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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의자포U Nov 27. 2024

44. 나의 마음이 네게 전해지려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언어폭력,

그것이 가장 거칠게 표출되어 있는 것이

바로 ‘사전’이다.

- 비트겐슈타인



‘오이’


전 저 단어만 봐도 오싹한 느낌이 듭니다. 오이의 향과 색이 상상이 돼서 눈살이 살짝 찌푸려집니다.


전 오이를 싫습니다. 비릿한 오이 냄새가 너무도 싫어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오이 속의 옅은 초록 색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농담 삼아 ‘오이가 지나간 바다에서는 헤엄도 안 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오이를 좋아하는 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을 테지요. "갈증 날 때 시원한 오이를 먹으면 얼마나 좋은데!"라고 말하려고 하셨죠? ^^


모든 말에는 저마다 살아온 경험 담겨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이’라는 말에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경험이 담겨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더운 여름철 산 정상에서 먹던 시원하고 상쾌한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의 다양한 경험을 무시하고 하나의 의미로 거칠게 정리한 ‘사전’은 폭력적인 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각자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저마다의 ‘사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사전을 만드는 것보다 더 폭력적인 것은 나의 사전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경우입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정말 근사한 비유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니 간단하게 요약하겠습니다.


#이야기


어느 날 여우가 저녁 식사에 두루미를 초대했습니다. 여우는 평평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두루미에게 건넸습니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도저히 먹을 수 없어 쫄쫄 굶은 채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두루미는 주둥이가 좁고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어왔습니다. 주둥이가 짧은 여우는 호리병 속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 결국 굶었습니다.



여우와 두루미는 서로에게 좋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담은 그릇이 적절하지 않아서 좋은 마음이 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릇’이란 단어는 같지만, 실제 여우의 그릇과 두루미의 그릇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여우의 사전에 실린 ‘그릇’은 평평한 접시였지만, 두루미의 사전에 실린 ‘그릇’은 목이 긴 호리병이었습니다.


언어는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여우와 두루미의 그릇이 다르듯이, 같은 단어라도 각자의 사전에 실린 의미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내가 가진 좋은 마음이 상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시 1

“얘야, 공부 좀 해야지.”

“왜 엄만 맨날 공부 공부, 공부밖에 몰라?”


[공부의 뜻]

*엄마 사전 : 인생의 기회에 올라타기 위한 발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아들 사전 : 해야 하는 건 알지만 하기도 싫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것. 나를 자꾸 주눅 들게 하는 것. 


#예시 2

“술 한잔하고 집에 들어갈게.”

“또 술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술만 마실래?”


[술의 뜻]

*남편 사전 : 주어진 책임감에서 벗어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용한 도구

*아내 사전 :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을 뺏고 남편의 건강마저 해치는 백해무익한 물건




#예시 3

실패한 청년 : “저 이번에도 실패했어요. 저는 안 되나 봐요.”

실패를 딛고 성공한 사람 :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돼.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


[실패의 뜻]

*실패한 청년 : 피하고 싶은 고통,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문,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실패를 딛고 성공한 사람 : 성공을 위한 디딤돌, 성장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는 기회



우리는 저마다의 경험으로 칠해진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색안경을 쓰고 있음을 알 때, 다른 사람 또한 그만의 색안경을 쓰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사전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 어떤 색안경을 쓰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어떤 색안경을 쓰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어떤 색안경을 쓰고 있는지도 이해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때 비로소 나의 언어가 상대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도 알 수 있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김종원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면, 이제 사전에서 배운 의미는 모두 지워야 한다. 그리고 ‘삶’이라는 사전에 새롭게 새겨 넣을 나만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


삶이라는 노트에 나만의 사전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내 삶은 유연해지고 그만큼 풍성해집니다.


+@

예시 1~3 바꿔보기 : 상대방의 사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재구성해 봤습니다.


#예시 1 재구성

“얘야, 공부 좀 해야지.”

“왜 엄만 맨날 공부 공부, 공부밖에 몰라?”


=> “얘야,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들지

     “응 엄마, 공부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시 2 재구성

“술 한잔하고 집에 들어갈게.”

“또 술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술만 마실래?”


=> “술 한잔하고 집에 들어갈게.”

     “요즘 당신이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은가 봐. 기분 좋게 마시고 와요.”

     “고마워 여보.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까 너무 많이 먹진 않을게.”




#예시 3 재구성

실패한 청년 : “저 이번에도 실패했어요. 저는 안 되나 봐요.”

실패를 딛고 성공한 사람 :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돼.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


=>  “저 이번에도 실패했어요. 저는 안 되나 봐요.”  

      “많이 힘들지?”

      “맞아요. 과연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 싶은 의심도 들고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은 그런 기분?”

      “정말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제 마음을 잘 아세요?”

      “나도 많이 실패해 봤으니까.”

      “그래요?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

‘나만의 사전 만들기’라는 말이 매력적이라 몇 개 만들어 봤습니다.


*오이 : 음식이라고 분류하기에는 냄새도 색깔도 매우 위험한 물질

*실패 : 일어나기 위해 하는 첫 번째 동작

*고민 : 차를 예열하는 시간. 필요는 하지만 너무 길 필요는 없음

*책임 : 바꿀 수 있는 힘. 종종 잘못으로 오해함.



<4음절 정리>


모든말엔 저마다의

살아온삶 담겨있어

같은단어 쓰더라도

담긴뜻이 서로달라

같은말을 하더라도

다른뜻이 전해지네


내사전에 어떤의미

새겨진줄 알게될때

내사전과 네사전이

다른줄을 알게되고

각자사전 다른줄을

알게되는 바로그때

너의사전 새겨진말

이해하는 마음내니


사전의말 지워불고

나의사전 채워가고

너의사전 이해해서

선한마음 나눠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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