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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의자포U Nov 30. 2024

46. '그냥 하는 것'을 '용기'라 부를 뿐입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용기가

처음에는 씨앗처럼 작아도,

점점 성장해서 결국 거목이 된다.

- 비트겐슈타인



#이야기 : ‘어린왕자’ 중에서


여기저기 늘어놓은 빈 술병과 술이 가득 찬 술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술꾼에게 어린 왕자가 물었다.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술을 마시고 있지.”

술꾼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술을 마시지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잊어버리려고 그런단다.”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으려고요?”

어린 왕자는 술꾼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걸 잊기 위해서 그런단다.”

술꾼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뭐가 부끄러운데요?”

어린 왕자는 술꾼을 도와주고 싶어서 자세히 물었다.


“술을 마신다는 게 부끄럽다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는 술꾼은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나버렸다. 그는 도무지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

어린 왕자는 다시 길을 떠났다.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에서



어린왕자에 나오는 술꾼의 이야기입니다.


술꾼은 술을 마시는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또 술을 마십니다. 그리곤 다시 자신이 부끄러워져 또 술을 마십니다. 이 무한 반복되는 삶의 고리에서 술꾼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술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무한 반복의 고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장면 1 : 고백하고 싶지만 거절이 두려움.


“저 친구랑 사귀고 싶어.”

“그럼 고백해.”

“거절당할 것 같아서 못하겠어.”

“그럼 단념해.”

“그래도 사귀고 싶은데…”




#장면 2 : 시도하고 싶지만 실패가 두려움.


“나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

“그럼 해봐.”

“실패할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나.”

“그럼 단념해.”

“그래도 해보고 싶은데…”




#장면 3 : 책을 읽고 싶은데 책 읽기가 어려움.


“아무래도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아.”

“그럼 읽어.”

“책 읽는 습관이 안 되어 있어 10분만 읽어도 졸리고 지겨워.”

“그럼 읽지 마.”

“그래도 책은 읽어야 하는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혼자 가슴 앓이를 하는 사람도,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는 사람도, 책은 읽고 싶지만 읽기가 어려운 사람도 모두 무한 반복의 고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이 고리 안에 갇힌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넘기 힘든 높고도 단단한 벽입니다. 그 안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는 무한 반복의 늪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두려움과 망설임의 무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용기를 갖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


면역학의 관점에서 ‘건강’은 몸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몸의 면역 시스템이 세균과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적절한 수준으로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과 바이러스는 오히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을 훈련하고 강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용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동행할 수 있는 힘입니다. 적절한 두려움은 우리를 단련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두려움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은 ‘엄마의 잔소리’와 비슷합니다.


엄마의 잔소리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것처럼 두려움 또한 나의 생존을 위해 생겨난 감정입니다. 그래서 엄마의 잔소리도, 두려움도 모두 내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면 괴롭고 힘들어집니다. 선한 의도를 기억하되 적당히 흘려보내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감기와 같은 가벼운 면역성 질병이 몸의 면역 체계에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가벼운 신호이듯이, 두려움 또한 지금까지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취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감기를 제대로 앓고 나면 얼굴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듯이, 두려움을 제대로 맞이하고 나면 새로운 방식으로 가볍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두려움에 발걸음이 묶여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두려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되,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처음부터 거목인 나무는 없습니다. 씨앗처럼 작은 용기가 점점 성장해서,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거목이 되었습니다.


나무는 한 번도 가본 적이 깊고 어두운 땅속으로 연약한 실뿌리를 뻗고, 저 막막한 허공을 향해 가녀린 가지를 뻗어냅니다. 그 작은 실뿌리가 땅속의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가녀린 가지가 햇빛을 받아안으며 점점 거목이 되어갑니다. 



저 나무처럼 두려움에서 용기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 삶에는 용기를 낼 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과 같습니다. 길가의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있는 한 포기 풀꽃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로워집니다.’


법륜스님의 말처럼 인생이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우리의 두려움을 키웁니다. 삶이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클수록,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클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집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자꾸 망설이게 되고, 망설일수록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사실 용기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그냥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죽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이 바로 ‘시도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시도해 보지 못한 일들이 가장 아쉽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성공할 자신이 없어서….’ 등 여러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자꾸 후회가 남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냥 해볼걸….”



찬물을 몹시 싫어하고 못 견뎌하는 저는 목욕탕에서 냉온욕을 할 때 이렇게 합니다. 먼저 온탕에서 몸을 충분히 데운 뒤, 냉탕에 발목까지만 담급니다. 다시 열탕에서 무릎까지 담근 뒤, 냉탕에서 무릎까지, 다시 열탕에서 허리까지 담근 뒤, 냉탕에서 허리까지.


이렇게 4~5번을 반복하면, 마침내 냉탕에 온몸을 담글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냉탕에 몸을 담그다 보면 결국은 온몸을 냉탕에 담글 수 있게 됩니다.


곧장 찬물에 풍덩, 가볍게 온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몸을 담그면 될 일을 굳이 복잡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한 번에 온몸을 찬물에 던지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또 저처럼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찬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 찬물에 몸을 담가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굳이 찬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또 찬물에 들어가도 됩니다.


저는 다만 냉온욕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굳이 용기를 낼 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 우리 인생에는 없습니다. 두려워할 만큼 거창한 일은 우리 인생에 없습니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되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합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 되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합니다. 다만 그렇게 해나갑니다.


용기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을 용기라 부를 뿐입니다.


‘용기’란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냥 해나가는 행동 패턴’입니다. 그렇게 해나갈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4음절 정리>


술마신게 부끄러워

잊으려고 술마시고

거절당함 두려워서

고백하지 아니하고

실패할게 두려워서

시도하지 아니하고

책읽기가 어려워서

책을읽지 아니하네


두려움과 망설임의

무한반복 어찌벗나

어찌하면 용기갖고

행동하며 살수있나


두려움이 없는상태

진짜용기 아니라네

두려움과 공존하며

사는것이 용기라네


어찌보면 우리삶은

풀꽃같은 인생이라

용기까지 가지면서

해야할일 없다하네

무심하게 가지뻗고

성장하는 나무처럼

무심하게 해야할일

다만하면 그뿐일세


그냥하는 것을일러

용기라고 할뿐이니

무심하게 해나갈때

두려움을 벗게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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