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엄마는 바쁘다.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진 우산을 펴고, 고인 물을 참방 거릴 장화를 신을 생각에 설렌 아이와 함께 준비하는 시간은 평소보다 길어지기 때문이다.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는 색다른 모습으로 나가고 싶은 듯하다. 오늘은 이 옷을, 이 양말을, 이 신발을, 이 우산을. 머릿속에 그려진 '비 오는 날의 나'를 그리며 준비를 한다. 엄마의 개입은 최대한 줄인다. 정말 안구 테러 수준이 아닌 패션이라면 아이가 원하는 모습에 맞춰 준비를 도와준다. 1분 1초가 소중한 아침 시간인지라 모난 모양을 서로 맞부딪힐 이유가 없다.
아이와 함께 준비하며 몸은 쉴 틈 없이 움직이니 엄마의 이마에는 적당한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아이는 비를 어서 만나고 싶은 마음만 있기 때문에 '안'은 없고, '밖'만 있다. 한 번에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서 나오지 않으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경우, '밖'에서 목청껏 울거나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현관문을 여는 건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이를 '1차 고비'라고 하겠다.
엄마의 모든 세포와 신경은 아이를 안전하고 기분 좋게 원까지 데려다주는데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걸어가는 길 물어보는 이런 풀, 저런 풀의 이름도 알려주고, 옷에 물이 많이 튀지 않도록 웅덩이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머리에 비 맞지 않도록 가까이 다가가서 우산도 제대로 씌워주고. 아이가 달팽이 걸음이라고 해도 언젠가는 도착하기 마련이다. 비 오는 날은 특히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높으니 시간의 여유를 넉넉히 갖고 나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원 앞에 도착해 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모든 움직임을 최대한 천천히 움직인다. 우산을 접을 때도 천천히, 세울 때도 천천히. 천천히가 중요한 이유는 행여 아이의 얼굴에 빗물이 튀거나 옷에 묻거나 하면 '2차 고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괜찮다. 괜찮다를 연이어 말해주며 모든 상황과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다. 아이가 원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우산은 원에 두고 갈지 엄마가 들고 갈지 물어본다. 이 또한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엄마가 들고 가는 선택을 한다면 하원 때 들고 오라는 약속을 할 경우가 생기는데 이 약속은 지킬 수 있도록 한다.
원에 들어간 아이에게 '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멋진 아이야.'라는 눈빛을 쏘며 예쁜 얼굴로 인사한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엄마는 최대한 손을 흔들며 끝까지 인사한다. 그 어렵다는 비 오는 날 아이와의 등원식을 마친 엄마는 드디어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감상한다. 우산을 경쾌하는 두드리는 빗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빗소리만큼이나 엄마의 발걸음도 가볍다. 반복되는 육아 일상 속에 찾아온 색다른 손님을 만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