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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Oct 18. 2024

아침

|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입안을 헹구고, 따뜻한 물을 끓여 내 책상으로 가져간다. 크게 기지개를 켤 때도 있지만, 마음이 바쁠 때는 그것조차 잊는다. 대신 책상 위에 있던 접이식 독서대를 펼쳐 손에 잡히는 대로 읽을 책을 한 권 골라 올려둔다. 20분 타이머를 맞춰두고 독서를 시작한다. 책이 아주 잘 읽히는 날도 있지만 더러는 읽히지 않는다. 멍한 채로 글자만 넘겨보다 조금 정신을 차렸을 때 20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책을 더 읽고 싶지만 고양이 밥을 주어야 할 시간이다. 남은 책은 오후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그 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 아침은 도서관에 가기 가장 좋은 때이다. 아침의 도서관은 늘 고요한 활기로 가득하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다들 무언가를 읽거나 쓰고 있다. 보고 있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약간의 기침 소리에도 민감해지는 사람들의 눈초리에 평소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조용히 움직이게 된다. 아침에 읽히지 않던 책도 도서관에서는 가능하다. 가만히 의자 등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도 도서관에서는 묵상의 시간이 된다. 아침에 멍 때리기 가장 안락한 장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도서관일 것이다.


| 대부분의 도서관은 우리 집과 거리가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무조건 '도세권'으로 이사를 가리라 마음먹은 시절도 있었다. 카페 작업이 일상화되면서 그런 마음은 잊고 있었다. 다시 찾아간 도서관에서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찾았다. 이를테면 정적 아닌 정적. 우연히 내 눈에 띈 운명 같은 책들. 길에서 주운 지폐 같은 문장들(물론 길에서 주운 돈이 내 돈이 아니듯 이 문장도 내 것은 아니다). 게다가 모든 것이 무료이다. 물도 책도 공간도. 그 모두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나서야만 한다.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만 한다.


| 소속이 없거나 일이 없을 때,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듯 도서관으로 향하던 시기가 있었다. 국립 도서관에 가면 어쩌다 가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지인을 만날 때도 있었다. 그때 서로를 보며 우리는 암묵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했다. 어색한 웃음과 안부. 그리고 약간 더 여유 있는 쪽이 밥을 사기도 하고. 예전보다 도서관이 많아져서 다행이다. 다들 각자의 아침에서 안녕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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