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7. ~ 2019.5.2.
2019.4.27.(토)
-이터널저니 '심야책방'
이터널 저니. 그렇지. 영원한 여행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지. 기둥에 떡 하니 붙여둔 ‘영원한 여행’이란 문구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이 서점을 만들고 이터널 저니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누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당연하게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잘 쓰인 어떤 책들은 이 세계를 (거의) 영원히 여행한다. 또, 잘 쓰인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충만한 지적 즐거움 속에서 스스로가 영원 속을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 여행은 독자가 책을 멀리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렇기에 책과 독자는 각자의 영원한 여행을,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하고 있다. 이터널 저니. 영원한 여행. 영원한 여행을 하는 이들이 만나는 곳. 서점.
‘심야책방’이라는 행사를 빌미로 오랜만에 이 멋진 이름의 서점을 다시 찾았다. 제목 그대로다. 작가와의 북토크 후 말 그대로 심야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신청자들에게 한밤의 서점을 내주는 것이다. 저녁 9시부터 최대 아침 6시까지 깨끗한 서점에서 책에 파묻혀 있을 수 있다. 해가 빨리 뜨는 계절이라면 6시까지 독서를 하고 서점을 빠져나가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일출 풍경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영원 같은 여행의 밤을 통과한 독서가에겐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 될 텐데. 이번엔 실패했지만, 기운차고 쌩쌩한 어느 날 다시 도전해볼만 하다.
가장 좋았던 건 북토크도, 한밤의 독서도 아닌(물론 모두 좋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렇다), 책을 읽다 잠시 일어나서 한적하고 고요한 밤의 서점을 별 목적 없이 걸어 다닌 순간이었다(굳이 목적을 따지자면, 졸음을 이겨내려는 시도 정도). 시계에서 가리키는 시간과 현재 나의 행동에서 오는 괴리감에 몸이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즉, ‘이 시간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의 느낌. 독서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모든 책이 유혹적이다. 새벽 1시 40분에 수많은 책이 제각각의 매력으로 스스로를 어필해올 때, 괴로움과 행복감이 뒤섞여 순간 아찔해졌다. 어쩌면 나는 내가 가진 800권 남짓의 책도 다 읽지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안 읽으면 후회할 것만 같은 책들이 존재하며, 매일 생성되기까지 한다. 생을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영원히 여행하는 책들을 무한히 읽을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독서하는 자는 그저 매 순간, 잘 쓰인 책을 읽으며 영원 속을 여행하는 착각에 빠지는 행위를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실은, 그 반복적 행위만으로도 독서가는 충분히 행복을 느낀다.
새벽 3시에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이 운전은 당연히 끝날 것이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낮과는 다르게 생경한 풍경을 지나치는 이 밤의 운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말도 안 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단순히 졸려서인지, 새벽 1시 40분에 했던 생각 때문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2019.4.28.(일)
-<소설가의 일>, 김연수
어제 이터널저니 심야책방의 북토크 주인공은 사진작가 홍진훤, 그리고 소설가 김연수였다. 2017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라는 사진 소설을 함께 만든 사람들이 모여 이 작업을, 그리고 작업의 주제였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자리였다. 그 책을 구매해 두 분 모두에게 사인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최근 책을 너무 많이 들인 바람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내 방을 기억하며 꾹 참아야만 했다. 대신 몇 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가의 일>을 챙겨 갔다. 실은 김연수 작가님 책이 아수라장이 된 내 방에 몇 권 더 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여행할 권리> 등등. 그 중에서도 하필 <소설가의 일>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역시 내가 요즘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에. 북토크가 끝나고 수줍은 작가님께 수줍게 사인을 받고 수줍게 사진도 함께 찍었다.
이 책이 나온 직후 바로 사서 읽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읽는 동안 좋았던 기억도 있는데, 도무지 무엇이 좋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어본다. 다시 보니 밑줄도 정말 많이 그었다. 가령 이런 문장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몇 년 전의 나 역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책을 샀을 것이고, 재미있게 다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스스로가 단 한 줄의 이야기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음을 <소설가의 일>을 다시 보며, 또 밑줄이 그어진 문장들을 보며 깨닫는다. 오로지 작가가 소설에 빗대어 삶을 묘사한 문장들만을 편애했다.
다시 읽는 <소설가의 일>은 완전히 새로운 책 같다. 밑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문장들에 새로이 밑줄을 긋는다. 가령 이런 문장들.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소설쓰기라는 동사가 있다면, 그런 뜻이어야만 한다. 누군가 ‘소설쓰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먼저 글을 썼고, 지금은 그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라는 뜻이어야만 한다.
이 순간 감성과 지성이 강렬하게 감응하는 문장이 훗날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 순간 그저 그렇게 스쳐가게 되는 문장이 훗날에는 갑자기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모두 진정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게 책은 종종, 과거와 지금의 나를 잇는 거울이 된다. 불쑥.
2019.4.29.(월)
-<JTBC 뉴스룸-비하인드 뉴스> : 목적어 '인터셉트'
(https://www.youtube.com/watch?v=O7VTUNGr7Pc)
한창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여러 인상적인 풍경을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광경은 첫 집회 참석 때 나왔다. 부산 서면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가득 메운 약 10만의 사람들은 행렬의 앞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에 의지하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나는 시위대의 끝자락보다는 조금 앞, 어쨌든 뒤쪽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집회 진행 중 중앙 무대 쪽 전기 공급이 갑자기 불안정해져 10분간의 공백이 생겼고, 집회 주최 측은 쉬지 않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 전까지 시위 참여 경험이 없다시피 하던 나는 솔직히, 그게 잘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구호 조금 외치다 웅성웅성 거리며 조금 와해되다 중앙 무대 쪽 전기 공급이 원활해져서야 다시 분위기 회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그 때 이런 나의 의심을 무참히 깨뜨리는 데 일조하신 건 시위대 한복판에 앉아 있던 이름 모를 40대 중년 남성 몇 분들이셨다. 그 분들은 선창의 고수들이었다. 아주 절도 있는 목소리와 손동작으로(그걸 운동권에서는 ‘팔뚝질’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 처음 알았다. 실로 엄청난 단어다.) 반경 100m 이내의 시위대를 가만히 지휘했다. 그들의 카리스마는 시위대 전반에 확산되었다. 그 분들이 쉬지 않고 박/근/혜/는 이라고 외쳐주신 덕분에 10만의 시위대는 퇴/진/하/라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10분이 흘렀고, 집회는 무사히 재개될 수 있었다. 나는 퇴/진/하/라를 외치는 동안 그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모두 흔한 사무직 남성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자녀와 동행한 분도 있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에는 분명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표정도 밝았다. 직감했다. 아, 젊었을 때 시위깨나 나가셨겠구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저런 것이구나.
자유한국당의 구호를 노골적으로 웃음거리로 만드는 반대편 (정의당 국회의원 뒤쪽) 사람들을 보며 그 중년 남성들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다시 느꼈다. 싸움도 해 본 사람이 잘 싸우는 것이다. 반면 보이지 않는 어떤 가치를 수호하거나 ‘진짜’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해 자신을 걸고 싸워본 경험이 없는 자들의, 자신을 좀처럼 걸지 않는 투쟁은 극히 무력해 보인다. ‘투쟁’이라는 단어가 과분해보일 정도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늘 그랬다. 단식도, 철야농성도 보여주기 식으로만 한다(역시 단어가 많이 과분하다). 아마 지켜야 할 자신이 너무 비대해서 다 데려올 수가 없어 그 중 일부만을 농성에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상 속 제1야당 의원들의 표정에 생기도, 결기도, 바이브도 없어 보이나 보다. 아무쪼록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는 영상이 아닌, 진정으로 민생과 국가의 안전을 위하는 제1야당의 모습을 보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2019.4.30.(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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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가 된 후 알게 된 사실 하나. 운전자는 도로 위의 죽음을 차 안 그 누구보다 빨리 목격하는 사람이다. 운전자는 전방 주시가 생명과 같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사체는 고양이, 비둘기, 혹은 강아지. 어쩌면 야생동물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망치로 가격당하는 것 같은 충격을 준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운전자는 소리를 지른다. 동승자 혹은 동승자들은 뒤늦게 이유를 묻지만 그들이 두리번거릴 때 차는 이미 사체를 지나쳐간다. 운전자의 충격을 나눠가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시각적 충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도의 충격이 이미 고양이, 비둘기, 혹은 강아지의 목숨을 앗았다.
사실은 운전자가 되기 전에도 로드킬을 목격한 적이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던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나처럼 길을 건너려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고양이와 나의 차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신호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 정도였을 것이다. 불행히도 가냘픈 체구의 그 고양이는 무작정 차도로 뛰어들었다. 마침 그 순간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 어, 어, 소리를 질렀지만 고양이와 승용차 운전자 그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했다. 승용차는 뒤늦게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고양이와의 충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 박자 늦게 차는 멈췄고, 한 번 들이받힌 고양이는 벌떡 일어나 길 건너편 주차장 쪽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입을 틀어막았다. 얼마간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 후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었고, 곧장 주차장 쪽을 향해 내달렸다. 내 가쁜 숨이 무색하게도 고양이는 이미 생명의 숨이 달아난 후였다.
이것은 ‘충격적인 사건’일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것 같다. 몇 년 전의 일이 지금도 가끔 떠올라 괴롭다. 그러나 도처에 죽음이 횡행한다. 내가 목격한 사건 이상의 사건들이 SNS에 넘쳐난다. 사람은 갖가지 이유로 사람도 죽인다. 그러니 어떤 이들은 매번 충격을 받는 나에게 그냥 넘어가라고, 잊어버리라고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매번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럴 수가 없다. 난 도무지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다. 내 죽음을 향해 나아갈수록 타자의 죽음에 대한 기억 또한 차곡차곡 쌓인다.
나와 동생을 유난히 예뻐하셨던 친할아버지. 마을버스를 운전하시던 건장한 팔이 언젠가부터 앙상해지셨고, 한 번 병원에 입원하신 후로는 다시 나오지 못하시고 그곳에서 모든 가족과 작별하셨다. 사망 선고 후 고모가 울며 쓰러졌다. 하지만 어린 나는 할아버지 얼굴이 왜 저렇게 앙상할까, 고작 이런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고 그 위에 무수한 죽음의 기억들이 추가되었다. 친구를 잃었고, 서울 큰이모를, 14년을 함께 살던 반려견을 잃었다. 마음에 여러 개의 무덤을 만들어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죽음 앞에서 고작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왜 이렇게 앙상할까. 왜 이렇게 차가울까. 왜 눈을 뜨지 못할까. 왜 우리는 만날 수 없을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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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용하는 다이어리를 환기미술관에서 사왔다. 군데군데 김환기 화백의 작품들이 삽입되어 있다. 처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실제로 만났을 때의 그 압도적인 느낌을 잊지 못해 그로부터 몇 년 후 찾아갔던 것인데, 다시 만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역시 참 좋았다. 처음 보았을 때도, 두 번째로 보았을 때도 눈물이 났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는 눈물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그 영문을 알 것도 같다. 그 작품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을 어디선가, 무엇이든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관람자에게 선사한다. 그 큰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점과 선을 보고 있자면, 이미 이 세상을 떠나버린 존재들과, 여전히 이 세상에 있지만 더는 교류하지 않게 된 존재들을, 원할 때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그렇지만 나의 현실인식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내 키보다 큰 캔버스를 보는 동안 순서대로 차올랐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다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보러 가고 싶다. 광활한 작품 앞에서 떠오르는 존재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은 눈물을 다시 흘려도 좋을 것이다.
2019.5.1.(수)
누군가의 악의 없는 천진한 말 한 마디도 마음을 턱턱 치고 지나가는 걸 보니, 아직도 단단한 인간이 되려면 한참 먼 것 같다.
2019.5.2.(목)
-<새벽형 인간>, 이케다 지에
한창 ‘새벽형 인간’과 관련된 책들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막상 그 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워낙 밤을 사랑하는 인간이니까. 어려서도 낮에 자고 밤에 깨서 우는 통에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아기였다고 들었다. 아니,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형 인간인 사람도 있는 반면, 새벽에 자서 새벽형 인간인 사람도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궤변을 늘어놓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 잡혀있고 보니, 시간이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귀중한 것이었다. 하고픈 일은 여전히 많은데, 전보다 돈은 많아졌으나 이젠 시간이 없는 형국이다. 예전처럼 밤 시간을 활용하기엔 몸이 너무 낡아버렸는지 글도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아예 밤 10시쯤 잠들어 새벽 4시쯤 기상하는 생활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대놓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새벽형 소설가가 글을 더 많이 쓰는 데 유리하다, 저녁형 소설가는 저녁에 약속이 있거나 다른 일정이 생기면 소설을 쓸 수 없지만 새벽형 소설가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저녁에는 다른 일을 하면 된다. 이 태생적 올빼미는 마침내 생활 패턴을 전격적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하여 며칠의 실패 끝에 어제와 오늘, 4시 기상 후 소설 쓰기에 성공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말은 왜 들은 지 30년째가 되어서야 나를 변화시킨 것일까. 아니, 어쩌면 ‘말’은 나를 변화시킨 주원인이 아닐 지도 모른다. 글쓰기라는 욕구가 없었다면 아마 늙어 죽을 때까지 올빼미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니 보다 정확히 말하려면 욕구가 나를 변화시켰다, 고 보아야 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도 아니고, 그게 올바르기 때문도 아니다. 그런 삶을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교육학에서 지겹도록 듣는 단어 중 하나는 ‘동기 부여’이다.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학습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걸 6년간 배워 알면서도 나 역시 가끔 분에 넘치는 ‘꼰대의 소리’를 조언이랍시고 내뱉는다. 듣는 이가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그런 소리들을. 무수한 자기계발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변화의 동기가 없는 이의 손에 들린 자기계발서는 그저 ‘좋은 말씀’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행동을 바꾸려면 그 행동을 바꿔야 할 동기를 더욱 구체적이고 개인적으로 만들어낼 필요가 있겠고, 그게 안 보이는 사람에게 굳이 잔소리나 조언을 해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란 말도 덧붙일 수 있겠다. 그러니 우리 모두 꼰대의 소리를 멈추고, 내 동기나 잘 살핍시다.
내일도 나는 4시쯤 기상할 것이다. 동기는 충분하다. 아마도 성공할 것이다.
(금:그리고 오늘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