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형님이 "최근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였다."라며 선물로 주었다. 책욕심이 많아서 얼른 받아왔으나 형님의 강력 추천과는 반대로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저자의 약력과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미묘한 두려움이 일었다. 김완 작가는 특수청소업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책 제목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정리해 주는 사람이다. 특히 연고가 없거나 고독사 한 사람들, 스스로 생을 포기하여 특별한 수습이 필요한 상황에 그가 불리어 간다. 책을 펼치면 저자가 겪은 일을 따라 가 보아야 할 테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저 외로운 죽음이 혹시 나에게도 일어나면 어떡하지? 이상한 상상이지만 이런 것도 거울신경의 작용일까. 연민과 두려움이 뒤섞여 선뜻 책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어떤 무자비한 세상의 흐름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외로운 삶을 강제하였는 지를 직시하기 두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공포에 떠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척 하며 살아간다. 비정한 세상의 구조, 단절된 관계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의 외로움을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되는 것인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책을 밀어내고 싶던 똑같은 마음 때문에 결국 책을 펼쳐 읽어야만 했다.
생전에 책이 많았던 어느 돌아가신 분의 서가를 치우면서 "서가는 어쩌면 그 주인의 십자가 같은 것은 아닌지." 라고 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보면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들인 영광으로 죽음의 형틀이었던 십자가는 구원이고 믿음이며 삶의 가치를 상징하게 되었다. 십자가처럼 서가는 주인이 살았던 삶의 내용을 담는다.
책을 덮을 때, 앞으로 읽는 책과 지금까지 읽은 책을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는 지 누군가 보아주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이의 본성적 욕구다. 조지 오웰의 말마따나 "모든 글은 정치적이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나는 개인적으로 짊어지기로 다짐했던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쳤다는 마음속 굴레에 묶여있다. 그래서 변명을 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지를 쥐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짊어져야 할 십자가일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것은 나의 서가이고 내 정신세계의 기준이므로.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외로운 존재들이다. 작가 러셀 데이비스는 "누구나 언제나 항상 자기만 생각한다."라고 말하였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지적한 이 문구가 김완 작가의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인간의 삶은 독백이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고 보아주길 기대한다. 독백을 하면서도 누군가 보아주길 기대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독백은 서로 충돌하고 섞이기 어렵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독백은 절망한다. 그러나 타인의 독백을 보아주는 유일한 생명체가 - 적어도 지금까지 발견된 우주에서는 - 또한 사람이다.
김완 작가 같은 분도 있으니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기로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삶을 이토록 연민하는 그런 모습에서 위로를 받았다. 타인의 독백을 연민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손길을 자처하는 것과 같다. 신은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이므로. 사람들이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런 사랑으로 관심을 쏟아내야한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작가의 표현처럼 "온 체중을 실어"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서가도 그렇게 채우고 싶다.
책꼽문 1.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현자가 있어, 이 생각이 그저 가난에 눈이 먼 자의 틀에 박힌 시선에 불과하다고 깨우쳐주면 좋으련만.
책꼽문 2. 밤은 청하지 않아도 기어이 찾아온다. 밝아오는 아침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하듯 어둠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단 하루의 유예도 없이 매일 밤 나를 방문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 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무심함에 질리고 때로는 그 변함 없음에 안도한다. 그토록 장엄하고 공평무사한 밤이 찾아오면 모든 생각이 작고 부질없다.
책꼽문 3.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 속담 뒤에 스며 있는 명예 지상주의와 지독한 인간 본위의 세계관이 늘 못마땅했다. 이름과 가죽을 남기는 일 따위가 죽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속담만은 이 세계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책꼽문 4. 내 감정은 피아노 건반처럼 밝고 어두운 것, 기쁘고 서글픈 것으로 온통 뒤섞여 있다....... 자연의 섭리처럼, 청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밤의 장엄함처럼, 모든 왜소한 것이 사라지고 오작 사랑의 기억만이 나를 감싸는 그런 시간이 정말 찾아와 줄까?