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시대정신이 된 한강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열흘간의 계엄령 후폭풍을 건너며 한강은 시대정신이 돼 버렸다.
그 기간 그가 던진 질문을 오래 생각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나보다. 탄핵 표결 직전, 그 중요한 순간에 야당 원내 대표가 국회에서 한 연설이 그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 밤,
담을 넘어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사람들도, 의자와 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세운 사람들도, 국회 앞으로 뛰쳐나간 사람들 모두가 1980년 그날 무력하게 죽어간 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
”노예의 순리는 필요 없다. 나도 나의 죽음을, 나의 죽음의 의미를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햇빛 아래 재가 되어 사라지거나, 끝없는 밤하늘 아래 목이 잘리거나.“
계엄령이 있기 전에 읽은 정보라 작가의 <밤이 오면 우리는>의 마지막 문장도 오래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죽음을 선택한다는 말의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국회 앞 계단에 앉아 한기가 뼛속까지 스미는 것을 느끼면서, 적대적으로 쏘아보는 경찰들의 눈을 마주보면서, 나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만 선택했더니 추해졌기 때문이다.
삶만 선택한다는 것.
돈 2만 원에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 반대를 외치는 것. 15만 원에 아기를 태운 유모차까지 끌고 오는 것. 1980년에 그런 일은 벌어진 적 없다고 하는 것. 수천, 수만을 죽인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것.
이 사람들 중 지금까지 배를 곯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지금 내 주머니에 돈 몇 만 원을 더 쑤셔넣기 위해, 가난하고 비루한 내 발 밑에도 일군의 사람들-전라도 사람, 장애인, 소수자들-을 두기 위해, 혹은 굶주리던 시절 나는 안 죽이고 저들을 죽인 것에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대량 살상을 시도한 자를 위해 기도하고 눈물을 흘린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소스라치게게 추하다. 그런 삶에 부끄러움도, 연민도 없다.
*
44년 전에 죽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이끌어준 덕에 한 고비를 넘겼다.
방을 청소하고 몸을 단정히 한 후 밖으로 나와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는 하루를 관찰했다.
내 앞으로 꺄르르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왜 최승자 시인이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닌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산다는 건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평범하고 새로운 것들이 자꾸만 수정체로 들어와 책은 읽지 못했다. 대신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먹고 싶어서 알배추와 마늘과 버섯을 샀다.
마늘은 굽고 알배추는 쌈장에 찍어먹으면서 어떤 죽음을 선택할지 생각해야지.
Ps.
보험 가입은 거절당했다. 내 혈압과 체중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갑자기 내 죽음이 극도로 사소해지는 것 같았다. 평범하지 않은 혈압과 지극히 평범한 죽음.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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