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날벌레 12화

12. 시너지

소설 <날벌레> 12회

by 김영주

배우는 새로운 작품에 캐스팅됐고, 주가는 더욱 높아졌다.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투자자가 몰렸고, 그녀가 광고한 상품은 물론 잠시 착용한 의류는 전례 없는 품귀 현상을 겪었다.


처음 그녀의 1인 소속사로 시작한 리나 엔터테인먼트는 대형 기획사와 손을 잡고 확장 중이었다.


대표인 명주는 새로운 매니저를 고용해 배우에게 배치하고 새로운 신입 배우를 발굴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명주와의 생활에서 독립한 배우는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수많은 행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깊은 잠을 자고 깨어난 배우는 곧바로 개인 SNS에 접속했다. 물론 이것 역시 소속사에서 만들어주고 관리 중인 계정이었다.


앱을 열자마자 밤새 팬들이 보낸 셀 수도 없이 많은 DM과 댓글 알림이 표시되어 있었고, 알림은 실시간으로 숫자를 추가하고 있었다. 배우는 그것들을 보며 안정감을 느꼈다. 길어진 댓글을 스크롤하던 중 한 팬이 올린 메시지 하나에 시선이 꽂혔다.


언니, 이거 언니 아니죠?

제2의 화진 등장하나? 불 속의 여자 후속작, 신인배우….


메시지와 연결된 링크 기사로 이동하자 배우와 유사할 만큼 마른 몸의 낯선 여자 사진이 먼저 보였다.


그녀 역시 배우처럼 흔히 볼 수 없는 가녀린 실루엣과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배우가 최근에 바꾼 뱅 헤어와 같은 헤어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얼핏 보면 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비슷해 보였다.


배우는 처음에 팬 중 누군가 자신의 사진으로 장난을 친 줄 알았다. 어이없는 웃음으로 무시하려고 했으나 기사 속 게재된 사진의 출처가 자신의 소속사인 리나 엔터테인먼트인 것을 알아보자 사고가 정지되었다.


잠시 멍하게 화면을 보던 배우는 곧바로 명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보다 몇 번의 신호음이 더 가고 나서야 명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얘 뭐야?”


배우는 그 순간에도 모든 게 편집된 가짜 기사이길 기대하고 있었지만, 명주는 긴 한숨만 내뱉었을 뿐 대답이 없었다.


“무슨 의도냐고.”

“아직 신인이야. 잠깐이니까 신경 꺼.”

“아니, 그게 아니라... 누가 봐도 이건 너무...”

“네가 봐도 닮았다고 생각해?”


배우는 묘한 웃음기가 섞인 명주의 말투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곧바로 대응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신인배우의 사진을 본 순간부터 잊고 있던 불안의 기미를 느꼈다. 그녀는 대답 없이 명주의 말을 기다렸다.


“성공할수록 아류는 피할 수 없어. 그걸 우리가 먼저 해버린 것뿐이고.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래. 난 좀 실망인데? 후배 좀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배우는 인생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고, 앞으로도 충분한 기회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 끔찍한 날벌레 취식 장면이 공개되었음에도 신비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그녀를 따라 다양한 날벌레를 채집해 먹는 챌린지가 퍼지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도 상당했다. 배우는 다시 한번 낯선 신인 배우의 사진을 보았다.


“얘는 어디서 데려온 건데.”

“설마, 너도 못 알아보는 거야? 재나 기억 안 나?”

“재나?”

“그래. 네 동생 재나.”


배우는 너무 놀라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놓칠 뻔했다.


이제야 떠올랐다. 리나의 출세작인 드라마 ‘비혈연 모녀’에는 배다른 여동생 역할인 재나도 있었다.


리나의 인기에 가려져 그런 배역이 있었나 싶게 존재감 없던 또 다른 아역 배우.

억지로 이해되지도 않는 대사를 외우던 자신과 달리 상대역의 대사와 지문까지 모두 외우고 있었던 총명했던 아이. 그러나 귀염성이라곤 전혀 없어 모두에게 외면받던 아이.


리나였던 배우는 재나의 본명을 끝까지 몰랐다. 물어볼 생각도 없었고, 이후에는 볼 일도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걸까.


배우는 답을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겪은 일이었다. 할 말을 잃은 배우에게 명주는 언제나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서로 시너지가 될 거야. 넌 가만있으면 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소설 <날벌레>는 매일 연재됩니다.

구독, 라이킷, 독자님의 응원 댓글은 다음 편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이전 11화11.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