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갑상선? 비타민?
삼십대가 되고나서
이십대와 가장 큰 차이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피로'의 차이다.
분명 이십대에는 밤샘을 밥먹듯이 하고,
하루만 자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조금만 늦게 자도 며칠은 힘들다.
하루 몸을 혹사시키면
바로 다음날 몸살이 나거나 근육통이 따르고,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피곤에 지친다.
근데,
나는 피곤이 좀 과도했다.
하루종일 졸렸고, 피곤했다.
처음에는 내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가 보다 생각했다.
머리만 대면 자는데,
(사실 이것도 좋지 않은 거라더라)
중간에 자주 깼다.
자주 깨고, 새벽에 조금 뒹굴다가 다시 자고
이런 패턴이 최근에 심해졌다.
그래서 다니던 정신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수면제를 먹고는 아침에 더 피로할 뿐 나아지지 않았다.
수면제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피곤했다.
원래 운동을 하면 건강해져서 덜 피곤해지는게 정상 아닌가.
매일 에너지 음료 한캔을 들이키고
운동을 시작했고, 운동을 하고 개운함을 느끼며 집에 오자마자
다시 뻗어서 잠들었다.
그 모든 이유는 사실 '술' 같았다.
자주 먹지 않던 술을 최근들어 자주 먹었던 것이다.
간이 부담을 느껴 피곤하구나, 생각했다.
같이 술먹던 친구가 간 영양제를 선물해줬다.
이참에 간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정신과 옆의 내과에 충동적으로 방문했다.
피검사 결과가 바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신과는 집과 40분거리에 있었는데,
덕분에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다음 날에도 나와야 했다.
의사쌤은 검사결과를 주르륵 보시더니,
간은 건강한데, 갑상선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셨다.
요오드를 많이 먹으라고 말을 하시곤,
초음파를 찰칵 찰칵 찍으셨다.
갑상선이 좀 작네. 이러고는 진료를 끝내셨다.
후덜덜한 금액의 비용을 내고 병원을 나왔는데,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내 갑상선이 얼마나 안 좋고, 약은 안 먹어도 되는건지,
내 갑상선이 작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갑상선 저하증 증상에 내가 다 맞는 거 같았다.
피곤하고 추위를 타는 증상이 딱 나였다.
하지만 원인이라든지 치료법은 알 수 없었다.
정신과 선생님은 그냥 내과가 아니라 "내분비내과"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도에 "내분비내과"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갑상선을 판단하는 피검사 요소는 네 가지다.
TSH, FreeT4, T3, T4
그런데 나는 직전 병원에서 TSH만 검사했다.
그 결과로는 갑상선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렵다.
갑상선의 경우,
갑상선 자체에서 나오는 호르몬양과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양을 따로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뇌에서 갑상선에게 보내는 호르몬 양이 적어서 갑상선 호르몬이 적게 나오는 경우가 있고,
뇌에서는 충분히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갑상선에서 호르몬이 적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근데 이걸 알기 위해서는 피검사에서 두가지를 다 봐야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TSH, 갑상선자극호르몬만 검사를 했다.
동네 의사선생님은 갸웃하시며 갑상선 검사를 새로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피를 뽑고 며칠을 기다렸다.
그 며칠 사이에 직전 병원의 초음파 결과를 가져오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40분이 걸려서 다시 첫 병원에 갔다.
피검사 결과지와 초음파 검사 결과를 요청했더니,
두 장의 종이를 받았다.
하나는 피검사 결과지, 하나는 초음파 결과 사진이 붙어있는 종이.
병원을 많이 다녀본 결과, CT, MRI, 초음파 같은거는 CD로 받았는데
이렇게만 줘서 당황했지만, 이게 다라는 병원의 말에
원래 이런 건가 싶어서 받아왔다.
피 검사 받으러 간 날, 의사쌤에게 이것들을 제출했다.
의사 쌤은 이번에도 깜짝 놀라셨다.
누가 이렇게 사진으로 줘요?
사실 초음파 결과를 확인하는 이유는
혈행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지만 사진으로는 그걸 보기 힘들다고.
갑상선의 경우 90프로는 피검사로, 나머지 10프로는 초음파로 확인하는데
일단 피검사 결과는 좋으니 초음파는 다음에 시간되면 찍자고 하셨다.
내 손에 다시 들려진 갑상선 초음파를 보며
묘한 모성애가 느껴졌다.
나의 피로는 다시 미궁에 빠졌다.
갑상선 수치가 다 좋았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수치들도 좋다고 했다.
나는 좌절했다.
신체의 문제가 아니면, 이는 정신력의 문제라는 것인데,
내 정신력이 이렇게 똥같다니. 믿을 수 없었고, 한심했다.
의사쌤은 잠시 보더니
비타민 D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미 뽑은 피로 비타민 D 검사를 할 수 있으니
며칠 뒤에 전화로 결과를 들으라고 얘기해주셨다.
나는 여전한 의문만 안은채 집으로 돌아갔다.
여느 날처럼 피곤한 하루,
여유를 즐겨보겠다며 별다방 창가자리에 앉아
아이스 라임 패션 티를 큰 사이즈로 시키고
멍을 때리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친절한 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원하셔야겠는데요."
예상치도 못한 의사쌤의 말에 놀라 티를 원샷하고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간호사쌤들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방금 통화하시지 않았냐고 물어서 원장쌤이 내원하라고 했다고 대답했다.
금방 내 차례가 되었다.
"번개네요 번개"
의사쌤이 (자신의 옆집에 있던 중국집이 생각난다며) 나의 빠른 속도에 감탄했다.
의사쌤은 나의 비타민 D가 평균보다 낮다고 했다.
30-50이 정상이라면 나는 23정도라고 했다.
비타민 D가 낮으면 뼈가 약해지고, 암발생률이 높아지고, 피곤해진다고 했다.
뼈가 약할 수도 있으니 골밀도 검사를 받자고 하시면서도
튼튼한 내 팔목을 보시더니, 괜찮을 거 같긴 한데 라고 읊조리셨다...
다행히 골밀도는 조금 낮지만 정상이었다.
비타민 D는 1년에 총 4번의 주사를 맞아야 했다.
3개월마다 주사를 맞아야하고, 다 맞아도 엄청 크게 오르진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타민 D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는데,
비타민 D는 이름은 비타민이지만, 호르몬의 일종이라고 하셨다.
이미 비타민으로 이름 붙여 버려서 호르몬으로 변경 못한 거라고.
비타민 D의 중요성을 들으며, 내 궁금증은 한가지로 좁혀졌다.
"그러면 이제 안 피곤해지나요?"
"주사맞고 이틀뒤면 걷기 힘들었던 (뼈가 안 좋았던) 분들은 좀 나아지더라구요."
뭐, 어쨌든 효과가 있다는 말로 듣고,
엉덩이에 비타민 D를 꾸욱 주사하고 나왔다.
여전히 졸리고, 여전히 피곤하다.
여전히 에너지드링크와 커피를 번갈아 마시고,
운동하고 뻗는 생활을 한다.
그래도 조금 더 햇볕을 보려고 하고,
한 번은 더 비타민 D 영양제를 먹으려 한다.
그러다보면 삼십대인 나도 조금 덜 피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