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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같이 건너는 밤

밤은 혼자 오지 않는다

by Helia

하린은 낮 동안 아무렇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집 안에서 조용히 놀다가 창가에 앉아 햇빛이 바닥 위를 옮겨 다니는 걸 오래 바라보았다. 누가 말을 걸면 고개를 들어 짧게 대답했고, 부르면 바로 돌아보았다. 다섯 살 아이치고는 지나치게 차분했지만, 어른들의 눈에 그것은 그저 얌전함으로 보였다.

문제는, 아픔이 항상 밤에만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금희는 그 사실을 몸으로 먼저 알아차렸다.
낮의 하린은 멀쩡했고, 웃기도 했고, 밥도 잘 먹었다. 하지만 잠에 들고 나면 아이의 몸은 전혀 다른 신호를 보내왔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설명을 찾기도 전에, 아픔은 이미 아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건너가 있었다. 깨어 있을 때는 닿지 않는 영역. 금희는 그곳이 어떤 종류의 밤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이 아이의 아픔은 병원이나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오빠들은 말수가 늘었다.
필요 이상으로 하린의 곁에 머물렀고, 이유 없이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린이 물을 마시러 가면 컵을 먼저 챙겼고, 소파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 그 행동들에는 특별한 설명이 붙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집 안에서는, 조심해야 할 밤이 있다는 걸.

“하린아, 이거 덮고 있어.”
“춥진 않아?”

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는 말로 꺼내는 순간 불안이 더 커진다는 걸,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대신 오빠들이 내미는 온기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이 집 안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이 있었다.

그날 밤부터 금희는 하린의 침대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설명이 아니라, 결심이었다.

아이를 안고 눕자 침대는 넉넉했다. 몸을 조금 움직여도 서로 부딪히지 않았고, 팔을 뻗어도 아이를 놓치지 않을 만큼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금희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침대를 고를 때, 자신은 이미 이런 밤들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걸. 언젠가는 아이 곁에 누워야 할 밤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남겨두고 있었다는 걸.

“엄마 여기서 자?”
하린이 잠옷 차림으로 물었다.

“응. 당분간은.”
금희는 짧게 대답했다.

하린은 더 묻지 않았다.
언제까지인지, 왜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금희의 팔 안으로 몸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이에게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오늘 밤을 함께 건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을 끄고 나면 금희는 쉽게 잠들지 않았다.
하린의 숨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깨어 있었다. 아이가 꿈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이제는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숨이 잠깐 걸리고, 어깨가 미세하게 굳는 그 찰나.

하린의 몸이 작게 떨렸다.
금희는 바로 아이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깨우지 않게, 꿈보다 먼저 닿게.

하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고, 손은 허공을 움켜쥔 듯 굳어 있었다. 금희는 아이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서두르지 않고, 멈추지 않고. 그 리듬은 아픔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꿈속에서 하린은 아팠다.
이유는 없었고, 늘 그랬던 자리로 통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증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누군가의 팔, 품, 놓지 않겠다는 무게. 하린은 그 안에서 숨을 골랐다.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끝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응.”
하린은 잠든 채로 아주 작게 소리를 냈다.

금희는 그 소리에 아이를 더 꼭 안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의 몸이 조금 풀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 후 하린의 숨은 다시 고르게 돌아왔다. 금희는 아이를 안은 채 그대로 누웠다. 팔을 풀지 않았다. 혹시라도 꿈이 다시 시작되더라도, 혼자가 아니게 하려고.

아침이 오면 하린은 아무렇지 않게 눈을 떴다.
몸은 가볍고, 얼굴에는 밤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빠들이 “잘 잤어?” 하고 묻자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희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더는 미루지 않겠다고.

아이를 다시 재우고 집 안이 조용해진 뒤, 금희는 거실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감정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 상태였다.

하린을 처음 데려왔던 보육센터.
아이를 안고 문을 나서던 날의 공기, 직원의 말투, 종이 냄새가 섞인 방이 떠올랐다. 금희는 번호를 눌렀다.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몇 달 전에 아이를 입양했던 보호자입니다. 김금희라고 합니다.”

확인 절차가 이어졌고, 금희는 하린의 이름과 날짜를 차분하게 전했다. 통화는 길지 않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잠깐의 침묵 뒤, 금희는 말했다.
“하린의 쌍둥이 오빠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말은 또렷했다.
이제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같은 날 태어난 남자아이요. 어디로, 누구에게 입양이 됐는지. 가능한 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상대는 조심스럽게 절차를 설명했다. 해외 입양일 가능성, 기록 열람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 금희는 하나하나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금희는 이 선택이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날 밤도 금희는 하린과 함께 잤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토닥이며. 꿈속에서 아이의 몸이 잠깐 긴장할 때마다 금희의 팔은 더 단단해졌다. 하린은 잠결에 엄마의 품을 더 깊이 파고들었고, 아픔은 늘 그렇듯 조용히 지나갔다.

며칠이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돌아온 주말 아침,
집 안은 이른 시간부터 분주했다.

부엌에서는 김밥 말리는 소리가 났고, 달걀을 부치는 냄새가 퍼졌다. 금희는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 앞에 서 있었고, 오빠들은 번갈아 부엌을 들락날락했다.

“햄은 이만큼이면 되지?”
“과일은 내가 씻을게.”
“하린 주스도 챙겨야지.”

말들이 겹치고 웃음이 섞였다.
하린은 식탁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도시락 통을 한 번 보고, 가방에 들어간 돗자리를 한 번 보고, 다시 금희를 올려다봤다.

“소풍 가는 거지?”
하린이 물었다.

“응. 날씨도 좋아.”
금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린은 크게 들뜨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이는 자기 몫의 작은 가방을 꼭 쥐었다. 집 안에는 오랜만에 앞으로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다 함께 집을 나섰다.
차 문이 닫히고, 안전벨트를 매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린은 금희의 손을 잡고 뒷좌석에 앉았다. 오빠들은 앞 좌석에서 어디가 좋을지 이야기하며 신이 나 있었다.

차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익숙한 동네가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 차 안의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될 줄은.

차는 계속 달렸다.
시간도 함께 흘렀다.

아이의 키가 조금씩 자라고,
젖니가 하나둘 빠지고,
밤에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이를 악물고 버티는 법을 배우는 동안.

꿈은 여전히 찾아왔고,
아픔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하린은 이제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엄마의 팔 안에서,
같은 침대 위에서.

소풍을 가던 그 차는
어느새 다른 길 위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5년 후.

하린은 같은 방식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차창에 비친 얼굴은 이제 열 살 아이의 것이었다.
볼살은 조금 빠졌고, 눈빛은 더 조용해졌다.

앞 좌석에는 교복 차림의 큰오빠가 앉아 있었다.
열다섯이 된 오빠의 어깨는 훌쩍 넓어졌고,
그 옆에는 열세 살, 6학년이 된 작은 오빠가 있었다.

하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아프지 않았다.
지금은 꿈도 아니었다.

다만 가슴 어딘가에서,
아주 오래된 박동이
여전히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그 박동이,
자신 말고 다른 누군가의 것이라는 사실을—
하린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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