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답정킴 Sep 22. 2021

서른넷, 내후년엔 중년이라구요?

아직 정신연령은 멀었는데요.

나는 일정한 직업이 없고 자가가 없는 삼십대다. 

이맘때쯤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청년"이라고 부른다.


그런 '청년'들을 위해 나라에서는 여러가지 정책들을 펼친다.

청년을 위한 정책들은 주로 20대에서 30대초반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예를 들면, 청년 청약 통장은 3.3%라는 이자를 주고, (까먹었는데 빨리 신청해야지)

청년 직장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나라에서 정해놓은 청년의 막바지에 걸쳐있다.


청년세대 초반을 가르키는 별칭은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라떼는 '신세대'였고, 밀레니엄 세대, 블라블라를 거쳐서,

지금은 'MZ세대'다.


그러면 청년세대의 후반을 가리키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뭉뚱그려 '라떼'라든가, '꼰대'라든가, 뭐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청년 후반과 중년과 장년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이제 나는 그 경계에 접어들었다.




 

아직 더 젊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맞다)

나는 아직 스물 후반 언저리에서 많이 나아진 게 없다.

여전히 사는 것은 팍팍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다.

친구들은 그래도 밥을 벌어먹고 사는데,

나는 영 소질이 없다.


노오-력을 하면 모든 것이 된다던 그 세대에 뒤따라서

노오-력을 해봤지만, 애초에 방향자체가 잘못되었고,

잘못된 방향으로 한참 오다보니,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은 내게 유턴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건 20대의 나에게 하셨던 조언이었다.

그게 지금도 유효할까. 그렇다면 얼마나 되돌아가야하는 것일까.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인생의 1/3을 어린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평균 수명으로 대충 계산해보면 32살정도까지 어린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막 어린이를 벗어났는데, 중년이 되는 게 말이 안 된다.


방정환 선생님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는 아직 갓 어린이를 벗어난 청년의 초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에 내가 중점을 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렇게까지 어려지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30대의 내가 더 좋고, 30대의 내가 더 행복하다.

그렇지만, 30대의 나를 중년이라고, 막바지라고 가둬두고 싶진 않다.


비록, 나라에서 나를 청년이라고 부르진 않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청년으로 살 수 있다.




        


금방 나에게도 중년의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내가 그것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

그럼, 그 나름대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중년의 초반기에 설 수 있다.

그럼 중년 중에 가장 어린 게 되니까, 그만큼 젊게 살면 된다.


그래도 아직은 청년의 끄트머리에라도 달려 있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