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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내 11시간전

서울 신봉자의 탄생

나는 왜 서울에 집착하는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대관령집의 막내아들과 가난한 집의 아들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딸이 만났다. 그게 우리 부모님이다. 그 시절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아빠 말에 의하면, 먹을걸 찾아서 하루종일 산을 탔단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낳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살면서 우리 부모님 만큼 부지런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이 서울로 이사를 왔더라면? 저렇게 근면 성실한 사람은 더욱 서울에 있어야 했다. 부모님 8남매 중 서울에 터를 잡은 친척과 강릉에 터를 잡은 친척들 간의 자본 차이는 따라잡을 수 조차 없다. 특히 아파트 구매여부에 따라, 차이는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다. 지금 엄마는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서, 다가구 건물을 사 월세를 받는 친구가 제일 부럽다고 한다. 단순히 가족과 살기 위해 샀던 아파트라는 자산이 노후를 책임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 부모님도 월세를 받으려고 대학가에 땅을 샀고 건물을 지었다. 하지만 시골의 인구가 줄어들었고, 부모님 집 주변 원룸 가는 슬럼화가 진행 중이다. 동네 편의점은 몇 번씩 주인이 바뀌었다. 아, 옆에 요양병원도 생겼다. 대학생들이 사라진 곳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베트남, 태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우리 부모님 동네에 가보면,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다. 원룸장사가 아닌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업종을 변경해야 할 판이다. 서울 원룸가의 월세는 고공행진을 하는데, 부모님이 살고 계신 동네는 아직도 500/40만 원을 못 받는다. (무려 풀옵션에 전기세 포함)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지방이 가장 직격탄을 맞고 있다.


소위 말하는 폭락론자들은 말한다. 이제 비싸진 서울 집 값을 받아줄 인구가 없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적어진 인구 때문에 모두가 다 살고 싶어 하는 서울은 (그중 특히 강남) 점점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적어진 인구는 조부모의 부가 자식에게로, 손자에게도 혹은 조부모는 미리 손자에게 증여를 하는 방향으로 부를 이전하고 있다. 즉, 한 아이가 받을 (물질적이고 문화적인) 부가 더 밀도 있게 집중됐다.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이 시점에 모든 인프라는 서울로 몰리고 있고, 서울과 다른 지방의 격차는 이제는 넘어설 수 없다. 괜히 지방유지들이 서울에 집을 사놓는 게 아니다. (그리고, 서울집은 무주택자들이 사는 것이 아니라, 유주택자가 사는 것이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온 날을 기억한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에 살다가 아파트로 오니 너무 좋았다. 유모차를 끌고 집 앞까지 갈 수 있다니! 하지만 좋아진 것은 아파트 딱 하나뿐이었다. 아이의 학원을 보내려니, 학원 벽에 원장의 학력과 이력이 적혀 있지 않았다. 피아노든 발레든 벽에 원장과 강사 이력이 적혀 있었던 동네여서 그랬는지,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보다도 보내고 싶은 학원도 찾기 어렵다. 거기에 남편의 회사가 편도 90분으로 멀어지니, 남편의 부재가 너무나 커졌다. 하루 종일 혼자 육아를 해야 했다. 오늘도 고단한 출퇴근 길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가는 날을 꿈꾸고 있다. 


서울은 비싸서 못 살겠다고 한탄하는데, 막상 경기도 신도시 물가가 훨씬 더 비싸다. 대부분 새 건물인 탓에 월세도 서울보다 비싸다. 대중교통이 없으니 해당 신도시 사람들로만 알바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높다. 병원에 대한 접근성 또한 서울이 제일 편했다. 폐암 수술 이후 항암을 맞으러 다니는 친정 아빠는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항암을 맞고 내려가신다. 서울에서 오며 가며 항암을 맞았던 (돌아가신) 시어머님과는 체력적으로 금전적으로 부담이 배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말하셨다. 

혹시 벼슬에서 물러나면 빨리 서울 근처에 살며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반드시 서울의 십리 안에서 지내게 하겠다. 집안의 힘이 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서울 근교에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면 곧바로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 않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그렇다. 내가 지방 출신의 서민이라 더욱 서울의 편리함을 안다. 내가 살았던 시골집, 아니 뉴욕, 시카고, 보스턴 등 어느 대도시보다 편하고 깨끗하다. 물론 지방 소도시의 한적함이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더 도전할 기회가 많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서울에 살어리랏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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