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른흐트 씨의 눈빛은 위험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랄까. 아니, 그것은 어쩌면 냄새와도 같다. 처음 맡는 냄새인데도 분명 위험하게 느껴지는 냄새가 있다. 나는 그 냄새를 베르템베르그 국도를 지나가다가 맡은 적이 있다. 너무도 이상한 충동이었다. 나는 차를 멈추고 그 냄새가 무엇인지 찾았다. 그 냄새는 숲에서부터 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속이 미식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곧바로 차로 달려가 운전대를 잡고 엑셀을 발랐다.
문득 이제는 안전하다고 느껴졌을 때, 관자놀이에는 땀이 흥건했다.
바텐더 믹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아마도 사슴의 시체가 썩는 냄새였을 거라며 나를 놀렸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은 호기심을 동반한다. 모든 위험이 반드시 치명적은 아니기에, 우리는 그 달콤한 유혹의 냄새를 이겨내지 못한다. 어느 순간 호기심은 위험을 압도한다. 눈앞에 살랑거리는 실마리가 다른 어떤 충고나 경험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위험한 눈빛이었다.
분명히 가발을 쓰고 있었죠,
믹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몰랐어, 나는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믹은 말없이 잔을 닦고 있었다. 그러나 믹은 얼굴에 떠오르는 흥미로운 웃음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었다.
오, 대단한 가발이네요. 최고의 현대 미술감정가도 알아보지 못하는 가발이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 말이 스스로도 변명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는 입을 닫고 말았다. 빌어먹을,입술에 닿는 스카치는 빌어먹게도 매운 것이었다.
“…씨, 아니십니까?”
지난 금요일이었다. 나는 반쯤, 취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컴컴한 바의 불빛 속에 중키의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며 웃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인상.그 얼굴 그대로 스케치한다 해도 경찰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할 몽타주가 될 것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그 웃음이었다.
광대 아래로 지나치게 당겨 올라간 주름. 긴장한 근육. 어딘가 지어낸 듯한 미소. 핀으로 찔러놓은 나비처럼.
아, 예.
나는 웃으면서 그 손을 맞잡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안심할 만큼 따뜻한 손이었다.
“저는 에른흐트 크뢰거입니다. ”
그러시겠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그림 좀 한 번 부탁드리려는데…….”
그가 탁자 밑에서 내민 것은 30호쯤 되는 캔버스였다. 어느새 믹이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도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아시겠지만, 제가 술을 마셔서, 공식적인 감정은 아니라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럼요.”
그도 마주 웃었다. 입술 사이로 드러난 뚜렷하게 하얀 이빨, 그리고.
눈빛. 위험한 눈빛.
문득 이 그림이 그의 중요한 어떤 사실과 관련된 그림이겠구나, 싶은 짐작이 들었다. 호기심이 들었다.
종종 현대 미술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말을 건넨다. 어린 아이가 그린 그림과 무엇이 다르냐고, 그들은 말한다. 유명한 화가가 몇 번 붓을 휘두른 것을 몇 십억 씩 주고 사는 것을, 그들은 조롱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한다.
그런 내용에 대해 몇 번 기고문을 올린 것이 내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물론, 가장 큰 이벤트는 TV쇼였다. 현대 화가가 그린 그림들 사이에서 아마추어의 그림을 고르는 종류의 그런. 진행자의 눈빛에는 막연한 기대가 걸려있었다. 틀리겠지, 당연히 틀릴 거야, 나는 너를 위로하겠지만, 결국 너는 너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 듯한.
다행히도 내가 고른 것은 답이었다. 나는 이런, 이런, 그리고 또 이 부분에서 미숙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머를 섞었고, 최대한 자부심이나 자만심이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말을 골랐다. 내 유머보다도, 어쩌면 그런 면이 신선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유명해졌고,
그래서,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기 시작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시 에른흐트 씨가 보여준 그림으로 돌아가자면,
글쎄,
그 그림은 뚜렷한 인상이 없는 그림, 이었다. 녹색으로 표현한 강물, 연둣빛 풀밭.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보일 법한, 그런 따뜻한 주말 오후의 강변 모습. 나는 이러저러한 미사여구를 붙여 그림을 칭찬했다. 화기애애한 덕담. 미소. 겸손한 손짓. 아, 이 사람이 그린 것이 틀림없군. 평범한 아마추어인데 말야. 아까 본 눈빛은 뭐였을까, 그럼. 어쩌면 취기에서 비롯한, 헛것이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럼 만일 이 그림을 판다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아, 저 것.
에른흐트 씨의 눈에 다시 위험한 빛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진짜였군.
문득 초조함이 일었다.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빌어먹게도, 특징이 없는 그림이었다. 두루뭉술한 칭찬이 전부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혹평도 호평도 내릴 수 없는, 그저 그런 그림. 자세히 보니, 붓질은 아마추어가 아닌 듯 보인다만. 그게 전부였다.
글쎄요, 저라면 이 돈에 유로를 쓰진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유로를 내라고 선동할 수도 없겠군요.
말하고야 말았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탁자 밑의 권총? 아니면 품 속에서 나오는 칼? 그러나 희한하게도 에른흐트 씨는 담담했다.
만일 저와 이 친구에게 술 한 잔을 내신다면, 다시 한 번 감정가를 생각해보죠.
웃음소리.
다시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두루뭉술해졌다. 어느 순간 에른흐트 씨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그에게 다시 한 번 위로를 전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소질이 보이는 그림이라고. 소질. 소질이라.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니 나도 그의 뒷모습에서 어색함을 느꼈던 것 같았다 그래, 그의 머리는 가발이 분명했다. 그러나 단순한 가발과는 달랐다. 단순히 탈모를 가리기 위한 가발이 아닌, 머리통 전체를 덮은 듯한. 머리 밑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그런.
무엇을 감추고 있었을까. 더듬이? 흉터? 아니면 또 다른 얼굴? .
그도 아니면 자신의 그 눈빛을 감추기 위해서였을까. 그 눈빛은 무엇이었을까. 분노. 무엇에 대한 분노였을까. 그리고 그는 내게서 무엇을 확인받고자 한 것일까.
2.
아쉽게도 그날의 기억은 그 것이 전부다. 나는 화요일에 인터뷰가 있었고, 수요일에는 스웨덴의 한 여류화가의 전시회에 참가해 인사말을 해야 했다.
“오랜만이네요. 요즘 바쁘셨나봅니다.”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믹의 목소리에서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전시회 얘기와 인터뷰에서 만난 여기자의 손톱 색깔, 따위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그날의 술 안주였다.
그 스웨덴 여자는 어땠는데요? 응, 자기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천재요? 천재란 다 괴짜인가요? 음, 괴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천재가 유전병이라는 말도 있던데. 유전병? 글쎄. 아, 그러고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군. 이십 년 전인가, 믹, 자네도 들어봤으려나? 아니, 그때 자네는 킨더가르텐에 다니고 있었으려나. 에이, 절 도대체 몇 살로 생각하시는 거에요. 그러게. 아지곧 자네는 애송이인걸. 무튼 그 사람 얘기를 하자면. 검색하면 어릴 적 영상은 아직도 나올거야. 여기, 이 사람이야.
믹이 흥미로운 눈으로 핸드폰 화면을 보는 동안, 나는 등에 좁쌀 같이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처음 그를, 아니, 그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것처럼.
한 독일 부부가 난민을, 태어난 지 7개월된 쌍둥이를 입양했다. 아무런 뉴스도 되지 않을 거리였지만, 놀랍게도 온 유럽이 들썩였다. 그‘들’은 샴쌍둥이였다. 서로 머리가 연결된 그‘들’은, 의사들의 걱정과 달리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났다. 별도의 특징이 있다면, 글쎄, 형(형과 동생으로 구분한 것은 내 개인적인 표현이다, 오른쪽이나 왼쪽이라고 구분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쪽이 유달리 형태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일까.
그‘들’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선보인 것은 열다섯 살 때의 일이다. 그때까지 ‘형’은 주로 선화를 그렸다. 그림을 분류하자면, 피카소와 닮았다고 설명해야 할까, 아니다. 전혀 다르다. 피카소의 눈은 분명 범인과 달랐다. 인간은 두 개의 눈동자가 인식하는 주변의 사물을 입체로 조립한다. 그러나 피카소는 다시 그 입체를 조각내어 단면으로 조립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피카소를 뛰어 넘어, 아예 인간이 보는 눈과 달랐다.
한 인간이 두 개의 눈동자로 보는 인지하는 화각은 대략 50도 정도, 좌우 100도가 된다. 수직으로는 상하30도로 총 60도. 인간이 인지하는 세상의 넓이란 바로 이 각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인식하는 세상은 우리보다 ‘넓었다’. 그렇다.
'형'이 그리는 형태는 여태 그 어떤 화가가 화폭에 담은 시선보다도 넓은 것이었다. 사물들은, 때로는 엉켜 있었고 때로는 늘어져 있었다. 정확한 묘사와 데포르메가 뒤엉켰다. '형'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머리통이 하나인 것이 왜소하게까지 보였다. 그'들'은 그'들'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통해, 눈이 둘밖에 없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그림을 그리는 광경을 본 적 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그'들'이 등을 마주 대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3분 남짓한 영상을 볼 수 있다. '형'은 등을 돌리고 앉아 화면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동생'은 말없이 앉아 있다. 아니, 끊임없이 무언가를 속살거리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다. 어쩌면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들의 장애를 담은 영상이 그렇듯, 이 영상에 입힌 음악도 지나치게 발랄하다. 보는 사람도 괴로울 만큼 발랄한 음악, 그리고 '동생'은 '형'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다. 차라리 그 까딱거리는 움직임이, 음악에 맞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3분이라는 시간은 지나치게 짧은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그'들'이 아니게 된 것은 17살 때의 일이었다. 샴쌍둥이의 경우 과한 신진대사나 종종 이질적인 두 신경계의 교란으로 일찍 죽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 전에 분리 수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경계가 합쳐진 이 둘은 살아남기 위해서 어느 한 쪽을 희생해야 했다. 전 유럽이 다시 들썩였다. 쌍둥이들의 부모가 눈물을 글썽이다,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인터뷰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사람들은 토론했다. 답은 분명해보였지만, 비난에 맞서 답을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고, 부모가 내린 선택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신문에는 살아남은 쌍둥이가 건강을 회복했다는 기사와,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교육을 지원하겠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실렸다. 그것이 피카소 이후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았던 그'들', 아니, '그'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3.
문득 믹이 말을 멈췄다.
왜?
“아, 지금 그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아서.”
뭐?
“방금 그 사람이요. 그 샴쌍둥이. 천재라고 했던. 형 쪽이었나?”
나는 다시 영상을 돌려보았다. 그러나 희미한 영상에서 분명한 인상을 찾기란 힘들었다. 누구를 닮았다고 확신하기에는 어려웠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다름아닌 추측에서 비롯한 확신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따위 영상으로는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저번 주에 그 사람, 에른흐트씨를 닮은 것 같아서…….”
뭐? 에른흐트씨를?
미간이 얼얼하도록 머리를 쥐어짜보았지만, 에른흐트씨의 얼굴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구부러진 코를 빼면. 아니, 코가 아니었던가, 눈은, 눈이 파랬던가, 아니, 짙은 갈색이었던가.
모르겠어.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취했어요, 이제 앞으로 딱 한 잔입니다.”
믹이 두 잔을 내밀었다.
취한 건 자네 같은데. 이건 두 잔이라구.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아.
“무슨 소리에요. 하난 제 거에요. 어서 고르기나 하세요.”
아니, 꼭 내가 골라야 하는 거야?선택을 안하거나, 아니면 둘 다 마실 수는 없어?
“전 주정뱅이 상대로는 장사 안합니다. 고르기나 해요. 둘 다 괜찮은 술이니까.”
그럼, 나는 왼쪽 걸로 하지.
“좋아요, 후회 없죠?”
후회라. 글쎄. 모든 선택이 다 그런 법 아니겠나.
나는 내 앞의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