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처음 집을 짓겠다고 했을 때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건축 지식은 전무했지만 주변에 집을 직접 짓는 사람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땅을 샀으니 당연히 집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일생에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집을 짓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꼬마빌딩이나 리모델링 등 곳곳에 공사현장은 많이 보이는데 도심에서 단독주택 건설현장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실제 내가 만나봤던 건축사들을 봐도 단독주택 포트폴리오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건축사들은 주택이 건물보다 더 까다롭다고 했다. 아무래도 건물은 일하는 곳이고 주택은 생활하는 곳이니 디테일하게 신경 쓸 것이 많다고. 그래서 건물 평수보다 주택이 작다고 설계비가 비례하여 작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집을 짓겠다고 건축사들을 만나 상담을 할 때 가장 처음에 듣는 질문은 바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또는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였다.
언젠가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일본의 홋카이도 어느 지역에 빵 냄새 솔솔 나던 오두막집을 지나갈 때 너무나 평온하고 따뜻해 나도 언젠가 저런 집을 짓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핀터레스트나 월간지에서 차갑고 스틸로 된 검은 인테리어를 보면서 세련된 무엇을 마음에 담기도 했던 것 같다. 가족이 행복한 집, 목가적 분위기의 조용한 집, 햇빛이 비치는 집, 아니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좋고요. 넓었으면 좋은데 좁아도 상관없어요.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바닥엔 물이 흐르고요. 지붕도 열리면 좋겠네요. 또.
십중팔구 건축사들은 당황한다. 어떤 건축사는 A4 수십 장으로 된 설문용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우리 가족의 형태를 치밀하게 관찰하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가족의 행태와 사람의 로망은 다를 진데 어떻게 맞춰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난 그냥 집을 지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만 했지 꼭 집을 지어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도 없긴 했다.
나도 나를 모르겠어요
집을 짓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많은 의견을 접수하게 된다. 2층은 필요 없어요. 활용도가 매우 떨어져요. 목조주택은 방음이 안되고 2층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요. 집 크게 지을 필요 없다. 관리하기 힘들다. 잔디 깔지 말아라. 보기엔 좋아도 그거 중노동이다. 일생에 한 번 짓는 집 제대로 지어야 한다 등등. 모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들이다. 이러한 의견들을 모두 취합하다 보면 집은 너덜너덜 해질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정리가 안되어 집 짓는 일을 중단한 적도 있다.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예산에 대한 부분이다. "얼마 예산으로 지으려고 하느냐" 또는 "몇 평짜리 집을 지으려고 하느냐"인데. 통장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얼마나 돈이 필요한지 알고 싶기도 했는데. 궁금한 점은 실제 다른 건축주는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집을 지을까? 몇 평을 원하는지 본인이 알고 있는 건축주는 얼마나 될까? 그런 걸 전혀 모르니 상담하고 협의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쫓아내지는 않는다.
세 번째로 많이 받은 질문은 구조, 재료, 공법에 대한 부분이었다. "어떤 재료의 집을 짓고 싶은지". 즉, 기본적으로 철근콘크리트, 목재, 철골 중 말이다. 나는 그저 춥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 또한 3가지 장단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모르니 선호도를 말할 순 없었다. 가장 흔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서 살펴보아도 너무 다양한 의견들이라 결론적으로 전문가가 결정해 주길 바랐다.
가끔은 AI가 나를 인터뷰해서 예산과 평수 콘셉트 등 모든 것을 제안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건축사를 만날 때마다 난 더욱 작아져 있었다. 너무나 명쾌하게 콘셉트와 실행 안을 갖고 있는 건축주를 보면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건축주의 운명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라는 것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것은 단지 설계 단계에서 뿐 아니라 건축의 전 과정에서 벌어진다.
나는 회사나 일상생활에서 결정장애를 갖고 있지 않다고 자부했으나 건축에 있어서는 무색무취였던 것 같다. 한 때는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부족하고 불편한 것이 있다면 그때그때 바꾸어 나가면 되지 않겠느냐란 생각. 그저 내 한 몸 누을 공간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건축사에게 했는데 허탈한 웃음을 지으셨던 기억도 있다. 아마도 건축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비교분석 자체가 힘들어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볼 수 있겠다. 지식이 없다고 집을 짓는 것이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전문가만 집을 지으란 법도 없을 테니 말이다.
지식이 풍부하고 명확한 목적으로 효율적으로 집을 짓는다면 축복이겠지만 나처럼 이 혼돈의 과정을 해학과 웃음으로 잘 극복하고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해볼 만한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정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 또 하나의 콘텐츠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내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제주라는 섬에 집을 지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