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해준 말
"글 쓰는 모임을 운영하는 건 어떠신가요?"
영화 관련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던 한 독립서점의 사장님으로부터 영화 글쓰기 모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 서점에 자주 방문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내가 브런치 POD(주문형 출판)를 통해 자가 출간한 책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 한 권을 사장님께 전해드렸는데, 몇 년 동안 쓴 영화리뷰를 모은 그 책이 다행히 인상적으로 다가오셨던 모양이다. 그때까지 내가 해본 건 영화를 함께 감상하거나 각자 보고 와서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영화를 주제로 한 '모임'이었지 영화리뷰에 대한 모임 그러니까 글쓰기 수업을 해본 적은 없었다.
마침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은 시기였고 그 제안은 내게 하나의 전기가 될 것임을 그때 직감했던 것 같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혼자 쓰기만 했지 누군가에게 '저는 이렇게 씁니다' 하고 쓰는 일에 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일단 시기가 정해지고 나니 나름대로 커리큘럼을 만들게 됐다. 그렇게 2018년 9월, [써서 보는 영화]라는 제목으로 매주 2시간씩 4주에 걸쳐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글쓰기는 단기간에 주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믿음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강의'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속 선배처럼 여겨온 여러 작가(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등)들의 인용을 소개하면서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상을 기록하는 일에 '영화를 영화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떠들었다. 김소연 시인의 산문 『시옷의 세계』(마음산책, 2012)에 실린 '상상력-미지와 경계를 과학 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시작된 영화는 거스를 수 없이 끝을 향해 매 프레임 나아가고 그것이 다 끝난 뒤 뇌리에 마음에 깊이 남는 것들을 눈에 보이는 문자 언어로 끄집어내는 과정이 곧 영화를 리뷰하는 마음이니까.
누군가는 대단한 노하우와 팁을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내내 지금 이 순간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의미를 찾는 게 쓰는 사람의 역할이고 그건 당장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매 순간 모양을 달리하며 계속되는 과정에서 비롯한다고. 어쩌면 우리는 글을 쓰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가능한 많은 것을 읽어내고자 골몰하고, 그 생각과 감정을 쉽사리 휘발시키지 않으려 하며, 내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관점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나날이 좋은 글을 쓰게 될 거라고. 글이 갖는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말과는 달리 글이 갖는 힘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고. 쓰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나름의 소신이 생겼다.
내 이야기가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써서 보는 영화]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초까지 이어졌다. 그뿐 아니라 다른 도서관, 서점, 대학 등에서 비슷한 콘셉트의 글쓰기 강의 제안을 받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혼자 쓰지 않고 나는 왜 어떻게 쓰는가에 관해 타인에게 이야기하기 위한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그때보다 지금 조금은 더 나은 문장을 써낼 수 있다고 자인하게 됐다. 마찬가지다. '내가 써도 되나?' 하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바로 그러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품고 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