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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Apr 20. 2019

생각의 일기 3주차

2019.4.13. ~ 2019.4.18.

2019.4.13.(토)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

제목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 작가는 책 한 권 분량의 대답을 썼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통 그 자체는 결코 나눌 수도,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다는 것.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주체는 고통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이다. 고통에 잠식된 자는 말 그대로 ‘잠식’ 상태에 빠져 타인과 함께 지을 수 있는 언어의 집을 잃어버린다. 그 때의 비명, 혹은 외침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말이 아니라 ‘소리’가 된다. 이는 타인과 통하지 못한다. 심해지면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이들마저 파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통당하는 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고통을 맞닥뜨린 자신의 상태, 태도, 생각 따위의 것이다. 고통 그 자체를 말하는 것과 고통을 대하는 자신을 말하는 것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읽는 내내 4월 3일의 제주를, 4월 16일의 팽목항을, 5월 18일의 광주를 떠올렸다. 그리고 2016년과 2017년 사이, 극심한 우울 증세로 괴롭던 나 자신을 또한 떠올렸다. 나와 타인의 고통을 그렇게 하나하나 떠올리며 다시 이름을 붙여보게 되는 책이었다. 간혹 했던 말이 또 나오고 또 나와서 읽기에 조금 괴로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2019.4.14.(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박광일

제목이 딱딱하기 이를 데 없어서 당연히 역사서일 줄 알았는데, 여행기였다. 물론 조금 특별한 여행이긴 하다. 중국 어딘가를 끊임없이 떠돌아야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유랑을 좇는 여행, 혹은 답사. 읽으면서 그간의 내 여행을 반성하게 된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 온 장소와 공간에는 아주 풍부한 역사와 이야기가 숨어 있지만, 모든 여행자에게 허락되는 건 결코 아니다. 오로지 공부하는 여행자에게 그 진면모를 드러내는 장소들을 나는 그간 얼마나 그냥 흘려보냈을까.




2019.4.15.(월)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승우

최근의 개인적인 화두는 단연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이다. 나도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내가 쓴 이야기가 한 명이라도 좋으니 누군가를 홀렸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하며 산다. 갑자기 무슨 소설인가, 싶지만 사실 이 욕망은 내 안에 꽤 오래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심해도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다. 쓸 이야기도 없으면서 왜 소설이 쓰고 싶었던 걸까.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문학에 애정이 있는 독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읽은 멋진 소설 같은 걸 나도 써보고 싶다, 는 자연스러운 욕망. 오랜 시간 고요히 잠들어 있던 그 욕망은 최근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다시 발현되기 시작했다. 글감이 될 만한 재료를 메모해서 조금씩 써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작법서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소설가가 직접 소설쓰기에 대해 쓴 책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된 소설가 이승우의 책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제목부터 용기를 준다. 물론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맞지만, 그래도 유명 소설가께서 그렇게 단언해주시니 어쩐지 이제 정말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인증을 받은 기분이다. 그 중에서도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단연 압권이다. “소설을 쓰기 때문에 소설가인 것이 아니고,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이다.”


이 문장에 따르면 나는 이미 소설가이고, 그래서 소설을 쓴다. 그러나 거저 나온 문장은 결코 아니다.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소설가 이승우에 따르면 소설은, ‘그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까지의 그 작가의 삶의 총체’이며, 그 총체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축적해놓은 것이 없으면 나올 것이 없’는 게 당연하고, 소설 작품은 심지어 ‘책상에 앉기 전에 이미 씌여져 있’고, ‘씌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태’ 개념을 연상케 하는 이와 같은 표현은 소설이 작가의 삶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어릴 때의 내가 도무지 쓸 이야기가 없어 소설을 쓰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내면에 침잠해 있었다. 바깥을 직시하지 못했고, 자꾸만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내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의 내면과 외부를 ‘관찰’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소재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은 쓰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좋은 소재가 떠오르면 많은 부분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소재는 시작에 불과했다. 소재를 어떤 이야기의 형태로 만들어낼 것인가는 훨씬 복잡한 문제였다. 좋은 글을 계속 읽고, 나름의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다 보면 뭔가 되겠지. 언젠가는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지. 수없이 스스로의 재능없음을 탓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럴 때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격려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일종의 자기 암시를 걸어 볼 생각이다. 나는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이다.



2019.4.16.(화)

-<눈먼 자들의 국가>

2014년 어느 여름날, 토요일이었다. 나는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엄마, 이모와 함께 서울에 와 있었고, 결혼식 참석 전 아침 엄마와 이모가 미용실에 간 틈을 타 홀로 서촌으로 향했다. 서촌갤러리에서 ‘박예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예슬 학생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17번이었다. 이 전시회를 어떻게 알고 관람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sns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당시 ‘세월호’의 희생자나 유가족 편에 서 있던 언론과 미디어는 많지 않았고, 그런 언론과 미디어에서 희생자의 전시회를 알려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었으나 당시 사건과 정부와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와 이 사회의 피해자 냉대에 큰 충격과 슬픔을 여전히 느끼고 있던 2014년 여름의 나는, 꼭 그 전시회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일은 지하철역에서 나와 서촌갤러리로 걸어가는 동안 일어났다. 당시 관련 시위가 잦았던 광화문 광장과 서촌은 가까웠고, 곳곳이 경찰이었다. 사복 경찰이 유가족 및 시위 참가자들을 사찰한다는 의혹도(현재 정부기관의 ‘유가족 사찰’은 사실로 밝혀졌다.) 심심찮게 들려오던 시점이었다. 더구나 토요일은 집회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요일이었고,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회장소와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경찰에게 가방검사를 당한 사람도 있었다는 글을 sns에서 본 바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경찰들의 행진을 보며 실감했다. 사방이 그들의 무전기 소리였다. 그리고 내 가방에는 노란 리본 뱃지가 달려 있었다. 행선지는 서촌갤러리.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뱃지를 떼야 할까.


아마 결혼식이라는 이벤트가 있지 않았다면 될 대로 되라,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만에 하나 나를 불러 세운 들 무슨 일이 있겠나, 하며 호기롭게 경찰 앞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전시를 보고 미용실로 돌아가 엄마와 이모를 모시고 결혼식장까지 가야 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안전하고 비겁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 어딘가에 있던 노란 리본 뱃지를 떼어내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전시를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다. 이 부끄러움이 오래오래 나를 괴롭힐 것이란 예감만 들었고, 그 예감은 지금 이 순간까지 들어맞고 있다. 당시 정부와 정치권과 언론이 원하는 바가 바로 그런 것이었을 테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조성하여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 그리하여 세월호와, 304명의 희생자와 함께, 진실이 침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세월호 참사 5주기다. 많은 것이 바뀌었고, 여전히 많은 것이 또한 바뀌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들은 여전히 부끄러움에 괴로워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여전히 ‘부끄러운’ 망언을 스스럼없이 배설한다. 전자에 속해 있는 나는, 내 스마트폰에 선명히 자리 잡은 노란 리본을 바라보며 여전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소설가 김애란은 이렇게 썼다.


(...)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그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 ‘바깥’에 서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또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중략) 그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본문 중)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아마 죽을 때까지 세월호 참사 유가족 분들의 심정을 모르고, 모를 것이다. 이것은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과 부끄러움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해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이해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바깥에라도’ 서 있는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얼굴이 빨개져도. 사회학자 엄기호의 말을 빌려 달리 포현하자면, ‘고통의 곁’에, 혹은 ‘고통의 곁’의 곁에 서는 것. 고통을 느끼는 자들이 이제 괜찮다고, 됐다고 할 때까지.




2019.4.17.(수)

-<여행의 이유>, 김영하

하루에 한 챕터씩.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도리어 아껴 읽고 싶어진다. 책이 출간된 오늘 1장을 읽는다. 이 책은 작가가 이미 밝혔듯이 여행기라기보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경험을 녹여낸 사유를 정리한 산문에 가깝다. 작가는 자신의 여행에 대한 기억을 종횡무진 누비며 이렇게 말한다. 오래 기억되고 때때로 여행자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기까지 하는 여행은, 기대했던 바를 만나지 못했지만 전혀 뜻밖의 것을 손에 쥐고 어리둥절해하며 돌아가는 여행이라고. 많은 여행자들이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가는 여행지에서의 일정에 모종의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불안감의 본격적인 시작점은 어디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주 잘 짜여진 코스대로, 시간을 규모있게 사용하는 소풍과 수학여행을 떠난다. 선생님들은 마치 당초의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아주 큰 일이 날 것처럼 겁을 주었다. 어쩌면 학교라는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것인지 모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느슨한 여행의 매력인지도.



2019.4.18.(목)

-<생일>(2019)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바쁘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고, 하여간 여러 가지 내 삶에 당면한 문제들을 허덕이며 해결하느라 한동안 극장을 전혀 가지 못했었다. 그래도 <생일>은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다행히 박스오피스 성적이 좋아서 아직도 극장에 있다. 4월 16일 하고도 이틀 지난 오늘 <생일>을 보았다. 혹자는 세월호 참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모든 시도를 배격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는 그런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말도 안 되게 조악하고 섬세하지 못한 극화 시도가 영화계에서 이미 있기도 했으니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때 목숨을 잃은 故 유예은 양의 아버지 유경근 님께서 sns에 쓰신 글을 보며 마음 놓고 <생일>을 응원해도 좋겠구나, 생각했다.


영화 <생일>.
많이 봐주세요. 힘드시겠지만 직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가족들이 불쌍하구나를 넘어 세월호참사가 왜 304개의 사건인지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격려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할 테니 떳떳하게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 세상을 바꾸라고.

(출처 : https://twitter.com/snk21c/status/1108233706404114432)


예매를 하는 순간까지도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는데, 극장에 도착해 티켓을 발권하고 상영관으로 향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감당이 될까. 휴지라도 좀 챙겨 올걸. 다음 날 괜찮을까. 언젠가부터 많이 운 날은 다음 날 눈이 빠질 듯 아파서, 요즘은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한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며 의외로 가장 불편한 부분 중 하나다. 원래 개봉하면 곧장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돌고 돌아 극장으로 온 게 실은 바빠서가 아니라 내면의 이런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갈수록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나눠 갖는 게 버거워진다. 그래도 <생일>은 피해가지 않았다. 아니,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영화도 고통을 피해가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로 부서진 개인과 가정을 정직한 시각으로 조망한다. 고통을 미화하거나 부러 축소하지 않으려는 시도, 그러면서도 이야기와 인물들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조율한 흔적이 엿보였다. 남겨진 자들의 마음이 관객들의 마음에 무리 없이 와 닿아, 관객들을 어김없이 울린다. 그러나 한참을 울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며 다시 아득함을 느꼈다. 그것이 304개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 뒤에는 303개의 사건이 더 있다. 아니, 304개의 사건이 실존한다. 벌겋게 부은 눈으로 집에 돌아가니 서재에 꽂혀 있던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눈에 들어왔다. 책 출간 당시 리뷰단으로 미리 가제본된 이 책을 읽어보기도 했었다. 그 때도 제대로 읽기 힘들어서 몇 번을 덮었다 다시 읽었다를 반복했다. 영화보다 훨씬 직접적일 수밖에 없는 기록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육성 기록이기 때문이다. 눈이 아파서 지금은 읽지 못하겠지만 일부러 가까운 곳에 꺼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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