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란, 건강한 인식을 얻기 위해서
자기 안에 박혀있는 다양한 사고의
오류를 고쳐야 하는 사람이다.
- 비트겐슈타인
우리나라 하계 올림픽 통산 100번째 금메달이자, 최연소 금메달의 주인공이죠. 2024년 파리올림픽에 참가했던 열여섯 여고생 사격선수, 반효진 선수의 메모가 화제였습니다. 반효진 선수의 노트북 화면에는 과녁 기록 분석 자료가 띄워져 있고, 그 왼쪽 위에 이렇게 새겨진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어차피 이 세계 짱은 나다'
사격 훈련과 시합을 할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날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었을 겁니다. 자신감이 있는 날도 있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날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반효진 선수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속삭였을 것입니다. “어차피 이 세계 짱은 나다.”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태어날 때부터 자신감으로 영혼까지 샤워를 하고 이 세상에 온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당당하게 자신의 걸음을 내딛습니다. ‘뭐든 스스로를 믿어야 시작이 가능하고, 그 시작에 빛과 희망이 찾아올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지금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릴 때 부모님이 나를 바라보던, 바로 그 눈빛입니다. 지금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은, 어릴 때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그 말입니다. 어릴 때 내게 건넸던 부모님의 눈빛과 말이, 어린 나의 내면에 씨앗으로 심어졌습니다.
같은 땅에서 자라더라도 고추와 콩은 서로 다른 맛을 냅니다. 같은 땅에서 같은 비료로 키웠지만 고추는 매운맛을, 콩은 고소한 맛을 냅니다. 사람도 같은 세상을 살며 같은 사건을 겪더라도, 전혀 다르게 경험하고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부정의 씨앗이 심어져 있으면, 부정적인 것을 경험하고 부정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긍정의 씨앗이 심어져 있으면, 긍정적인 경험들을 흡수하며 긍정적인 세계관을 강화하게 됩니다. 같은 돌도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되지만, 다른 이에게는 디딤돌이 됩니다. 누군가에는 절망적인 사건도 다른 이에게는 경험이 됩니다.
내 안에 심어진 작은 언어의 씨앗이 내가 경험하는 세상을 만듭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소년을 보살피는 일은 천체망원경의 렌즈를 닦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천체망원경에 묻은 아주 작은 먼지가 저 멀리 떨어진 우주의 커다란 행성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살피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어릴 때 내게 심어진 아주 작은 언어의 씨앗이 지금 경험하는 커다란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나의 세상은 나의 언어로 지은 집입니다. 과연 내 안에는 어떤 언어의 씨앗이 심어져 있을까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지금 내가 쓰는 언어를 살펴봅니다.
긍정의 언어인가요 부정의 언어인가요?
사랑의 언어인가요 미움의 언어인가요?
이해의 언어인가요 분노의 언어인가요?
자신감의 언어인가요 자책의 언어인가요?
부자의 언어인가요 가난의 언어인가요?
도대체 부모님은 왜 그런 씨앗을 내게 심었을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부모님에게도 그런 씨앗이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미 심어진 씨앗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과연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이 가능한가요?
예 가능합니다. 인간은 외부 자극 없이도 자기 변화가 가능한 유일한 존재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남처럼 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것을 ‘자각’이라고 합니다. ‘자각’은 쉽게 말하면 ‘내가 그런 줄 아는 것’입니다.
자각할 때, 내가 그런 줄 알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호흡이나 움직임을 관찰하는 명상,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은 모두 자각을 훈련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이런 도구들을 활용해서 자신이 그런 줄 아는 연습을 해갑니다..
‘자각’을 농사에 비유하면 밭 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밭 갈기를 통해서 원래 심어져 있던 작물을 갈아엎고 새로운 작물을 심을 수 있습니다. 밭 갈기, 즉 지금 심어져 있는 내 언어의 씨앗이 어떤 건지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나의 언어를 보면서, 나는 부모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부모님은 나에게 부정의 씨앗을 심으셨지만, 나는 긍정의 언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록 부모님은 나에게 부정의 말을 했지만 그분들도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며, 부모님에게 긍정의 언어를 건넵니다..
“이해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부정의 씨앗을 심은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부정의 씨앗을 심었으니 나도 부모님께 부정적인 말을 건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합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만큼은 긍정의 언어를 건넵니다.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이 자기 긍정의 첫걸음입니다.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 그렇구나.
‘되는 일이 없어 속상하다.’ ⇒ 그렇구나.
‘이건 도저히 할 수 없어.’ ⇒ 그렇구나.
나는 오늘도 ‘그렇구나.’ 연습을 통해 내 마음의 밭갈기를 합니다. 그리고 밭갈기가 된 깨끗한 땅에 긍정의 언어, 이해의 언어, 사랑의 언어, 자신감의 언어, 부자의 언어를 심습니다.
반효진 선수님 죄송하지만, "이 세계 짱은 접니다. ㅎㅎ"
스스로를 믿어야만
무엇이든 할수있어
어찌하면 내게깃든
부정언어 몰아내고
빛과희망 가득채운
긍정언어 쓸수있나
지금내가 쓰는언어
부모님이 심으셨네
부모님의 시선과말
내말씨앗 되었다네
부정씨앗 심었으니
부정세계 경험하고
긍정씨앗 심었으니
긍정세계 경험하네
망원경의 먼지닦듯
나의언어 살펴보네
나의언어 알게되면
그게바로 자각이라
그런줄을 알게되면
자기변화 시작되네
부모님이 나에게는
부정언어 심었지만
나는지금 부모님께
긍정언어 선택하네
아직나는 부모님께
긍정언어 못쓰지만
그런내게 긍정언어
쓰는것은 할수있네
그렇구나 이한마디
내마음의 밭갈기라
밭갈기가 요로코롬
간단한줄 난몰랐네
그렇구나그렇구나
한마디면 되는구먼
밭을갈아 깨끗한땅
긍정언어 심어가니
여보시오 사람들아
세계짱은 바로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