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있는 타인을 보는 게
반가운 사람은 없다.
상처가 없는 사람을 만날 때,
내 기분도 좋아진다.
누구나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지나치게 까칠한 사람의 얼굴은 반갑지 않다.
- 비트겐슈타인
추운 겨울날,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찔러서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추위는 다시 고슴도치들을 모이게 만들었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서로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에서
‘고슴도치의 딜레마’로 불리는 이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비유로 널리 쓰입니다.
흔히 우리는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싶은 욕구와 혼자 있는 싶은 욕구가 서로 충돌합니다.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상당한 아픔을 겪게 되지만, 그럭저럭 적절한 거리를 찾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가 크면 클수록 ‘혼자’와 ‘함께’ 사이의 거리 조절이 유독 더 힘들어집니다.
나의 상처가 크면 클수록 나의 상처를 위로해 줄 사람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나의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오히려 어려워집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가벼운 상처는 상대방이 공감하기도 쉽고, 나의 회복도 빠릅니다. 상대가 내게 적당한 시간과 관심을 보내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상처가 크면 클수록 내가 느끼는 아픔의 크기를 상대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회복도 더딥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시간과 관심을 상대방이 내게 주기가 어렵기에,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힘겹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결국 상대가 나를 멀리하게 되면, 나를 위로해 주었던 그 사람에게마저 나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상처가 크고 외로움이 깊을수록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
어떻게 하면 이런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야생 동물은 아프거나 부상을 당하면 안전한 장소를 찾아 혼자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며칠 동안 거의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홀로 있으며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오직 회복에 집중합니다.
마찬가지로 상처받은 사람도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더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기 힘들수록 혼자 있어야 한다는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와 같은 모순은 낯설지 않습니다. 체력이 약한 사람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에 운동을 하기가 힘듭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니 체력은 더 약해지고, 운동하기는 더 힘들어집니다.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예, 맞습니다. 힘들어도 운동을 해야 합니다. 피로감을 무릅쓰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체력이 길러져 피로감을 덜 느끼게 되어, 오히려 운동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고 체력은 더 좋아집니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 선순환의 고리에 올라타게 됩니다.
피곤할수록 운동을 해야 하듯이 혼자 있기 힘들수록 혼자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동물도 혼자 있을 수 있는데 우리는 왜 혼자 있는 게 그렇게 힘들까요?
상처받고 혼자 있을 때 자신에게 어떤 말, 어떤 생각을 들려주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
‘왜 사람들은 날 싫어할까?’
이렇게 자꾸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건네기 일쑤입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자신을 향한 부정의 감정은 오히려 더 강하고 날카로워집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상처 입은 동물이 혼자 동굴에 들어가서 자신의 상처를 거칠게 물어뜯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언제나 ‘자신을 차갑게 비난하는’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혼자 있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혼자 있을 수 있으려면 스스로에게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동물이 스스로, 오직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주는데 온 힘을 다하듯이, 자신에게 온 힘을 다해 다정해야 합니다.
따스한 봄볕 같은, 여름철 시원한 냉수 같은, 가을 저녁 부드럽게 하루를 감싸는 노을 같은, 겨울철 뜨끈한 온돌 같은 다정함을 자신에게 건네야 합니다.
혼자 있는 연습을 위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나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는 연습을 시작합니다.
아침에 눈 뜨며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건네 봅니다.
“잘 잤어?”
거울을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건네 봅니다.
“그동안 애쓴 흔적이야. 괜찮아.”
일이 뜻대로 안돼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건네봅니다.
“많이 놀랐지? 속상하겠다. 결국 괜찮아질 거야.”
주변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건네봅니다.
“괜찮아. 그럴 때도 있지. 오죽하면 그랬겠어.”
잠자리에 누운 나에게 다정하게 말 건네 봅니다.
“오늘도 애썼네. 편히 푹 쉬어.”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고, 차갑게 판단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며 다정하게 대해봅니다.
늦은 밤,
꾸벅꾸벅 졸음을 이겨가며,
등을 토닥이며 아이를 잠재우는,
무심한 듯 따뜻한,
엄마의 손길처럼,
다만 그렇게.
+@
자신에게 다정한 말을 하는 것이 힘들다면 다른 사람에게, 사람에게 다정함을 전하기 힘들다면 자연과 사물에게 다정함을 전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타인을 향해 보내는 모든 감정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적신 후 전해지니까요.
혼자있음 외로웁고
함께있음 상처받아
인간관계 거리조절
쉽지않은 일이어라
나의상처 깊을수록
위로받기 어려우니
아프면은 홀로회복
집중하는 동물처럼
타인에게 위로받길
지나치게 기대말고
힘들수록 혼자있는
시간갖는 연습하세
혼자있기 어려운건
자신비난 하기때문
누구보다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보세
갓난아기 토닥이는
무심한듯 참따뜻한
엄마손길 눈길처럼
다정하게 대해보세
자신에게 다정하면
타인에게 다정하고
타인에게 다정하면
자신에게 다정하니
판단하기 멈추고서
다정만을 전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