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rdy Aug 10. 2023

내 삶의 하이라이트


지난달 누군가 내 페이스북 담벼락에 글을 남겼다. 이름이 낯익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정확히 10년 전 서울의료원 취재 때 만난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그때 풍경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당시 나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부 경찰팀 막내 기자였다. 당시 우리 회사는 웰다잉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존엄하게 끝낼 것인지 함께 논의해보자는 의도였다. 당시 의료원 관계자가 회사로 제보를 했다. 현재 한 환자분이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데, 한번 취재를 와달라는 것이었다. 취재 지시를 받은 나는 바로 서울의료원으로 향했다.


한윤기 씨는 병원 로비에서 방문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눈을 잘 뜨지 못했지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회에 찾아온 관람객을 그는 정중하고 겸손하게 대했다. 호스피스 병동의 동료 환자들은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응시하며 제각기 엷은 미소를 띠거나 눈시울을 훔쳤다. 위안과 감동을 받은 모습이 느껴졌다.


한윤기 씨는 폐암 말기의 고통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는 40년 경력의 화가였지만 원래는 사진작가였다. 1970년부터 카메라를 한 대 사서 전국의 바다와 강, 산을 돌며 렌즈에 담았다. 사진에 미쳐 있던 어느 날 ‘자연을 직접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붓을 들었다. 한 점 한 점, 먹을 갈아 그려낸 300여점 작품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좋아서 그렸지만 주목받는 화가는 아니었다. 1988년 충남 예산 ‘윤봉길의사기념관’ 개관 때 작품을 전시하긴 했지만 정식 전시회는 열지 못했다. 2남 2녀 자녀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도 힘에 부쳤다. 여기저기 이삿짐 날라주고 번 돈으로 가족을 먹였다. 낮엔 짐 나르고 밤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한번도 팔지 않았던 한씨는 가장이자 예술가로 평생을 동분서주했다.


한 씨의 그림 인생이 위기에 처한 건 2004년이다. 명치 부분이 쓰려 찾아간 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한씨는 “아파서 병원에 있지만 나무 꽃 강을 그리면 내가 자연의 한복판에 누워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병 중에 그린 작품 10점은 이전 그림보다 선이 더 굵고 단단하다. 한 작품에 산과 바다, 하늘과 강이 한꺼번에 들어가기도 했다. 좀처럼 없던 일이다. 한 씨의 아들 광태씨를 만났는데 그는 “가족에게 신세한탄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마음 속 안타까움은 우리보다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씨는 9년간의 투병 끝에 2013년 말 26일 서울 신내동 서울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2주 만에 거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미술치료’ 시간은 그에게 또다른 삶의 이유라고 했다. 그의 놀라운 그림 솜씨를 본 간호사 선생님은 한씨 가족과 상의한 끝에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서울 등촌동 한씨 자택에 있던 그림 50점이 공수돼 병원 로비에 걸렸다. 링거를 꽂고 지나가던 환자, 휠체어를 미는 보호자, 피곤해 보이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감상했다. 


줄지어 창공을 나는 갈매기떼, 짙은 안개 속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웅장한 산세, 첩첩산중에 홀로 남겨진 초가집의 연한 흔적…. 하나하나 한씨의 인생과 철학이 담긴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을 소중히 어루만지던 한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6시간 동안 열린 전시회가 끝나자 그는 아들에게 “최고의 영광이었다. 여한이 없다”고 했다.


전시회 이틀 뒤 한씨는 그토록 사랑했던 자연을 떠나 영면했다. 영정 옆에는 끝없이 펼쳐진 산자락을 낚시꾼과 뱃사공이 바라보는 그림이 놓였다. 그가 전시회에서 뱃사공을 가리키며 “이게 나”라고 했던 작품이었다.




나는 취재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인생을 본다. 다들 참 열심히 하루하루 산다. 인생이 맘대로 풀려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돈을 번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다만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내 손을 꼭 잡던 한윤기 씨의 따뜻한 손도 생각나지만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또렷했던 그 눈빛을 가끔 생각한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니 비록 병을 얻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전시회를 하게 되고 평생의 소원을 이루게 됐다. 그 과정에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것은 참 영광이다.


또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나는 과연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충실히 준비하고 있는가. 가볍지 않고 진중하게 삶을 마주하고 있나. 10년 전 만났던 한씨의 삶을 조망하며 느꼈던 그 무거운 감정을 다시한번 꺼내보는 것이다. 불꽃같은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지막이 임박했을 때 이 세상에 뭐라도 이름 하나 남길정도의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이전 08화 춥고 배고팠던 수습기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