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날벌레> 10회
* 이번 회에는 극의 흐름 상 다소 불쾌한 장면 묘사가 포함되었습니다. 읽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명주의 예상과 달리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그것을 삼키는 장면에 대한 진실 여부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영상을 1초 단위로 정밀히 쪼개어 분석한 영상부터 모든 것이 AI로 제작된 장면이라는 의견까지. 논란이 가속화될수록 배우에 관한 관심과 인지도는 더욱 상승하고 있었고, 명주는 계획을 바꿔 해명 영상 대신 한 번도 매체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먹방’을 하자고 그녀를 설득했다.
사실 명주는 그녀가 거식증일 거로 생각하고 있었고, 정말 ‘날벌레’ 따위를 먹었는지보다는 배우가 그동안 자신 앞에서는 왜 단 한 번도 먹지 않고 버틴 것인지 궁금했다. 의료진은 그녀가 쓰러진 사유가 단순 쇼크일 뿐, 영양 상태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배우는 왜 자신 앞에서는 절대 먹지 않으려고 했을까.
복귀 전 그녀에게 강요한 무리한 다이어트가 트라우마가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명주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많아진 배우에 대한 배신감으로 현장 스태프를 가장해 즉흥적으로 올린 익명의 댓글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 기정사실화되어 있었고, 거기에 따른 고통은 오로지 배우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명주는 그런 배우를 도울 수 있는 것도 오직 자신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10초 후면 배우의 라이브 방송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채팅창에는 이미 수십만 명의 접속자 수가 떠 있었다. 명주는 흥분된 얼굴로 카메라 앞 테이블에 앉아 대기 중인 배우를 보았다.
그녀 앞에는 과거 리나가 좋아한 햄버거들이 커다란 접시 가득 쌓여 있었다. 음식은 모두 오늘 라이브 방송의 흥행을 예견한 신규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협찬이었다.
오늘의 ‘먹방’이 배우에게 어떤 파급력을 줄 수 있을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배우가 제대로 먹기만 한다면 각종 광고 및 예능 프로그램 캐스팅은 시간문제라는 기대도 무시할 수 없었다.
라이브 동시 접속 수는 이제 수백만 명으로 단위가 달라지고 있었다. 초읽기가 끝나자, 명주가 미리 지시한 대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기초 메이크업조차 하지 않은 맨얼굴에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다.
배우는 떨리는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채팅 확인을 위한 정면의 카메라 액정 속에는 오로지 혼자인 자신이 있었지만, 글씨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할 속도로 개미 떼처럼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글을 보자 미친 듯이 심장이 울렁거렸다.
배우는 명주와 약속한 대로 정중하게 묵례한 후 앞에 쌓인 햄버거들을 바라보았다.
한때, '리나'가 가장 사랑한 음식이었지만 먹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그 맛도 흐릿한 기억 속 이미지로만 남아있었다.
과거에 그녀의 부모는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를 섭외하여 리나의 캐릭터가 그려진 햄버거 브랜드까지 창업했지만, 사실 그녀가 가장 좋아한 것은 엄마가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간단히 만든, 양배추샐러드에 햄 몇 조각과 치즈 한 장, 케첩과 마요네즈만 뿌려진 소박하고 단출한 햄버거였다.
그녀는 이국적인 디자인의 포장지에 싸인 커다란 수제버거를 낯선 듯이 바라보았다. 명주는 먹는 것도 연기라고 생각하라고 했지만, 이 거대한 것을 정말 한입에 먹을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 정말 먹을 수 있어?
- 그럼 먹어 봐.
- 증명해 보라고.
- 먹어.
- 먹어. 먹어.
- 먹어. 먹어. 먹어!!
-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먹어!!!!!!!!!
사람들의 채팅은 어느새 하나의 목소리로 뭉쳐져 그녀에게 먹을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지금도 날벌레를 삼킨 포만감은 남아있어서 뭔가를 속에 집어넣을 자리는 없었지만, 배우는 명주의 조언을 떠올리며 완벽하게 먹는 연기를 펼치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배우가 드디어 햄버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전기가 오른 듯 손끝에 저릿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개중에 가장 토핑이 적게 들어있는 납작한 치즈 버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명주의 조마조마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은 절대 NG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보았다.
그 사이 채팅 창은 더 많은 ‘먹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되도록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천천히 햄버거의 겉 포장을 벗겨냈다. 이제 입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었다.
그녀는 카메라 밖에 서 있던 명주를 다시 보았다. 명주 역시 그녀를 향해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먹어!
배우는 다시 무대 위에 올라갔던, 그것을 처음 본 그때를 떠올렸다.
사람들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복귀했던 그때, 그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배우는 결심한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덥석, 과감히 햄버거 한 입을 크게 베어 물었다.
약 3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그 짧은 찰나에도 사람들의 댓글은 끝없이 다음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배우는 여전히 씹고 있지 않았다.
당황한 명주가 배우를 향해 얼른 씹으라는 손짓을 했다. 채팅 창의 무리도 그녀를 향해 씹으라고 고함치고 있었다.
배우는 다시 한번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그리고 또다시 강박적으로 햄버거를 베어 물고 또 베어 물고, 또 베어 물어서 입안을 가득 채웠다.
도저히 씹어 삼킬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3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이번에는 다양한 반응들이 올라왔다. 이 모든 것이 쇼라는 반응과 아직도 씹지 않았다며 제발 씹으라는 반응과 그녀가 거식증이 맞는다는 반응 모두가 뒤섞여 이제는 어떤 반응이 대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제 더는 베어 물 공간이 남아있지 않자 그녀는 결심한 듯 씹으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역류 때문에 입안의 모든 것을 그대로 내뱉고 말았다.
그간 먹은 것이라고는 날벌레 3마리가 전부인데도 미친 듯한 역류를 멈추지 못하고 괴롭게 신음하며 미친 듯이 토사물을 분사하는 배우의 구토 장면이 그대로 실시간 중계되고 있었다.
댓글 창이 터져 나갈 듯이 사람들의 항의와 우려가 빗발치자, 명주와 몇몇 직원들은 그녀를 말리기 위해, 화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누구도 그녀의 계속되는 구토를 막을 수 없었다. 직원들은 역겨운 토사물이 자신들에게 튀자,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고, 명주만이 달려가 그녀를 붙잡고 원망하듯 소리쳤다.
“괜찮다고 했잖아!! 괜찮다고!”
그때, 배우는 아득한 정신 속에 날아온 그것을 보았다.
이번에 나타난 그것은 이전보다 2배는 커져 있었고, 배우는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멈추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배우가 애타게 손을 뻗자, 그것은 알아서 그녀의 손바닥 위로 날아와 사뿐히 앉았다. 배우는 다음 구토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그것의 머리부터 한입 베어 물었다. 이어 남은 몸통을 입안으로 욱여넣고 그 모든 것을 곧바로 씹어 단숨에 삼켰다. 끔찍했던 구토가 드디어 멎었다.
배우는 입가에 흐르는 오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만족스럽게 명주를 돌아보았다.
명주는 충격으로 굳어져 그녀를 보고 있었다. 배우는 어쩐지 속이 후련해졌다. 지켜보던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배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메라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
배우가 환한 미소로 손 인사를 하고 카메라를 껐다.
이제 연기는 필요 없으니까.
뒤에서 명주의 절규에 가까운 흐느낌이 들려왔지만 배우는 당장 너무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 <날벌레>는 매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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