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에 가고 싶다던, 너를 떠올리며
1. 사람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릭이었나, 스미스였나, 그런 이름이었다.
공화당 전당대회 도중 한 백인 남자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둥실,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경악하여 그를 쳐다보는 동안 그는 1M, 아니, 순식간에 사람들의 키를 넘어 하늘로 떠올랐다. 남자의 몸이 떠오르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5분도 채 되기 전에 하늘에는 검은 점이, 하나 남았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생각했다.
지구촌이란 으레 그런 것이다. 칠레의 어느 시골에서는 소가 사람을 닮은 송아지를 낳고, 잠비아의 하수구에서 악어가 나와 어린 아이의 다리를 물어뜯고, 말레이시아에서는 태풍이 불어 마을 하나가 사라지고, 중국에서는 대학생이 성적 때문에 촌극 같은 자살 소동을 벌이다가,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아 건물 밖으로 고꾸라지고 마는 일이,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에서 사람 하나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 쯤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달, 프랑스 혁명기념일 축제에서, 에팰탑 근처에서 약 마흔여 명의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서 온 사람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일이 벌어졌다.
신종, 테러였던 것일까.
원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으나, 갑자기, 지구 곳곳에서, 여태껏 숨겨놓은 자식이라도 발표하듯이, 사람들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중국 산둥성에서는,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공안이 그 사실을 숨기다가 발각되어, 그만 경질되고 말았다나.
그러면 떠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의 NASA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허공으로 떠오른 사람들의 최고 속도 13.2Km/s까지 이른다고 했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탈출속도는 11.2Km/s이므로, 이들은 지구의 중력권 밖으로 나가게 된다. 해발고도 8Km부터 일반적인 사람들은 호흡에 문제를 느끼게 되며, 저산소증의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 산소가 적어지면 뇌는 판단력의 장애를 보이고, 어지러움과 함께 피로감을 호소하지만, 또한 잠들 수 없는 불면 상태에 이른다. 뇌혈관은 부풀어오르기 시작해 끔찍한 두통이 오게되며, 결국…….
까지 나는 인터넷 뉴스 기사에서 읽을 수 있었다.
아마 기사의 말미에는, NASA의 발표에 대해 네티즌들은 “설마,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는 것은 아니겠지.”, “정부의 대책을 요구합니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 따위 문장이 있겠지, 싶었다.
다른, 가볍고 흥미로운 뉴스 기사를 뒤적거리다가 컴퓨터를 껐다. 블루 스크린이 쏟아내던 불빛이 눈을 감아도 눈꺼풀에 어른거렸다. 시간은 11시 45분.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잘자♥
너의 연락.
그래, 자야지, 이제.
너두 잘자, 답장을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피로를 머리까지 끌어올려 덮어도, 오히려 눈은 말똥거렸다. 불을 끈 천장에는 아직도 화면의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마치 산소가 부족한 뇌처럼.
그러나 이것은 또 익숙한 밤이었고, 사실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증상이기에,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내가 하늘로 솟구쳐도, 그리 낯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로 잠이 들기 까지, 나는 침대에 누워 두 번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시간은 00:47이었다. 더 늦어지면 내일 힘들 텐데, 따위의 생각을, 아마 그 전날 밤에도 똑같이 했을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는 잠이 들었다.
2, YOLO!
한국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문선희 씨였다. 충북 영동에서,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던 중 갑자기 몸이 들리는 것을 느꼈고,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그녀는 절명했는데, 뒤이어 구조대원이 그녀의 시신에서 안전벨트를 풀었더니, 그녀의 시신이 떠올라, 하늘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녀의 증명사진은 뉴스에서도, 신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제 한국도 더 이상 안전하지는 않았다. 이미 전 지구적으로 당연한 일이 되고 있었다. 몇몇 떠들기 좋아하는 학자들은, 어쩌면 공룡도 이렇게 멸종한 것이 아닌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또 몇몇 사람들은, 외계인의 소행이 아니냐며 수근거렸고, 내 친구 중 한 놈은 술자리에서, 이 지구가 외계인에게는 오락실의 뽑기 기계 같은 것이 아니겠냐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누구도, 심지어 미국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누군가 지상과 와이어를 연결하는 공룡들이라면, 이 사실을 이해했을까. 하나 둘 동료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면. 티라노사우르스는 짧은 앞발로 배를 긁으며 슬퍼했을까. 트리케라톱스는 뿔로 애꿎은 소철을 긁으며 탄식했을까.
강남 모 교회의 목사가 사람들이 떠오르는 것은 선택받는 것이며 승천하는 것이라는 설교를 했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다나.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늘로 떠오른 사람들이 의식을 잃고 파랗게 얼어붙은 시체가 된다고 적혀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도 떠오른 사람들의 숫자가 1,000여명을 넘었다. 사무실에도 항공티켓을 관리하던 여직원 몇 명이 사직서를 냈다. 원래 사직서를 쓰고, 2주 가량 출근하며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팀장은 개의치 않았다. 보란 듯이, 아니, 우리더러 들으라는 듯이 팀장은 사표를 쓴 여직원들에게 전화를 걸고, 전화를 걸어 마침내 통화를 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럼에도 사표를 쓰는 직원들은 점점 늘었다.
회사의 매출도 늘었다. 여행사였기 때문이다. 다른 여행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여행을 떠났다.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무서워서,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나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팀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름이었다. 유럽미주남태평양글로벌항공사업팀. 한 호흡에 담기조차 어려운 이름. 나는 그중에서도 남태평양항공팀이었다. 부장은 팀장과 동기였다. 팀장은 늘 화가 나 있었는데, 그 이유를,
“영업을 하는 사람은 항상 화가 나 있어야 해. 그래야 남의 것을 가져올 수 있어. 분노가 가장 강한 감정이다.”
따위의 말로 설명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사표는 속속들이 이어졌다. 팀장의 분노도 이어졌다. 고졸 출신으로, 대리까지 오른 선배는 담배를 피다가 갑자기 씨팔 새끼, 하고 욕을 하더니 침을 뱉었다. 절대, 상사를 욕하지 않던 그가 내뱉은 욕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았다.
YOLO라는 말이 유행했다.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제고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사람들은 확신했다. 사람들은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니, ‘때려 쳤다’, 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뉴스와 신문은 연일, YOLO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와 손실을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YOLO증후군. 사회적 질병의 확산. 뉴스와 신문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슨 교수라는 사람과 박사라는 사람이 사회적 불안감의 증대에 따른 신뢰도 저하와 이로 인한 자아 정체감의 불안감을 자신의 취미를 통해 찾으려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따위의 말을 늘어놓는 것을 유럽미주남태평양글로벌항공사업팀, 이라는 말을 듣는 기분으로 들었다.
물론 그런 질병에 시달리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 팀장도, 그런 사람이었다. 1,000명이 아니라, 천만 명이 떠올라 사라져도, 그는 마지막 남을 한 사람처럼 일을 할 것이다. 그것도, 항상 분노한 채. 어쩌면 그것이 영업인지도 모른다. 팀장은 아침마다 늘 뉴스를 보고, YOLO로 인한 사회적 비용 증가를 확인하고, 밤도망을 치듯 사직서를 낸 직원들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고, 화를 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아무 책임감 없이 달아나는 사람들을. 책임감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며.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너는, 분명 책임감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너는 항상 내게, 직장에서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을 즐겁게 재잘거렸다. 그런 말재주도, 그리고 그렇게 즐겁고 소소한 사건이 있는 직장이 아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네가 웃음을 터뜨리면 같이 웃곤, 했다.
그런 네가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
네가 말했다.
이탈리아?
응.
웬 이탈리아?
밀라노. 전부터 꼭 가보고 싶던 곳이야.
이탈리아?
너는 어디 가보고 싶던 곳 없어? 예전엔 많이 얘기했었잖아, 우리.
그랬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고 싶은 곳 따위가 아니었다. 네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 팀장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아닌 짐승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책임감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미래라거나, 예식장이라거나, 신혼집이라거나, 하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바삐 돌아다녔다.
그래서 나는 그런데,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니. 그런데, 라는 말을 나는 했던 것이다.
나 대리로 승진했어. 내가 입을 닫았다.
사실이었다. 입사 4년 차에 승진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보통이 아니었기에, 나는 승진했다. 월급은 겨우 15만원이 올랐지만, 월급이 15만원 올랐어, 라는 말보다는 나 승진했어, 라는 말이 듣기에도, 하기에도 좋았다. 둘 다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실 앞에서 너는 침묵했다.
아마 네가 침묵한 이유는 내가 승진했다거나, 월급이 15만원 올랐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그런데’를 말한 사실이었겠지만.
나도 침묵했다.
전화가 끊어진 줄도 몰랐다. 잠시 후 네게서 메시지가 왔다. 밀라노로 가는 비행기 표였고, 두 장, 이었다. 비행 시간이 있었다. 월요일이었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너도 내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은,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나도 직장을 ‘때려 치워야’ 했을까. 문득 문득 변명이 떠올랐다. 떠오른 사람들은 1,000명밖에 없는데, 과연 1,001번째가 나일까, 따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다가 늙어 죽을 것이라고, 통계가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 말을 입증할 수 있는 수없는 뉴스와, 기사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들조차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랐다.
화를, 냈어야, 했을까. 그러나 신기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너는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 다음날 회식 자리에서 나는 과도하게 취했고, 또 과도하게 울적해하다가, 과도하게 즐거워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승진했고.
너는 떠난다. 주말이었고, 나는 TV를 보며 저녁을 먹다가 내일 이맘때쯤 네가 탄 비행기가 출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퇴사하지 않았고, 그러니까 나는 그때쯤, 퇴근을 했다면, 또 이 곳에 있겠지, 하는 생각들이 들었고.
밀라노, 라고 했었지. 밀라노 국제공항. 이아타 기호로 MXP. 처음 입사했을 때 외웠던 기호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밀라노. 패션.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머리를 쥐어짜도, 밀라노에 대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떠오른 질문은 이런 것이었는데,
너는 왜 이탈리아에 간다고 했던 걸까, 하는.
그러나 나는 이 질문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과하게 우울한 나머지, 과하게 즐거운 TV 속의 사람들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그만 TV를 껐다.
그날, 나는 맥주를 마셨다.
3. 내가 떠오르고 있다.
처음 느낀 감정은, 신기하다, 는 것이었다. 정말로 몸이 떠오른다는 것은, 놀라우면서도 신기한 일이었다. 슬픔이나, 두려움, 따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짜내려고 해도 더 이상 짤 수 없는 마른행주처럼, 나에게 그런 감정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말라버린 아귀포에서 육수가 나올리 없지.
운전 중이거나, 전철이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안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을이라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름이었다면, 한없이 축축한 공기 중을 떠다녀야 했다면 얼마나 우울했을까.
그 다음 떠오른 생각은 우습게도 오늘이 월요일이고, 그러니까. 네가 밀라노로 떠나는 그 날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비행기는 출발, 했을 것이고, 지금쯤, 지금쯤이면, 어디를 날아가고 있을지는 몰라도. 아마 밀라노를 향해,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곳으로, 가고 있을 테지. 안전하게 가야할 텐데. 참, 비행기 안에서, 누군가 떠오르게 된다면, 하긴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려나. 그곳에는 안전벨트가 있을 테니.
몸이 떠오르고 있다. 헬륨 풍선이 된 기분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 척추를 집게로 잡아 들어 올리는 것처럼. 어쩌면 정말 친구 놈의 말대로, 외계인들이 뽑기 기계로 사람들을 뽑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몸이 떠오르는 속도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을 만큼 점점 빨라졌다. 이게
이상하게도 아직 의식이 흐려지지 않았다. 내가 유독 남다른 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것일까. 의식이 흐려지는 동안, 사람은 자신의 의식이 또렷하다고 믿는 것일까.
지구가 보였다. 말 그대로, ‘지구’였다.
시야 가득히, 그것은 ‘지구’였다. 그 외에 나머지는 없었다.
이것뿐이었구나.
이것뿐이었는데.
저쪽이 유럽일까. 그러면 저쪽이 이탈리아일까. 저쪽의 어딘가에 밀라노가 있을까. 그러면 이 부근에 네가 있을까. 네 옆의 자리는 아직도, 비어있을까.
의식이 흐려지기 전, 내 머리에 떠오른 마지막 낱말은 안녕, 이었다. 부풀어오른 뇌혈관과 어지러움과 불안감과 피로함 사이에서, 내가 짜낼 수 있는 것이라곤, 그 두 글자가 전부였다. 내가 겨우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이 밀라노, 쪽이었기를 바라며.
그리고 나는 생각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