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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0. 2024

취소 수수료율 100%의 하루

과감히 어떤 일을 포기해 내기

몇 년 전의 일이다. 한 주 내내 너무나 많은 자극을 소화했다고 느낀 어느 날. 어느 예술영화관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영화제의 행사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예매한 한 강연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이었다. 실은 그 이틀 전에도 이미 다른 상영작 하나의 관람을 취소한 뒤였다. 해당 강연은 듣고 싶은 주제였고 다뤄지는 영화 역시 각별히 아끼는 작품이라 ‘놓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게 그 전날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당장 써야 하는 글들과 생각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분명 필요하고 좋은 자극이자 영감이 되는 자리일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좋아하는 시인의 강연이었지만 그날따라 거기까지 갈 일종의 기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전 한 출판사에서 마련한, 좋아하는 소설가의 토크 행사에 다녀왔다. 게스트로 온 한 시인의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은 대목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은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할 일을 해치워야 할 숙제로 의식하고 그것들에 얽매여 있느라 정작 본인의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선순위를 고려하고 과감하게 당장 필요하지는 않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말. 말하자면 그 어느 날은 한 시인의 강연을 듣지 않기로 하면서 다른 시인이 해주었던 말을 실천한 하루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늦지 않게 행사 장소에 갈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켜 씻고 나갈 채비를 하는 동안에도 고민했다. 그렇지만 집을 나선 나는 그때 행사 장소가 아니라 집 근처의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원활한 행사 운영을 위해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개최 시점을 앞두고 일정한 기간에 따라 다른 취소 수수료율을 적용한다. 내 경우 전날까지도 예매를 취소하지 않았으므로, 취소 수수료율은 ‘100%’다. 취소를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때 환불 금액은 ‘0원’이다. 그로부터 벌써 일주일도 더 전에 예매를 했으므로, 강연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한 참가비는 이미 그 순간 매몰 비용이 된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대신 갈 사람을 구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였지만 그것도 어쩌면 또 다른 ‘일’의 연장. 그렇게 하지 않았다. 0원을 환불받기 위해 취소 과정을 밟지도 않았다. 그 자리를 자연히 누군가 대신 차지할 수 있었겠지만 해당 행사는 매진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취소 수수료율 100%를 부담하는 대신, 밀려 있던 글들을 거의 절반 이상 처리했다. 어디 가서 “저 글 빨리 쓰는 편이에요”라 말하기에 조금도 손색없는 속도로, 만족스럽지 않은 채로 마무리하는 대목 없이. 저녁이 되자 카페는 더 한산해졌다. 주문한 메뉴와 고객을 호명하는 직원의 목소리만 간간이 들렸고 노래를 오래 들은 귀가 피로해져 무선 이어폰을 빼서 충전 케이스에 넣었다. 아직 할 일이 더 남았고 그중 하나는 그날 처리해야 다음날을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일들이 어김없이 당면해 있다. 오늘 일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 하나를 제외하고 나면 해야 할 게 남아 있어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제목에 이끌려 소설 한 권을 집어들 수도 있고 차분히 일기를 쓰면서 따뜻한 차를 마실 수도 있다. 취소 수수료율 100%의 하루를 보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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