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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dy Dec 14. 2023

만날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인사가 나서 출입처(맡아야 하는 부처나 기관)가 바뀌었을 때 꼭 하는 게 있다. 기자실장이나 홍보실, 공보실로부터 주요 취재원 연락처를 받으면 무조건 모든 이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새로 출입하게 된 국민일보 박세환 기자입니다. 제가 정치부 사회부만 하다보니 이런 부서는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하는 식이다. 


별게 아니고 모두가 당연히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경찰서만 따져봐도 경무과장, 형사과장, 수사과장, 여성청소년과장, 보안과장 등등 사람이 무수히 많다. 그 밑의 계장들도 그렇고 팀장까지 합치면 한 경찰서에만 100여명이 넘는 취재원이 있다. 라인별로 경찰서는 여러개니까 챙겨야 할 사람도 더 많아진다. 아무리 복붙을 한다고 해도 이들의 번호를 일일이 저장해 문자를 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거, 정말 좋은 꿀팁이다. 처음에 나의 존재를 다방면으로 알려놓으면 출입처 생활이 편해진다. 어떤 기자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더 하기 귀찮고 싫어진다. 배치 받은 바로 다음날 하루를 투자해 이 문자를 돌리는 것을 신입 기자분들께 정말!!!!!! 추천드린다. 


나는 1년전 기재부 배치 때도 모든 국장과 실장, 과장을 포함해 차관보, 차관, 장관에게 문자를 보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바로 약속을 20개 넘게 잡게 됐다. 모 과장들은 자신들끼리 저녁자리에서 내 문자를 받았냐고 서로 묻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 나는 성공적으로 취재원들에게 어필한 셈이다.


나는 남들이 안 찾는 사람, 안 찾는 부서, 소외된 자리에 있는 취재원에게서 기사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차피 크게 중요한 부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얘기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옆 부서의 일을 전해 듣고 귀띔만 해주는 역할만 해도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이건 전임 편집국장한테 배웠다). 그러니 평소에 최대한 여러명과 알고 지내야 하는 것이다. 정말 언제 어떻게 그들이 나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나는 선배들에게 취재원 중에 안 중요한 사람은 없다고 배웠다. 실제로 모두가 소중하다. 그런 관계를 쌓기 위한 첫 한방으로 부서 배치와 동시에 문자 공격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경찰관 아저씨들이 답장을 했다. 전화가 오는 적도 많았다. 기자 문자를 처음받았다는 사람이 있으면 내 입가에도 미소가 생긴다. 그들과 함께 하며 정보도 듣고, 대신 서로 상부상조하는 좋은 만남이 될 수 있다. 그때 답을 준 분이 옆과에서 담당하는 38억짜리 미술품 사기 사건 수사 계획을 알려줘서 바로 단독 기사를 쓴 적도 있다.


당신이 기자라면 더 많은 취재원과 만나고 소통할 수록, 얻게 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업그레이드 된다. 당연한 이야기다. 난 이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공정하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기자가 어느 집안 출신이고 어느 대학이나 학교를 나왔든 상관없다. 배치를 받는 순간 열심히 내 이름을 알리고 내 존재를 기사를 포함해 온몸으로 외쳐서 정보를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생난리를 쳐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 과장 200명을 하루에 한명만 본다고 쳐도 주말을 빼면 거의 일년이 걸린다. 더 딥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술도 먹고 해야 하는데 불가능하다. 모두와 알고 지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이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청와대 때 특히 심했다. 내가 모르는 행정관과 다른 기자가 웃으면 인사하는 것조차 질투가 났다. 기사를 물 먹어도 남들이 모르는 취재원과 더 많이 알고 싶었다. 1년 간 점심 저녁을 술과 함께 했더니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탈모 전조 증상이 왔고, 역류성 식도염에 위염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내 가녀린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인 것 같았다.


요새도 생각은 비슷하다. 모든 취재원은 중요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한계상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면 불가피하게 좀 나눠야 한다. 가장 먼저 만나야할 사람, 아니면 시간을 두고 봐도 되는 사람. 수백명 중에 코어에 근접해서 정보가 많은 사람, 아니면 만났을때 재미있고 즐거운 사람,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형 동생으로 지내도 될 정도로 내 스타일인 사람 등등. 그리고 그들이 또 새로운 이를 소개해주고 하면서 내 바운더리가 점차 넓어지는 것이다. 


보통 내가 출입처를 옮기면 취재원과의 연락은 대부분 끊어진다. 그럼에도 계속 연락을 주는 고마운 이들이 있다. 이들과는 단순히 비즈니스가 아니게 된다. 정보를 주고받는게 아니라 서로를 위해 힘이 되는 그런 관계로 승화한다. 혹자는 권언유착, 경언유착이라고도 하는데 난 좀 성격이 다른 것 같다. 누구나 사회생활 하다보면 마음가는 거래처 사람이나 동료가 있지 않나. 불법이 아니라면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아무튼 그들도 똘똘한 기자를 가리듯이 나도 좋은 취재원을 많이 사귀고 싶다. 단순히 날 기자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고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인생의 친구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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