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젖은 서랍
바람이 창호를 스치면
잠든 시간 위로 얇은 파문이 번진다.
그 틈으로 오래전 목소리가 스며와
귓속에서 은빛 가루처럼 흩어진다.
유리컵 속 물처럼 달빛은 떨고,
별들은 고요 속에 발목을 적신다.
숨결보다 느린 시간,
하루의 가장 가벼운 살결이
내 마음에 기대어 앉는다.
그때, 잉크 번지듯 희미해진 뒷모습이
문틈으로 흘러 들어온다.
손끝이 닿기 전 사라지는 향기,
닿지 못한 이름이 가슴 한가운데
작은 돌처럼 잠겨 있다.
왜 하필 새벽인가.
아마도 모든 소리가
자신의 무게를 내려놓는 순간이어서,
세상의 빛이 가장 얇아지는 때여서,
마음속 서랍이 스스로 열리는 시간이라서.
나는 오늘도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서늘한 창턱에 걸린 달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분명히
그대가 다녀간 흔적이
내 안에서 천천히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