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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01. 2018

시한부 퇴사를 하다

휴직계를 제출하며

죄송합니다만 눈물이 안 멈춥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9년째, 현 직장에 입사한지 2590일째, 6번째 부서로 옮긴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전 부서장의 전화가 시작이었다. "힘들지? 그 부서가 이 시기 특히 힘들지만 지치지 말고 힘내라" "괜찮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너무 힘듭니다" 그 후 전화기를 붙잡고 1시간여를 울었다.


직속상사에게 메신저로 '반차를 내야할것 같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바쁜데) 오늘 반차를 낸다고?" "뵙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죄송한데 오늘 오후에는 반차를 내야할 것 같습니다. 눈물이 안 멈춰서요" 이후 1시간을 더 울었을까? "일단 지금 집으로 가라"  


일터에서 가장 가까운 신경정신과를 검색했다. 대강 짐을 싸서 나와 그곳으로 향했다. 아니 달렸다. 내가 왜 2시간 동안 울었던 것인지, 또 언제까지 울어야 하는지 말해줄 사람을 만나야 했다.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힘듭니다', '못하겠습니다'를 말하지 못해서 병이 난 것

예약없이 병원에 들이닥쳐서인지 1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에 2시간을 내리 울었다. "중증도 이상의 스트레스 반응과 우울 증세가 관찰되네요 '힘듭니다', '못하겠습니다'를 말하지 못해서 병이 나신것 같습니다. 원래 초진 때는 소견서를 써주지 않는데요, 소견서를 써 드릴테니 회사에 인사조치, 안 되면 휴가라도 꼭 받으세요. 심리검사도 필요해 보이네요"


그는 내가 듣고 싶었던 말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 왜 4시간을 울었는지, 앞으로 언제까지 울지. '괜찮다'는 말도. 그래서(?) 심리검사는 하지 않았다. 회사에 소견서도 내지 않았고, 인사조치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진료 사실과 의사의 소견을 구두로 전하며 '너무 힘들어서 휴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사는 내게 3일의 휴가를 권하며 '업무경감'을 약속했다. 이후 다음 인사에서 '부서변경이 필요할 것 같다'고도 말했다.



소견서를 제출하지 않고, 업무경감 요구를 하지 않고, 인사조치를 요구하지 않은,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은 내 잘못이었을까. 잠시 업무경감 후 결국 제자리(?)로 돌아갔다. 주 6일 출근은 흔한일, 재택근무까지 주 7일 근무는 부지기수였다. 달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 보고 퇴근하는건 일상이었다. 이후 급격한 체중감량과 2번의 응급실행을 경험했다. 2번째 이상증세(첫 신경정신과 방문을 하게 했던) 발생 뒤에 급하게 일주일 휴가를 냈다.


죄송합니다만 하루도 더 일하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부서변동은 없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3번째 이상증세가 발생했다.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만 하루도 더 일하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휴직을 하고 싶습니다. 안 되면 사표를 내고 싶습니다" 이후 부서장부터 면담이 이어졌다. "씩씩하게 일 잘하는 줄 알았지, 그렇게 힘든 줄은 정말 몰랐다. 원하는 기간만큼(사규상 최대 1년은 휴직가능) 휴직해라"


아무 계획없이 휴직 의사를 밝혀 얼마동안 휴직을 하고, 그동안 무엇을 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대체휴일(휴일에 일한 수당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지급되는데, 그 전에 휴일근무로 쉬지 못한 날수만큼 평일에 쉴 수 있다)을 끌어모으고 휴가 일부를 붙여 한달을 쉬면서 휴직기간을 결정한 뒤 회사에 통보하기로 했다.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을 잤다. 가끔 낮잠도 잤다. 가족들과 거의 매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음악을 들었다. 책도 사서 읽었다. 영화도 봤다. 친구들을 만났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결전의 날(?), 일단 6개월을 쉬고, 당시 상황에 따라 1년까지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문도 모른채 4시간 동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소매끝이 흠뻑 젖었던 그날부터 257일째 맞은 날이 저물었다.  


안 짜르고 6개월 휴직을 허가해주는 회사가 있어?


"잘했다", "축하한다" '반년 동안 쉰다'는 소식에 친구들 중 누구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만 "6개월이나 휴직을 내주는 회사가 있어? 좋은 회사네", "안 짜르고 휴직시켜준대?"라고만 말했다. 순간 '정규직의 배부른 투정이라고 느낄 수 있겠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휴직을 안 받아주면 사표를 내겠다'는 일개 직원의 엄포(?)에 반년 휴직을 허가해준 상사와 부서장께 감사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누구나 아픔의 기준과 무게가 다르듯, 내 기준에는 참 힘든시간이었다, 자책하려는 나 자신을 다독였다.


다만 언젠가 사표를 내서 회사를 나가든,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나가든, 정년퇴직해 회사를 나가든, 시기는 다르겠지만 나는, 또 우리 모두가 '시한부 퇴사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한부 퇴사자 다운' 준비를 하기로 했다. 이 일을 계속할 것인지, 계속한다면 어떻게 '덜' 힘들게 '더' 잘할 수 있을지를. 이 일을 그만 둔다면 무엇을 할지를. 오늘부터 6개월 혹은 1년 동안 언제가 될지 모를 '어떤 퇴사'을 준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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