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예술가는 다른 선배나
후배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받은 영향을 자신의 작품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대중은 엉뚱하게도 그들의 작품이 아닌,
엉뚱한 인격만을 바라보며,
그걸로 그들의 예술 세계를 평가한다.
- 비트겐슈타인
밤나무에 주먹만한 밤송이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밤나무 아래엔 민들레가 하얀 솜뭉치를 두르고 홀씨를 날려 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민들레야, 설마 그렇게 아이들(홀씨)을 떠나보내려는 거야?”
밤나무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응, 이제 이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가 되었어.”
민들레가 당연하다는듯 말했습니다.
“저런, 그렇게 부드러운 옷만 입힌 채 아이들을 떠나보낸다고? 그렇게 보내면 아이들은 죄다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어버릴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민들레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봐.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고도 모자라 날카로운 가시로 튼튼하게 옷을 입혔잖아. 이 정도는 해야 이 아이들은 험한 세상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어.”
밤송이가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안돼. 그렇게 무겁고 덩치가 커서는 멀리까지 갈 수 없는 걸. 우리 아이들을 봐. 얼마나 가벼운지 바람만 살짝 불어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니까.”
밤송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민들레가 말했습니다.
“넌 정말 무책임한 부모야.”
답답함에 밤나무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누가 할 소리. 너야말로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어.”
민들레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도록 둘의 다툼은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밤나무의 씨앗인 밤은 무척 달고 영양분이 풍부합니다. 밤나무는 밤이 무사히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밤을 단단한 껍질과 가시로 잔뜩 둘러싼 채 떠나보냅니다.
민들레의 홀씨 하나에는 100여 개의 갓털이 붙어있어, 마치 낙하산처럼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오래 날 수 있어 멀리까지 씨앗을 보낼 수 있습니다.
밤나무와 민들레 중 누가 더 좋은 부모일까요?
여러 종류의 칼들이 진열되어 있는 대장간에 요리사가 찾아왔습니다.
요리사가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긴 장식용 칼을 만져보고는 한 마디 합니다.
“이 검의 날은 종잇장도 자르지 못하겠군. 형편없는 칼이야.”
이번에는 길이도 짧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부엌칼의 날을 조심스레 만져보곤 환하게 웃습니다.
“길이도 적당하고 걸리적 거리는 것이 없어 좋군. 이 날을 봐. 어쩜 이렇게 날을 잘 세웠지? 정말 좋은 칼이야.”
요리사의 말에 부엌칼은 한껏 목에 힘이 들어갔지만, 장검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잠시 후 화려한 복장을 한 높은 관리가 찾아왔습니다. 관리는 부엌칼은 만져보지도 않고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쯧쯧, 저렇게 볼품 없이 생긴 칼을 꺼내놓다니…”
관리는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석으로 장식된 장검을 보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오,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이렇게 아름다운 칼은 처음 보는 걸.”
잔뜩 풀이 죽어있던 장식용 칼이 으스대며 식칼을 바라봅니다.
모두 떠나고 대장간에 남겨진 식칼과 장검은 서로를 향한 부러움을 감추며 힐끔힐끔 서로를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날이 잘 선 부엌칼은 요리하기에 적당합니다. 화려한 보석이 박힌 장식용 칼은 보기에 아름답습니다. 과연 이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은 칼일까요?
밤송이에게는 밤나무가, 민들레 홀씨에게는 민들레가 좋은 부모입니다. 요리사에게는 부엌칼이, 관리에게는 장식용 칼이 좋은 칼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좋고 나쁨을 평가합니다.
“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의 숨은 뜻은 이렇습니다.
“저 사람은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지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고 있어.”
그때 그때 변하는 자신의 기분과 생각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은 ‘좋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며, 생각도 늘 변합니다. 그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사람들의 기분과 생각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래서 김종원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 다 들어주고, 사정을 다 봐주면, 결국에는 내가 처음 생각한 이야기는 모두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는다.’
진화론의 ‘생명의 나무’는 모든 생명체의 진화적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적인 도식입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모든 생명첵가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했음을 보여줍니다. 나뭇가지는 공통의 조상에서 시작했지만 다양한 생물종으로 분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명체 간에 서로 열등하거나 우월한 것은 없습니다. 원숭이가 인간보다 열등하지 않고, 토끼가 달팽이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물종들은 서로 다른 진화적 경로를 따라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즉 현재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 진화의 최종 결과물이며, 저마다 가장 진화된 형태입니다.
이 논리를 연장하면 인간종 내에서도 우리들 각자는 자기 진화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우월하고 열등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부엌칼의 길이 있고 장식용 칼의 길이 있습니다. 예술가의 작품을 인격의 잣대로 과소 평가하고, 정치인의 실력을 도덕성으로 과대 평가하는 것은 장식용 칼을 날카로움으로 평가하고, 부엌칼을 아름다움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밤나무의 길이 있고 민들레의 길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습니다.
당신의 길과 나의 길이 만나는 순간에는, 내게 당신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당신의 길과 나의 길이 어긋나는 순간이 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돼.”
당신의 충고를 듣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의 길이 있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모든 면에서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나의 길을 가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김종원 작가는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대중이 아무리 흔들어도 중심을 찾아서 묵묵히 걸어간다.’,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일에 투자하며, 성장에 집중한다.’라고 말합니다.
나무는 다른 나무를 닮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길을 향해 자라나 다양함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내가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나에게도 세상에도 좋은 일입니다. 내가 내게 좋은 사람이 될 때, 다른 누군가에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충고에는 깊은 애정이 어려있지만, 안타깝지만 당신의 길과 나의 길이 같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고개 숙이며 말합니다.
“(당신의 애정어린 충고를) 잘 들었습니다. (당신의 길에서는)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길과 나의 길은 다릅니다. 당신의 애정 어린 충고를 따를 수 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
이 말을 짧게 줄여서 말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나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모든생명 저마다의
진화의길 걸어와서
현존하는 모든생명
자기종의 최고라네
원숭이가 인간보다
열등하다 할수없고
달팽이가 토끼보다
열등하다 할수없네
인간들도 이와같아
각자서로 다를뿐야
당신에게 주어진길
나의길과 다르기에
당신에게 좋은사람
그말듣기 위해서는
당신의길 따르기에
나의길을 잃기쉽네
모든사람 만족하는
그런길은 없으므로
나는다만 나의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네
나의길을 걸어갈때
이세상이 풍요롭고
진정으로 자신에게
좋은사람 될수있어
오늘도난 나의길을
한걸음씩 나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