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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린 북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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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선 Sep 29. 2021

변기의 습격

화장실 물내림 자동 센스

 

장애인 화장실 변기는 상체를 조금 움직이면 자동센서가 작동해 물이 내려간다. 

이것만 보면 장애인 화장실은 엄청 좋은 시설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동센서가 장애인에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늘 아침 가좌역 장애인 화장실에서 변기의 습격을 받았다

깨끗한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고 상체를 살짝 움직여줬다.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일을 상상하지 못했다.

볼일을 마치고 시원하게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꾸물꾸물 수상쩍더니 

변기물이 넘치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별거 아닐 거야 스스로 위로하며 얼음 동작으로 멈춰 있었다.

간절한 바람으로 엉덩이에 몇 방울의 물만 묻기만 바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왜 적중하는 걸까.

막힌 변기물이 느리게 올라오는 동안 

그사이 얼음이된 몸이 너무 힘들어 살짝 움직였더니 

야속한 자동센서는 다시 한 번 세차게 물을 뿜어 변기 물은 넘치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해 밖에 있는 사람을 부를 수도, 

비상벨을 누를 수도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 사이 변기 속 오물은 변기 밖으로 탈출하면서 

엉덩이에 착 달라붙었고 

속옷과 바지를 흠뻑 적시고 중요부분까지 점령해 버렸다. 

그뿐 아니라 화장실 바닥 곳곳을 오물로 덮어버렸다.

소리를 지르며 비상벨을 눌렀다 

그 사이 밖에 있던 보조인이 들어오고 역무원이 급하게 왔다.

하지만 이미 변기 밖으로 탈출하는 오물은 

계속해서 넘처나고 바닥은 아수라장이 돼 버렸다.

당황한 역무원과 보조인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나를 안아 휠처어에 앉히려 했지만 바닥이 미끄러워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 몸이 움직일수록 물 내림 자동 센서는 

쉼 없이 작동하면서 변기의 역류는 계속됐다.

변기의 습격을 여러 번 받아온터라 정신을 차린 건 내가 먼저였다.

이미 옷은 다 젖은 상태였기 때문에 

역무원에게 수건을 부탁해 센서를 가리고 나서야 

보조인과 역무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변기에서 탈출해 휠체어에 옮겨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젖은 옷은 벗어야 했고 오물묻은 몸은 씻어야만 했다. 

급한 대로 중요부분만 수건으로 가리고 남자 장애인 화장실로 이동해 

변기에 앉으려는 순간 좀 전에 악몽이 제현될까 두려워 

변기물이 잘 빠지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서야 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참담함이 오늘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서울역 4호선 장애인 화장실에서도, 종각역 에서도 

그 밖에도 다중이 사용하는 장애인 화장실에서 여러 번 경험한 일이다.

변기의 습격을 당하면서도 창피해서 어디에 하소연 하지도 못하고 혼자만 끙끙 앓고 있었다. 

오늘은 너무 화가 나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동료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너도나도 아우성 이다.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은 변기의 역습을 피할 수 없다. 

비장애인처럼 벌떡 일어날 수도 없고 타인이 도와줘야만 휠체어로 옮길 수 있으니

변기의 습격은 악몽이다.

또한 변기의 역습은 여성장애인 에게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변기물이 넘칠 때 그곳에서 서식하는 온갖 더러운 세균에 

여성의 생식기는 그대로 노출돼 각종 질병이 발생 할 수 밖에 없고

여벌옷이 없다면 화장실에서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겨울철 이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작년 겨올 4호선 장애인 화장실에서도 오늘과 똑 같은 경험을 했다. 

그땐 남성 장애인 화장실에 사람이 있어서 

서울역 기차역 대합실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바지를 벗은 체 무릎담요로 대충 가리고 가는 동안 

얼마나 수치스럽던지 오만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장애인화장실 변기뒤 물 내림 자동센서 설치는 강제 규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공공 화장실 시공할 때 시공자의 편의대로 설치해 

변기의 습격을 피할 수 없는 장애인에겐 참사가 발생한다.

일본의 경의 벽면 안전손잡이 있는 곳에 

자동센서를 설치해 손을 가져다 대면 변기물이 내려간다. 

하지만 국내 공공시설 장애인 화장실 대부분은 

변기 등받이 뒤 가운데 설치되 있어 

손이 불편한 장애인은 이용이 불편하고 

변기 막힘을 모르고 사용할 때 바지를 올리려 좌우로 움직임대로 

폭탄 투하 하듯 물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세면대 샤워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처럼 역무실에서 바가지를 가져와 변기에 앉은 채 오물을 씻어내야 한다. 

여벌의 옷이 없을 경우 새 옷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벗은 상태로 꼼짝없이 변기에 앉아 있어야 한다.

자동화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몸을 좌우로 움직일 때 마다 막을 수 없는 자동 물 내림 센서로

변기 물은 지속해서 쏟아진다.

변기의 습격 나만의 경험인가요?     



#장애인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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