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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날벌레 11화

11. 눈

소설 <날벌레> 11회

by 김영주

배우의 병실 앞에는 많은 취재진이 대기 중이었다.


아름다운 여자 배우가 웬 날벌레를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장면은 이틀 만에 백만 조회수를 넘기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어느 곤충 전문가는 그녀의 거식증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이 아직 그 어디에서도 발견된 이력이 없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종이라고 판별했고, 식용할 수 있는 종이라면 연구 가치가 있다며 논점을 흐렸다.


미스터리와 음모론을 소재로 하는 한 유튜버는 배우가 외계인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고, 어느 영상 분석 전문가는 등장한 날벌레가 AI로 정밀하게 제작된 연출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거기에 동조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었으나 이 모든 것이 개봉될 영화 ‘불 속의 여자’를 홍보하기 위한 빌드업이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여론이 가장 많은 호응을 얻으며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이에 감독은 개인 SNS에 이번 라이브는 배우 측과 전혀 논의된 바 없으며 영화 홍보와는 일말의 관련도 없다는 억울한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고, 그럴수록 네티즌들은 감독의 해명조차 연출의 연결선상이라고 의심하며 의혹을 더욱 증폭했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마저 이 모든 것이 회사와 영화제작사의 기획이고, 그것은 소품이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오로지 배우와 명주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배우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명주는 해명할 생각이 아직 없었다.


의료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배우의 영양 상태에는 문제가 전혀 없으며 지금 현재 상태는 코마가 아닌 과로로 인한 수면일 뿐이라는 소견을 전했다. 그러나 배우는 일주일이 넘게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명주는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명주는 배우가 수차례 만들어낸 소위 ‘어그로’가 곧 스타성이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에 대해서도 어떠한 해명도 없이 배우의 안정을 위해 당분간 어떤 언론과도 접촉하지 않겠다는 의사만을 소속사 SNS에 짧게 밝혔다.


배우가 잠든 사이, 소속사는 구토와 날벌레 취식 등의 장면이 유해하고 역겹다는 이유로 많은 구독자의 항의를 받아 해당 라이브 녹화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지만, 복제된 영상들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수없이 복제된 영상들은 여전히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 중이었다. 그녀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이 높아진 덕분에 첫 주연작인 영화 ‘불 속의 여자’는 개봉 첫날부터 순행하며 손익 분기점을 훌쩍 뛰어넘는 올해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비호감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던 배우의 이미지는 연기력까지 뛰어난 개성파 배우로 각인되었다.


배우가 깨어났을 때, 옆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전 연인 시호였다. 배우는 아직 자신이 꿈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호가 울컥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전과 달리 배우의 손은 불에 달군 것처럼 뜨겁게 데워져 있었다. 그는 내심 놀랐지만,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고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 나 알아보겠어?"

"네가 왜 여기 있어?"


배우는 시호의 손을 맥없게 뿌리쳤다.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아직 온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배우의 냉정한 반응에 시호는 살짝 한발 물러섰다.


"오해야. 난 그냥 너무 놀라서. 그러니까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 줄 것 같아서. 물론 네가 걱정되는 게 우선이었어. 그래서 명주 누나한테 상의하려고 보낸 것뿐이야.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다고……."


시호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다가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며 배우의 침대 앞에 앉았다.


배우는 그런 시호의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당혹스러웠다. 배우가 알던 시호는 면도칼을 가지고 달려드는 사생팬 앞에서도 차분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했다.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모습도 처음이다.


배우는 늘 광고 포스터 속의 박제된 미소처럼 친절한 얼굴로 자신을 대하던 시호와 욕실에서 자신과 거리를 두고 경멸에 가까운 표정으로 서 있던 시호를 동시에 떠올렸다.


어떤 게 진심일까.


배우는 딱딱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명주 언니가 그걸 퍼뜨렸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도 처음엔 이해 못 했어. 하지만 난 분명 아니라고. 그럼, 누구겠어? 난 정말 누나한테만 그걸 보여줬다고."

"언니는 어디 있어?"

"먼저 우리 둘이 해결할 일이 있잖아. 헤어지자는 거, 네 생각 아니지?”


배우는 시호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이전에도 똑같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그토록 두려워하던 애정 신을 촬영했을 때. 극 중의 시호도 똑같이 간절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눈물을 흘렸었다.


하지만 화진은 무참히 그를 죽였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잔혹하게 불태워 죽였다. 그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죽었을 것이다. 그들의 시나리오에 다른 선택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배우는 침대 옆 선반 위, 명주의 것으로 보이는 라이터를 노려보다 이내 낮게 내뱉었다.


“나가.”


어느새 배우의 말속에는 화진의 어조가 실려 있었다. 더 있다가는 자신도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차가운 말투에 시호의 간절했던 표정이 곧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비웃듯이 배우를 보며 말했다.

“나만큼 널 이해할 사람은 없어. 난…. 네가 어디서 뭘 하든 다 알 수 있다고!”

“무슨 뜻이야?”


시호는 대답이 없었다. 순간 배우는 온 피부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떠올려보면, 자신을 욕실에서 발견한 시호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을 찍은 것은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병실 벽에 붙은 CCTV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은둔 시절 자신을 몰래 촬영한 영상도 떠올랐다. 그녀는 언제든 누구나 자신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았을까.


카메라는 비추는 곳만 비춘다. 영상은 끊임없이 재편집된다. 다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본 만큼 믿는다.


시호가 본 자신은 어디까지였을까. 다시 보자 그토록 사랑했다고 믿었던 연인은 낯설게 보이기만 했다.


내가 본 시호는 어디까지일까.


배우는 침대맡에 있던 호출 벨을 눌렀다. 다시 구토가 시작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설 <날벌레>는 매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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