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공모전을 포기했더니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지리산 이야기를 좀 더 할 수 있게 됐다.
오늘은 나 같은 등산 초보자들을 위해 지리산 1박 2일 산행 시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 알려드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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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무식하여 산행은 싼 줄 알았다. 비싸면 빨갱이들이 어떻게 지리산으로 들어갔겠어, 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노고단 대피소 하루 숙박비는 12,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뭐 이렇게 싸? 하면서 냉큼 예약했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같은 초보자가 노고단을 당일로 갈 수도 없을 것 같고, 산행 후엔 뜨끈하게 샤워도 하고 싶을 테니 앞뒤로 숙박을 하루씩 더 붙였다.
게스트하우스 2박, 65,000원.
교통은 숙소 근처에 있는 시외터미널을 이용하기로 했다. 왕복 버스 요금, 64,000원.
숙박과 교통, 합쳐서 총 141,000원.
식사는 기껏해야 비빔밥이나 국밥을 먹을 테니 이 정도면 전체 경비를 20만 원 선에서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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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3박4일 동안 정확하게 20만천 원을 썼다. 산에선 가져간 전투식량과 편의점에서 사 간 김밥을 먹었더니 식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지리산에선 산채 비빕밥도 먹고, 화개장터에선 국밥도 먹고, 섬진강 카페에선 커피도 마시고 화엄사에서 보시도 했는데 이만하면 굉장히 합리적인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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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고지서를 받고서야 내 계산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금액이 두 배는 더 많이 나왔다. 등산용품 때문이었다.
등산을 너무 오랜만에 한 탓에 등산화부터 바지, 플리스, 침낭, 스틱까지 다 사야 했는데, 인터넷에서 최저가로 구매하고 자잘한 것들은 전부 다이소에서 마련했는데도 20만 원이나 나왔다.
그나마도 등산용품의 왕, 고어 재킷을 사지 않았기에 가능한 액수였다. 십 년 전에 산 봄 재킷과 스키 점퍼를 안 버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등산용품을 갖추는 데만 백만 원 가까이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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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쩐지 속은 듯한 기분이었다. 대피소 숙박비가 만이천 원이라 시작한 산행이었는데, 국밥에 비빔밥 좀 먹었기로서니 40만 원이 넘게 나오다니...
대체 50년 전 빨갱이들은 어떻게 고무신에 적삼만 입고 지리산에서 겨울을 난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날 산행 중에 마주친 스님도 목화솜으로 누빈 승복에 나무 지팡이 하나로 그 험한 돌길을 짚으면서 쾌속 질주를 하고 계셨다.
역시 도사가 되면 고어고 뭐고 다 필요 없긴 하다.
그러나 초행자가 3월에, 1박 2일 산행을 가는 거라면, 빨갱이와 스님을 생각하며 면 쪼가리를 입고 갔다간 땀 차서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반드시 등산용품을 제대로 준비하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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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은,
등산 재킷이 있다면 최소 20만 원, 없다면 50만 원.
체류비용은 3박4일 최소 2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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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폭싹 속았수다.
겨울엔 산행가지 마요. 너무 비싸.
PS.
나에게 스틱 왜 하나냐고 뭐라 해주신 작가님, 그리고 스패츠와 아이젠 꼭 챙겨가라고 잔소리해주신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대들이 내 모진 목숨을 또 붙여주었습니다.
PPS.
그리고 산행에 책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3박 4일 내내 피곤합니다. 뭔 책이야.
+술도 절대 안 됨. (정지아 작가는 도사라 괜찮은 거고, 일반인은 실족사합니다)
PPPS.
노고단에서 '노고'의 뜻이 '할머니'라고 한다. 어쨌든 노파는 노고단에 가야 할 운명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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