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어느 날, 예고 없던 어느 날.
문제는 나였다.
다시 하세요.
8 X 6 은.
9단 외워오세요.
아이들은 계산기가 아니라 외치던 나였다.
수학에선 산수가 아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대화를 할 땐 눈을 마주치고 진심으로 어루만져야 한다고. 참스승을 꿈꿨더랬다, 작년까지만 해도.
통근은 한 시간 반.
업무는 일이 아닌 잡무로 변해가고, 아이들을 봐야 할 눈은, 모니터가 뚫릴 기세로 화면만을 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2학년들은 여기저기 음식을 흘리고, 요구르트를 들고 내게 달려온다. 서른 개의 요구르트 껍질을 까다 보면, 결국 예비 종이 치고 나서야 숟가락을 들고 도둑밥을 먹곤 했다.
학부모는 늘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신규라서 뭘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같은 소리로 훈계를 하려 들었고, 교사를 돌보지 않는 교육현장에서 나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갔다.
내게 너무 쉬워진 구구단 따위,
아이들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다.
대뇌를 거치지 않고도 8단, 그까짓 거 대충 끄덕일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구구단을 외우는 시간은 밀린 잡무를 처리할 수 있어
내겐 차라리 휴식 같은 쉼표였다.
더 이상, 교사인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 모습이, 전혀 좋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8 X 8을 답하려고 미간을 잔뜩 찡그리던 2학년, S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든 생각해내려는, 오늘 새로 들여온 지식을 열심히 꺼내어보려는 그 얼굴을 보고선 깨달았다.
이 아이는,
내일이면 9단을 떼고 다음 계절이면 나눗셈을 배우겠구나.
내가 지금 멈춰있구나. 아니, 어쩌면 뒤로 가고 있구나.
언제까지,
지금 알고 있는 그 알량한 것들을 꺼내어만 살 텐가.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
좀 더 떳떳하게 가르치고 배우고 싶다, 아이들과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매너리즘과 업무강도는 핑계일 뿐,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던 스승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의 괴리가 날 지치고 병들게 했다.
문제는 결국 나였다.
행동을 해야만 했다. 꿈을 가르치려면 내가,
먼저 꿈을 이뤄야 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 모습을 먼저 만나야 했다.
그렇게 예고 없는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가, 472일의 첫날이 점점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