 때마다 브랜드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흥분되고 행복하다.

다음엔 또 어디로 떠나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고요하고 안온한 통영, 그리고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