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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린 북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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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선 Oct 04. 2021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

언덕길에서 멈춘 자유

전동휠체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갑자기 여행이 멈출 때가 종종있다.

제주 올레길 9코스 화순 해변에서도 그랬다.

송악산에서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까지

전동휠체어로 천천히 걸으며 멋진 풍경에 흠뻑 빠져다.

숙소는 일정이 끝나는 구간에 맞춰 화순 해변 쪽으로 잡고았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동료와 전동휠체어로

주변 접근성 모니터링도 하고 저녁 먹을 식당도 찾으려 했다

활동지원사는 하루 종일 함께 걷느라 힘들다고

숙소서 쉬면서 기다린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하고 밖으로 나섰다

해질 무렵이어서 후딱 둘러보려 했다

숙소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구간 중

급경사가 십 미터쯤 되는 곳이 있어 

체크하고 올 때 조짐해야지 생각하며 동네로 내려갔다

마을은 올레 9코스 구간이어서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뒤쪽에 있는 월라봉은 올9코스 구간 중

대평포구와 연결된 구간이어 산 중턱 까지는 

완만한 보행 길이라 접근성도 좋은 곳이다

어둠이 내린 마을은 가끔 개 짖는 소리만 들리고 곳곳에 밥 짓는 냄세로 가득했다

인적인 끊긴 마을길은 가로등만 발길을 밝혀 줬다

해변근처 장애인 화장실, 식당, 카페, 해변, 숙박업소, 여객터미널, 보도 턱 등 

대충 훑어 봤지만 휠체어 이용자가 들어 갈만한 식당은 죄다 높은 턱이 있거나 

계단 몇 개씩 있어 할 수 없이 호텔로 돌아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숙소로 기는 길에는 급 경사 길을 다시 올라가야 했다

내려올 땐 무서워도 어찌어찌 잘 내려왔는데 

올라가려니 경사가 더 급해 보이고 더 걱정됐다.

맘 단단히 먹고 급경사 언덕을 반 넘게 올라갔을 즈음, 

갑자기 퍽 소리가 나더니 휠체어가 멈췄다.

그리고는 뭔가 타는 냄새가 나면서 전동휠체어는 꼼짝 안했다

급경사에서 휠체어가 멈추다니 ㅠㅠ

온몸에 털이 쭈삣서고 소름이 쫘~악 돋으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너무 무서웠다. 

아, 휠체어가 굴러 난 이제 세상과 작별이 구나 생각했다.

동료는 차분하게 내 휠체어 아래로 내려와

휠체어 끼리 딱 붙여 전복되는 걸 최대한 막으며 

걱정 말라고 안심 시켜줬다

바로 119에 구조요청을 했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백년은 더 지난 것 같았다

십분쯤 지났을까? 싸이렌 소리가

어둠이 내린 마을에 정막을 깨며 구조대가 도착했다

건장한 구조대원 서너 명이

정지된 전동휠체어을 밀고 끌고 올라가

숙소 로비까지 데려다 줬다

근데, 문제는 전동 휠체어가 안 움직이니

꼼짝없이 내 몸도 멈춰버렸다.

화장실도 못 가고 객실도 못가는 신세가 된 거다. 

급하게 휠체어 판매한 사장님께 전화해 

상황을 설명해 구조대원과 영상 통화로

임시방편을 알려줬다.

멈춰선 휠체어는 배터리 연결 부위 퓨즈 끊어진 거라 했다

당장 퓨즈가 있을 리 만무다.

사장님이 일러준 대로 배터리와 컨트롤 연결부위를

퓨즈 없이 임시로 연결해 휠체어를 움직이게 해줬다.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뿐이다

덕분에 남은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그 후 부터 예비용 퓨즈도 가지고 다닌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여행 하다보면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수시로 벌어진다.

그러면서 노하우가 쌓이고

무장애 여행 영토가 확장된다.     


#무장애여행 #장애인여행 

#접근가능한여행평등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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