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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Feb 05. 2018

'택시요정'에서 '대중교통사랑꾼'으로

휴직 후 '환경지킴이'가 되다...반강제로

택시타는 돈을 모았으면 진즉 외제차를 몰고 다녔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 외근이 잦은 업무의 특성상 일을 할때는 택시를 자주 타고 다녔다. 때로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거다. 30분이라도 더 자자', '체력을 돈으로 사는 거다. 병나서 병원가면 돈이 더 든다' 라고 자위하며 택시를 타곤 했다.


카드사용내역을 볼 때면 한숨을 쉬면서도 "내가 대한민국 운수업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이라며 키득댔다. 가끔은 "택시타는 돈을 모았으면 진즉 외제차를 몰고 다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잠깐이었다. 지금 당장 힘든데 어떻게 하나.



이런 내가 달라졌다. '택시요정' '대중교통 사랑꾼'이 됐다. 일을 쉬고 돈이 궁하다 보면 한파가 최절정이건 최악의 폭염이건 택시를 타기 어렵다. 게다가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시간부자'가 아닌가. 돈으로 시간을 살 필요도, 체력을 돈으로 살 필요도 없어졌다.


휴대폰 바탕화면에 있던 '카카오택시('카카오T'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어플은 살포시 지워졌다. 그 자리는 '서울경기인천버스' 어플로 채워졌다.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닌다. BMW(버스.지하철.도보)족이 된 것이다.


휴직을 한 뒤 커피를 마시는 횟수도 급격히 줄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커피숍에 가는 횟수가 0으로 수렴하고 있다. 아무리 저렴해도 1000원, 비싸면 5000원에 육박하는 '따아(따뜻한 아메리카노)',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시기가 어려워졌다. 모아둔 돈이 당장 커피를 사서 마시지 못할 정도로 바닥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을 벌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선물받거나 지름신이 강림해 질렀던 예쁜 텀블러들을 처음으로 씻었다. 다행스럽게도 커피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선물받은 꽤 많은 커피들이 찬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이소로 가서 40장에 1000원인 커피여과지를 샀다. 2000원짜리 커피드리퍼도 샀다. 일을 쉬고도 따아를 마시지만 비용은 25원+@. 이 좋은걸 왜 진작 안 했을까.


옷과 가방, 신발, 화장품 등 소비도 줄었다. 일을 할때는 '소비욕구'와 동시에 드는 '자제신호'가 괜시리 짜증났었다. '내가 이렇게 개같이 일하는데 이것 하나 못사!' 때로는 정말 사고 싶어서, 때로는 충동적으로, 때로는 오기로 소비를 했었다.


그런데 터를 떠나고 보니 소비욕구가 이상하게 사라졌다. 처음에는 '돈을 아껴야지 하는 마음'으로 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순간 옷과 가방, 신발, 화장품으로 치장하는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물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옷과 가방, 신발이 나의 가치를 규정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 소비에 집착했었는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택시 대신 대중교통,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 옷과 가방 등 소비절감...이건 '환경지킴이'의 모습이 아닌가(후후후) 처음에는 반강제로 시작했지만, 이런 생활들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을 지켜서 북극곰이 '그뤠잇'을 외치고 통장까지 지키니 김생민씨가 '슈퍼 그뤠잇'을 외칠 상황이 아닌가.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 '스튜핏'을 외칠지도 모르겠지만;;;)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생각이라도 바꿔보려고 한다. 생활비를 줄여야 하는 내 신세를 한탄해 보아야 내 마음만 아픈것을 어쩌나. 근데 최근 한파는 해도해도 너무해 이틀에 한번은 카카오택시를 부르고 싶고 드립커피로 먹을 수 없는 라떼가 가끔 먹고 싶고, 쇼호스트 언니가 '고객님!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자꾸 유혹하시는데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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