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모든 할머니와 비둘기를 위하여
아침이면 항상 도봉산발 온수행 7호선 지하철은 사람으로 붐빈다. 물론 서울 지하철이라면 아침에 붐비지 않는 게 이상하겠지만 말이다. 무튼 도봉산역을 지나 수락산역을 거쳐 마들역으로 들어올 때면 이미 노원구 주민들과 학생으로 가득 차있다. 바야흐로 그 절정을 이루는 시간이 8시 30분 쯤, 그때쯤이면 이미 지하철은 인심 좋은 분식집 아주머니가 잘라주는 찰순대 속처럼 붐비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 역시 노원구 주민의 의무에 따라 몸을 잔뜩 늘여 당면 가닥처럼 그 사이로 스며들 준비를 한다. 덜컹, 지하철이 흔들리고.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러나 도봉산발 온수행 7호선 지하철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광경은, 바로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이 무어가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아침부터 할머니들이, 그것도 꽤 여럿이기 때문이며 게다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공릉역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역 곳곳에서 몇 명씩 몇 명씩 모여들었는데 분명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구면보다도 더 친밀한 사이처럼 보였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잠깐 졸아버린 할머니를 위해 다음 다음역이 공릉역이라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가며 깨우기도 했고, 잘 걷지 못하는 할머니를 양쪽에서 부축까지 해가며(동시에 주위의 젊은 사람들을 밀쳐가며) 공릉역에서 내리기도 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간혹 다툼과 화해도 있곤 했다. 내가 본 광경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은 노원역에서 탄 할머니가 중계역에서 탄 할머니와 하계역에 이르기까지 다투고 나더니 공릉역에 이를 때쯤 화해하고 두 손을 맞잡고 내리는 광경이었다. 사실 네 정거장만에 일어난 일이라기엔 너무도 번개와 같이 빠른 이야기 진행이라 공릉역에 가는 내내 승객들은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했다.
매일 6호선 환승역인 태릉입구역을 이용하는 나로서는 바로 전 역인 공릉역에서 할머니들이 내릴 때마다 대체 아침부터 할머니들이 왜 저 역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것인지, 왜 할아버지들은 없는 것인지, 공릉역엔 여성 전용 젊음의 생물이라도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은 충동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를 붙잡고 그런 말을 하기에,
아침은 너무 졸리고 피곤한 시간이며 지하철은 너무 귀찮고 지루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나 난 놓칠 수 없는 엄청난 것을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어째서 그전 까지 까맣게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같은 칸에 타는 이 할머니들이 모두 초면이라는 점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젊은 지성으로 무장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이성을 겸비한 젊은이가 어째서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는가, 하고 추궁한다면, 사실 젊은 지성으로 무장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이성은 지하철에 딴 아리따운 젊은 여성을 훔쳐보는 데 대부분을 소비했으며, 또 이 할머니들이 대게 원색의 낡은 옷을 보호색인 마냥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구분이 거의 불가능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사실 그러했다.
놀랍게도 그 어떤 할머니도 모피코트는 물론이요, 비싼 옷이나 화장을 하는 법이 없었다. 저마다 내기라도 하듯이, 집에서 가장 후줄근한 옷을 입고 온 듯 보였다. 물론 몇몇 할머니들은 그래도 때깔 고운 원색 옷을 입긴 했지만 역시 가뭄에 콩 나듯 했으며 그 중 대부분은 공릉역에서 내리는 할머니들이 아닌 경우도 허다했다.
즉, 할머니들 중에서도 약간 추레하고 가난해 보이는 모양새의 할머니들이 공릉역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노원구의 할머니란 할머니는 공릉역으로 다 빨아들이기로 작정한 것처럼 말이다.
슬슬 호기심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난 사실 수업에 빠듯하게 지하철을 타는 편이라 할머니들을 쫒기에는 내 출석이 염려되는 형편이었다.
물론 30분쯤 일찍 타면 아마 할머니들도 없을 테고, 자하철도 찰순대 속에 비하면 만두속 정도로 빈공간이 있겠지만, 순대나 만두나 뭐 그게 그거인 터에 굳이 30분 알토란 같은 아침잠을 포기할 만큼 난 부지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괜히 내가 30분 일찍 탔다간 그날 따라 8시 30분에 지하철을 타는 노원구 주민들과 학생들도 왠지 30분 일찍 일어나서, 지하철은 흡사 순대 속에도 비할 바 못되는, 그야말로 아바이찰순대 속처럼 터질 듯 사람으로 미어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날이, 지하철이 아바이찰순대처럼 미어 찬 날이었다. 마들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내겐 이미 불안한 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늦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플랫폼에 줄을 지어 있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마치 9시에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그날따라 개과천심해서 30분 일찍 일어난 것과 동시에 8시에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그날따라 오비이락으로 30분 늦게 일어난 것은 물론이요, 원래 8시 30분에 전철을 타는 사람들은 요지부동으로 전철을 타고자 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쩌랴. 출석에 늦지 않으려면 난 이 아바이 순대 속으로 한 가닥의 당면이 되어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라 사람들이 저마다 옷을 끼어 입고 온 날이었다.
게다가 그날따라 지하철에 탄 할머니들이 몹시 많아 보였다. 내 관찰에 의하면 날씨가 더 추운 날일수록 할머니들이 공릉역으로 더 몰려들곤 했다. 마치 때가 되면 연어가 강으로 올라가고 철새들이 시베리아로 떠나는 것처럼 일종의 계절적 변화에 따른 할머니들의 대 이동으로 비유할 수도 있겠다. 무튼 노원역을 지나 중계역을 지나 하계역에 다다랐을 때 지하철은 이미 터져 나올 듯한 똥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향하는 회사원처럼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다음 정거장에 내려야 하는 난 이미 문짝 옆에 있는 기둥을 잡고 내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공릉, 공릉역,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순간 안시성을 들이치는 당나라군대와 같은 기세로 할머니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노인들의 힘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금은 슬플 정도로, 생애 마지막으로 쓰는 필사적인 완력이 합쳐 쏟아졌다. 어라, 어? 어? 하는 말들을 내뱉으며 그 할머니들에 떠밀려 나 역시 공릉역에 내려버리고 만 것이다.
거의 패대기치듯,
공릉역으로 자빠진 나를 두고 이미 지하철은 한결 가벼워진 몸을 추슬러 떠나고 있었다. 낙동강에 있어야 할 오리알 신세도 모자라 섬진강까지 떠내려 온 오리알 신세가 돼버린 난 잠깐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다음 열차를 기다린다고 해도 이미 수업은 지각할 것이 분명했다. 순간 내 젊은 지성으로 무장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이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늦을 수업이라면 내 호기심을 푸는 것은 어떠한가.
할머니들은 이미 공릉역 바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 역시 천천히, 마치 원래 공릉역에 볼일이 있었던 사람인 것처럼 움직였다. 사실 때마침 소변이 마려웠던지라 실제로 볼일을 보고 나오니 할머니들은 공릉역 4번 출구 쪽으로 한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무리에 스며들 듯 짐짓 할머니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리라는 표현을 굳이 쓴 이유는 정말 그 할머니들이 무슨 대열을 이루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단지 목적지가 같기 때문에 같이 움직이는 동물들처럼, 할머니들은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그 무리는 온갖 수다와 웃음소리로 점철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하나의 공처럼 보였다. 만일 여고생들이나 여대생들이 그렇게 떠들며 거리를 걸어갔다면 분명 사내들뿐일지라도 돌아보는 사람이 있었을 테다. 그렇지만 정말 서글플 정도로, 할머니들 무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수군거리며 지나가는 것처럼. 아무도 누구도 할머니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할머니들을 미행하고 있었음에도 할머니들이 내게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였다. 살면서 단 한번도 누가 살금살금 뒤따라 와본 적 없는 것처럼,
할머니들은 거침없이 목적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몇몇 할머니들은 부축까지 받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할머니들을 부축하는 게 우스워 보이면서도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곧 동부간선도로가 보였고 할머니들은 길을 건너 중랑천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 스무 명 가량 되어보였으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같이 원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사람 하나 없는 중랑천 도로 옆에 늘어서서 대열을 만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너나 할 것 없이 이상한 동작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체조, 라고 부르기에 체조에게 미안할 정도의 동작이었다.
팔을 크게 좌우로 또는 양 옆으로 마구 휘젓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갯짓이라기보다는, 흡사 뱀이나 개에게 물린 닭이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사분란하고 절도 있기 보다는 종횡무진 마구잡이의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할머니들마다 휘두르는 동작도 모두 달랐으며, 각기 제 팔을 휘두르기에 바빴다. 몇몇 할머니들은 뜀까지 뛰어가며 팔을 휘두르기도 했지만 숨이 찬 것인지 곧 팔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팔만 휘두르는 동작일지라 하더라도 할머니들에게는 좀 버거워 보이는 동작이었다. 실제로 곧 몇몇 할머니들은 쓰러질 것처럼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포기하는 할머니들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젊음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흘러간 옛 세월을 고칠 수라도 있는 것처럼. 할머니들 대부분이 모두 결연한 표정이었다. 입술을 앙 다물고 눈을 감은 채 팔을 휘둘러대는 할머니도 있었다. 약수터에서 건강 체조를 하는 할머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으며 필사적이기까지 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은, 분명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고 할머니들을 지켜보는 난 왠지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입술 바깥으로 달싹이며 꺼내놓기엔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지금에야 입 밖이 아닌, 지면 위로 써 보자면,
할머니들은 날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필사적으로,
대우 받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가족들의 눈초리로부터, 텅 빈 노인정으로부터, 자신도 맡을 수 있는 방에 자욱한 노인네 냄새로부터, 밤마다 축축해지는 기저귀에서부터, 나마저 입어버리게 만드는 치매로부터, 머리를 빗고 나면 한 뭉텅이 씩 빗겨 나오는 머리카락에서부터, 암 진단서로부터, 읽기엔 눈도 머리도 가슴도 아파오는 청구서의 잔글씨로부터, 싸늘하게 식은 전화기로부터, 영감탱이마저 없는 세상에서부터, 친구마저 하나 둘 그리고 모두 떠나버린 세상에서부터, 이제 잘 걷지도 못하는 세상에서부터, 비만 오면 관절을 짓씹어대는 세상에서부터, 겨울이면 자꾸 추운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날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한 30분쯤 지났을까, 무리 중 한 할머니가 팔을 벌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네들만이 아는 무슨 주문 같기도 했다. 대체 무슨 짓들을 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던지라 곧 여기까지 몰래 따라 온 게 후회가 되기 시작했고 차라리 지각이라도 수업에 들어갔을 걸,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래, 5분이 지나고도 재미없으면 가자, 했던 다짐이 10분이 되고 15분이 지나도록 할머니들의 신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날갯짓처럼 팔을 휘젓고 있었고 간혹 몇몇 할머니들이 팔 동작을 멈추고 맨 처음 할머니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몇 판인지 게임을 하고 났을 때였다. 불현듯 공원은 중얼거리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등허리가 스멀스멀하면서 무서워지려는 그 찰나였다. 한 할머니가(그 할머니가 맨 처음 중얼거린 바로 그 할머니였는지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슬며시, 그러자 다른 할머니들도 곧, 아, 순식간에 모든 할머니들이,
비둘기로 변한 것이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딸들이 할머니들에게 쐐기풀 옷을 던진 것처럼, 아니 그 반대구나, 정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마법을 건 것처럼 할머니들은 저마다 비둘기로 변하고 있었다. 그 크기와 색깔에는 거의 규칙이 없었다. 그렇지만 비교적 염색을 안 해 머리가 하얀 할머니들이 변한 비둘기들에 흰 깃털이 더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저러나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 비둘기들은 널브러진 옷에서 기어 나와 저들끼리 무어라 구구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의 변화에 자신들마저 놀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곧 비둘기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후드득,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존재를 낌새채기라도 한 건지도 모르겠다. 후구국, 하는 비둘기들 소리와 함께 귓가를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날갯짓소리가 들렸다. 날갯짓이 서툰지 나는 솜씨가 영 마땅찮은 비둘기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곧 균형을 잡고 모두 날아가버렸다.
할머니들의 원색 옷들은 햇볕에 녹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풀풀 흩날리는 깃털들만이 자리에 남아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제 난 혼자 멍하니 입을 벌리고 비둘기들이, 아니 할머니들이 떠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금도 그 광경이 떠오른다.
어쩌면 당신은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에게까지 공릉역까지 와서 진실을 확인하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꼭 당신이 7호선 전철이 다니는 곳에 살란 법도 없는데다가, 설령 그렇다 한들 지하철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라면 사람들은 쉽게 진실을 포기해버리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비록, 내가 본 것만큼 확연한 진실은 아니더라도 그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일러주려 한다.
누구라도 평일 대낮 집 근처 공원 벤치에 가 보면 쉽게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마시오, 라고 적혀 있는 그 하얀 팻말 앞에 놓인 벤치에 추위에 떠는 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할머니들을 보라. 그리고 그 할머니들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연민처럼, 쏟아놓는 한 줌의 뻥튀기를 쪼아 먹는 비둘기들을. 아무리 TV에서 세균과 온갖 질병을 옮기는 원인이며 세금 낭비의 원인이 된다고 떠들어대도 할머니들은 오늘도 자기 자신과 꼭 닮은 그 새들에게 천 원짜리 뻥튀기를 던져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둘기들조차, 자신과 꼭 닮은 인간이 던져주는 그 값싼 먹이를 생전 자식이 데려갔던 환갑잔치의 갈빗살(고기는 씹지를 못한다고 했고만 폴세 잊어 먹은 모양인가, 에이, 애들이 울매나 바쁜데 그런 것 까지 기억 하려고, 그래 많이들 먹거라)이라도 되는 마냥 꿀떡꿀떡 삼키는 것을 보면,
당신도 내가 본 광경을 믿을지 모른다.
그래도 당신이 믿지 못하겠다면 당신에게 묻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들이 여기저기서 보이지 않기 시작한 시점과 비둘기들이 늘어난 시점이 일치하는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제부터인가 비둘기들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도로에서 자동차를 피하게 된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제부터인가 비둘기들이 더 이상 날지 않고 할머니들 마냥 고개를 흔들며 걸어 다니기 시작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많던 공원의 할머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그리고 그 많은 공원의 비둘기들은 모두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아무튼 나는 보았다. 공릉역 4번 출구에서 모인 할머니들이 중랑천에서 한 무리 비둘기가 되는 모습을. 그때 떨어진 나풀나풀한 깃털 한 개를 지금도 지갑에 꽂아두고 있다. 지갑의 두꺼운 비닐 아래서는 탁한 갈색 빛의 깃털은 그러나 꺼내보면 빛에 환히 부서지는 보랏빛 깃털로 변한다. 얕은 숨에서 나부끼는 그 깃털을 볼 때면 새가 되어 버린 그 할머니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공릉역에는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모여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